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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13. 2018

Play

by Dave Grohl


음악가가 밴드(Band)라는 형식을 선택할 땐 보통 자의일 때와 불가피한 경우로 나뉜다. 나와 스타일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멤버들과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결성할 때가 있는 반면, 그냥 마음 편하게 모든 악기를 스스로 다 쳐내고 싶지만 물리적, 능력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밴드를 꾸릴 때도 있다. 이럴 때 어느 판단이 더 옳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협동의 시너지를 노리는 전자가 더 나을 수도 있고 과정의 일관성이 담보되는 후자가 더 나을 때도 있다. 가령 폴 맥카트니는 비틀즈 멤버로서도 훌륭했지만 솔로로서도 탁월했다. 함께일 때와 혼자일 때. 뮤지션에겐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일까.


2018년 8월10일. 데이브 그롤은 자신의 이름을 건 싱글을 공개했다.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이 아니라 그냥 데이브 그롤이다. 제목은 'Play'. 러닝타임은 무려 22분 35초다. 조인 더 밴드(Join The Band)라는 23년 된 음악 학교에서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자신의 지난 시절에 비추며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작곡 배경을 밝혔다. 여기서 음원보다 중요한 건 조인 더 밴드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의 인터뷰를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31분 19초짜리 영상인데, 우린 이 안에서 무려 7명의 데이브 그롤을 만날 수 있다. 드럼 치는 데이브 그롤, 기타 치는 데이브 그롤(트리플 기타), 베이스 치는 데이브 그롤, 비브라폰과 팀파니를 치는 데이브 그롤, 야마하 DX7과 로즈(Rhodes) 건반 앞에 앉은 데이브 그롤까지.



이렇게 데이브는 앞서 말한 밴드의 물리적 불가피성을 영상이라는 초현실적 매체를 통해 극복했다. 7명의 데이브 그롤은 결국 한 사람의 데이브 그롤이며, 그 안에 담긴 모든 연주와 생각과 느낌 역시 온전히 데이브 한 사람의 것이다.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 러시와 퀸스 오브 더 스톤에이지가 푸 파이터스로 수렴되는 이 강력한 변박의 잼은 결국 연주(play) 한다는 것의 의미, 구체적으론 이제 막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마추어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데이브의 '몸의 철학'이다. 그는 그 깨달음을 위해 끝을 모르고 북촌을 맴돌던 홍상수의 <북촌방향> 주인공처럼 연주하고 또 연주한다. 마치 죽는 순간까지 마이셀프(myself)라는 화두를 놓지 못했던 고 신해철의 'A.D.D.A' 뮤직비디오처럼, 소소하게 대담한 이 시도는 밴드라는 것의 가치와 한계에 관한 한 중년 록커의 뜻있는 입장으로서 오래 회자될 듯 보인다. '아티스트' 데이브 그롤의 값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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