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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28. 2018

AC/DC A to Z

*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음악취향Y에도 실렸습니다.


AC/DC의 역사는 곧 보컬리스트의 역사다. 데이브 에반스, 본 스콧, 브라이언 존슨을 거쳐 지금은 액슬 로즈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이것저것 다 해야하는 ‘멀티태스킹’ 시대에 “한 우물만 파라”는 AC/DC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값지다. 40을 넘게 한결같이 로큰롤에 바친 그들의 열정과 신념. 음악을 떠나 그것은 하나의 철학이었고,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상식적 처세술이었다. 철(鐵)의 철학. 이들의 A to Z를 정리해봤다.


Angus Bucks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의 초상이 그려진 지폐를 말한다. 90년에 발매된 『Razor’s Edge』 투어 때 「Money Talks」 연주와 함께 관중의 머리 위로 흩뿌려졌다. 1달러 지폐를 본떠 만들어진 이것엔 AC/DC의 로고가 크게 인쇄되어있고 조지 워싱턴의 근엄함은 앵거스 영의 짓궂음으로 바뀌었다. 뒷면에는 국새(國璽) 대신 밴드 공연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포(『For those about to rock we salute you』)와 종(「Hells Bells」)이 그려져 있다. 이후 발매된 『Live』 앨범과 새 앨범에 보너스로 들어갔고 2009년 발매한 박스셋 『Backtracks』에는 100달러짜리 ‘앵거스 벅스’로 바뀌어 첨부됐다.       


Anti Christ / Devil’s Child  



‘AC/DC’라는 밴드 이름은 전류의 교류/직류(Alternating Current/Direct Current)에서 왔다. 그런데 한편에서 외설적인 가사와 ‘지옥’이라는 단어의 남용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실 ‘AC/DC’는 ‘Anti Christ/Devil’s Child’ 약자로 AC/DC는 악마주의 밴드”라는 소문을 퍼뜨려 밴드를 당혹스럽게 했다. 또한 80년대 미국을 뒤흔든 연쇄살인마 리차드 라미레스가 AC/DC의 광팬에다 악마숭배자였다는 이유로 ‘AC/DC=악마주의’라는 거짓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면서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지역에선 밴드에 대한 항의운동까지 했었다.


Anvil



캐나다 토론토 출신 헤비메탈 밴드. 81년 발표한 그들의 데뷔앨범 『Hard’N’Heavy』엔 ‘AC/DC’라는 곡이 있다. 그러나 해당 곡의 가사는 여성 양성애자에 대해 쓴 것으로(AC/DC라는 단어는 은어로서 ‘양성애자’를 뜻하기도 한다) ‘밴드’ AC/DC와는 무관하다. 70년대부터 활동을 해왔지만 다른 헤비메탈 밴드들처럼 ‘스타 밴드’가 되지 못하고 30년 이상 캐나다를 벗어나지 못한 앤빌. 그러나 2009년에 제작된 밴드의 다큐멘터리 『앤빌!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나이들』이 히트하면서 이들은 AC/DC의 『Black Ice』 투어 중 일부에서 오프닝 밴드로 활약했다.  


Arnold Schwarzenegger  



배우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주연한 93년작 <Last Action Hero> OST에 AC/DC는 프로듀서 릭 루빈과 작업한 신곡 「Big Gun」을 제공했다. 슈왈츠네거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앵거스 영과 같은 복장에 같은 기타를 매고 멋진 덕 워크(Duck Walk)를 선보였다.  


Atlantic Records



AC/DC가 76년에 계약한 레코드 회사. 앨범의 해외 유통과 투어 일정을 담당했던 아틀란틱 레코드는 밴드의 세계적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밴드의 고향 호주에서 발매된 데뷔앨범 『High Voltage』부터 『Let There be Rock』까지는 편집을 거쳐 ‘인터내셔널 반’으로 유통됐고 AC/DC의 ‘아틀란틱 데뷔 앨범’은 『Powerage』로 기록된다.  


Beavis & Butt-Head



음악 채널 MTV에서 90년대에 방송된 애니메이션. 주인공 비비스와 벗헤드는 헤비메탈과 하드록을 좋아하는 AC/DC 팬으로 설정되었다. 작품에서 둘은 「Back in Black」의 리프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벗헤드는 AC/DC 티셔츠를 자주 입는다. 96년 「Ballbreaker」 투어 오프닝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사용했는데 영상에서 앵거스 영은 둘과 함께 연주한다. 이 영상은 DVD 박스셋 「Plug Me In」에서 감상할 수 있다.  


Big Joe Williams



미국 블루스 가수. AC/DC는 그의 35년도 작품 「Baby Please Don’t Go」를 커버했는데 곡은 75년에 발표한 『High Voltage』 호주반에 최초 수록되었다. 시카고 블루스의 부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곡은 AC/DC 외에도 밥 딜런, 에어로스미스, 존 레논 등이 커버했다. 1982년 사망, 1992년엔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들었다.  


Brendan O’Brien


브라이언 존슨과 앵거스 영, 그리고 브렌든 오 브라이언.


펄 잼, 스톤 템플 파일럿츠, 오프스프링,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과 작업한 유명 프로듀서이며 에픽 레코드(Epic Record) 부사장이었던 적도 있다. AC/DC와는 2008년작 『Black Ice』에서 만났다. 그는 앨범에 수록될 곡 중 한 곡이라도 빠져있으면 레코딩에 들어가지 않으며 레코딩 스타일은 ‘속전속결’로 유명하다.


Bruce Fairbairn



AC/DC의 90년작 『Razor’s Edge』와 라이브 앨범 『Live』의 프로듀서. 90년대에 그는 하드록 앨범들을 주로 다뤘는데, 특히 본 조비의 세계적인 성공과 에어로스미스의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99년, 49세 나이에 원인불명의 죽음을 맞았다.  


Chris Slade



크리스 슬레이드는 89년부터 94년까지, 그리고 지금(2018년 8월)도 AC/DC에서 활약 중인 드러머다. 60년대엔 톰 존스(Tom Jones)와 협연했고, 70년대엔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Manfred Mann's Earth Band)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80년대엔 지미 페이지(Jimmy Page), 폴 로저스(Paul Rodgers)와 교류하기도 했다. AC/DC엔 전 드러머였던 사이먼 라이트(Simon Wright)가 디오(Dio)로 이적하면서 들어오게 됐다. 94년 원년 멤버인 필 루드(Phil Rudd)가 복귀해 크리스의 탈퇴는 자연스럽고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그는 느슨한 필 루드와 달리 타이트한 드러밍을 선보였는데 「Big Gun」과 「Fire Your Guns」는 그 대표적인 플레이다. AC/DC 탈퇴 후엔 아시아(Asia)에서 활동했다.


Chuck Berry



영(Young) 형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뮤지션. 앵거스 영은 "흉내를 내려고 해도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위대함이 척 베리에겐 있다"며 척이 자신의 기타 히어로임을 공언했다. 물론 그 유명한 앵거스 영의 덕 워크(Duck Walk)는 척이 오리지널이다.      


Colin Burgess



AC/DC의 원년 드러머였지만 만취 상태에서 무대에 오른 것을 이유로 74년 해고됐다. 이후 필 루드가 들어왔는데 필이 다쳤을 때 대타로 잠시 밴드에 복귀하기도 했다. 탈퇴 후 자신의 형제들과 계속 음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ompass Point Studio



바하마 연방에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를 창립한 크리스 블랙웰(Chris Blackwell)과 밥 말리(Bob Marley)에 의해 77년 창설됐다. AC/DC는 이곳에서 『Back in Black』을 비롯해 『For Those About to Rock(We Salute You)』『Who Made Who』등 대표작들을 녹음했다. 아티스트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한 스튜디오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뷰욕(Bjork), 알이엠(R.E.M) 등도 이용했다.       


Dave Evans



데이브 에반스(Dave Evans)는 AC/DC의 첫 프론트맨이다. 본래 AC/DC 결성 전 말콤 영(Malcolm Young)이 적을 뒀던 밴드의 멤버였던 것을 AC/DC를 결성하면서 데려왔는데, 모자란 글램록(Glam Rock) 센스와 매니저와의 불화를 이유로 74년 9월 해고됐다. 그리고 들어온 보컬리스트가 바로 본 스콧(Bon Scott)이다.  


Duck Walk



앵거스 영의 트레이드 마크로도 불리는 라이브 퍼포먼스. 앵거스가 존경해마지않는 척 베리가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려진 바로는 척이 양복의 주름을 감추기 위해 고안한 동작이라고 한다. 허리를 살짝 굽혀 기타를 치면서 한 쪽 다리를 반복적으로 구르며 반대편 다리를 이용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오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asybeats



1960년대에 활동한 호주 출신 밴드로, 오리지널 멤버에 말콤, 앵거스의 형 조지 영(George Young)이 있었다. 비틀즈(The Beatles)가 주축이 된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영향받은 이들은 호주 밴드로서 내놓은 최초의 글로벌 히트곡 「Friday on My Mind」로도 유명하다. 리드 기타리스트였던 조지 영은 이후 해리 반다(Harry Vanda)와 팀을 이뤄 '반다 앤 영(Vanda & Young)'이라는 이름으로 AC/DC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기도 한다.


Eddie Kramer


에디 크레이머와 지미 헨드릭스.


『Highway to Hell』의 프로듀서로 발탁됐지만 밴드와 궁합이 맞질 않아 결국 단 한 곡에도 관여하지 못한 채 해고 당했다. 후임은 캐나다 컨트리 가수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과 결혼까지 했던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에디와 달리 존과는 '찰떡궁합'이었던 탓에 AC/DC는 이후 2장의 앨범도 존에게 맡기게 된다. 에디 크레이머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등과 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Fremantle



호주 서부 퍼스 부근에 있는 마을. 1952년 스코틀랜드에서 호주로 이주한 본 스콧 가족은 최초 멜버른에 살았지만 56년 프리맨틀로 이사했다. 본은 이곳에서 10대의 대부분을 보내는데, 이 시기에 스코츠 파이프 밴드(Scots Pipe Band)에서 드럼과 백파이프를 익히게 된다. 본이 죽어 묻힌 곳도 이곳이고, 지금도 그를 찾는 팬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Gary Albright



미국 출신의 프로레슬러다. '살인풍차', '죽음의 스플렉스' 같은 애칭으로 불렸던 그가 등장할 때 쓰였던 곡이 다름 아닌 AC/DC의 「Thunder Struck」. 그의 거구와 박력있는 플레이 이미지에 최적의 선곡으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Voodoo Chile」을 쓴 적도 있다. 2000년 시합 중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Gary Holton



영국의 배우 겸 가수. 70년대 글램록 밴드인 헤비메탈 키즈(Heavy Metal Kids)에서 활동했다. 본 스코트(Bon Scott)의 후임 보컬이 될 뻔 했지만 풀타임으로 음악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AC/DC 측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 바 있다. 85년 약물과용으로 사망.       


Geordie



브라이언 존슨(Brian Johnson)이 AC/DC에 오기 전 몸담았던 영국 뉴캐슬 출신 밴드. '조르디'라는 밴드 이름은 '뉴캐슬에 사는 사람'의 애칭이다. 72년 데뷔 초 발매한 싱글이 영국차트 40위까지 올랐고 TV 출연 등 순조로운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76년 브라이언이 1차 탈퇴를 한 것이 화근이 되어 78년 밴드는 공식 해체된다. AC/DC의 프론트맨이 된 브라이언을 제외한 오리지널 멤버들이 모여 82년 재결성되기도 했으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2001년 브라이언까지 가세해 '조르디II'라는 이름으로 기간한정 재결성 라이브를 펼치기도 했는데 이 공연에선 AC/DC의 「Whole Lotta Rosie」 등도 연주됐다.  


George Young


앵거스, 말콤, 조지 영 형제. 앵거스는 지난해(2017년) 한 달 간격으로 두 형을 모두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영(Young) 형제의 형으로 뮤지션 겸 프로듀서. 어린시절 말콤(Malcolm), 앵거스(Angus)보다 먼저 기타를 잡고 밴드 활동을 시작해 60년대 이지비츠(Easybeats)라는 밴드에서 리듬기타와 송라이팅을 담당했다. 이러한 형에 자극받아 말콤과 앵거스가 음악의 길을 걸었으므로 조지 영은 AC/DC 탄생에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지비츠 해산 후엔 밴드 멤버였던 해리 밴다(Harry Vanda)와 짝을 이뤄 프로듀싱 팀으로 활약했다. AC/DC의 초기작인 『High Voltage』, 『T.N.T』, 『Dirty Deeds Done Dirt Cheap』, 『Let There be Rock』, 『Powerage』, 『If You Want Blood You've Got It』의 프로듀싱을 시작으로 밴드의 조력자로 활약했다. 2017년 10월22일 사망했다.


Glasgow



말콤, 앵거스 영 형제가 나고 자란 스코틀랜드의 도시. 둘은 63년까지 이 곳에 살다 가족과 함께 시드니로 이주했다. 78년 금의환향해 글래스고의 아폴로 극장(Apollo Theater)에서 라이브를 치렀는데 이 공연의 결과물이 바로 『If You Want Blood You've Got It』이다.  


Glen Matlock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베이시스트. AC/DC가 지금은 '헤비메탈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펑크 무브먼트가 한창이던 영국에서 '펑크 밴드'로 평가됐다. 덕분에 펑크 뮤지션들과 적잖은 술잔이 오갔는데 매트록도 그 '술친구' 중 한 명이었다. AC/DC의 초창기 멤버였던 마크 에반스(Mark Evans)가 탈퇴했을 땐 매트록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까라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그는 밴드와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Grapefruit



말콤, 앵거스의 또 다른 형인 알렉스 영(Alex Young)이 소속됐던 영국 밴드. 영 일가가 호주로 이민을 결정했을 당시 이미 20대였던 알렉스는 홀로 영국에 남았다. 67년 팝/록 밴드 그레이프 프룻츠를 결성했고 존 레논(John Lennon)의 친구였던 테리 도란(Terry Doran)이 밴드 매니저를 맡았다. 존 레논도 그레이프 프룻츠의 음악에 흥미를 느껴 이런저런 매체들에 소개도 해줬지만 밴드는 오래 가지 못하고 69년 해산을 맞았다.  


Green Day



그린 데이의 멤버들은 모두 AC/DC의 팬이라 라이브에선 「Highway to Hell」을 자주 커버한다. 그들의 메이저 데뷔작인 『Dookie』의 자켓을 보면 빌딩 옥상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앵거스 영을 찾을 수 있다.  


Hipgnosis



영국의 아트 집단.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유에프오(UFO)와 레인보우(Rainbow) 등 쟁쟁한 밴드들의 앨범 아트워크를 작업했다. AC/DC와는 『Dirty Deeds Done Dirt Cheap』 인터내셔널반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앨범의 호주반엔 앵거스와 본의 캐리커처가 담겨 있다.  


Josh Brolin



영화 『구니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유명하며 헐리우드판 『올드보이』에도 캐스팅 됐다. 그는 본 스코트를 소재로 한 뮤지컬 『Dirty Deeds Done Dirt Cheap』을 집필한 바 있으며, 이는 소규모로 2007년 LA에서 공연됐다.


Keith Richards



롤링스톤즈의 리드 기타리스트 키스 리차즈는 AC/DC의 팬이고, AC/DC의 리드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은 키스 리차즈의 팬이다. 또한 둘은 척 베리, 보 디들리 같은 뮤지션에게 똑같이 영향을 받아 음악적 취향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롤링스톤즈의 공연에 앵거스, 말콤 영 형제가 깜짝 출연했을 때 키스 리차즈가 앵거스 영에게 자신의 기타를 빌려준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이 에피소드는『Plug Me I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KERRANG!



1981년 6월 영국의 하드록/헤비메탈 전문지 케랑의 창간호 표지 모델이 바로 앵거스 영이었다. 케랑은 당시 유행했던 NWOBH과 하드록의 인기를 반영해 창간한 잡지로, 처음엔 <사운즈>지의 부록 형태로 발간되다 점차 독자층이 두터워져 독립했다. 현재는 하드록, 헤비메탈 외에 펑크와 하드코어 등도 다루며 세계적인 음악지로 자리매김해 있다.  


Kid Rock



키드 록은 공공연히 AC/DC 팬임을 자처해온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가령 2000년 발표한 「American Bad Ass」에도 'I Like AC/DC'라는 가사(이 곡에선 AC/DC 외에도 평소 키드 록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다수 등장한다)가 나올 정도로 그는 자타공인 'AC/DC 빠'인 것이다.  


Kurt Cobain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 역시 AC/DC를 즐겨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그가 처음 기타를 잡고 연습한 곡들이 AC/DC와 레드 제플린의 것이었음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특히 그는 걸작 『Back In Black』을 두고 "단 하나의 결점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록 앨범"이라 극찬한 바 있다.  


Larry Van Kriedt



AC/DC의 초대 베이시스트. 영 형제와 어린시절 친구였으며, 밴드 결성까지 함께 했으나 4개월 만에 탈퇴했다.(그의 후임으론 닐 스미스가 들어왔다.) 특히 래리는 AC/DC에 몸담았던 사람들 중 유일한 미국인이었는데, AC/DC를 떠난 뒤에도 다양한 밴드에서 활동했고 특히 재즈, 월드뮤직 신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Leber-Krebs



AC/DC가 속해 있던 미국 매니지먼트 회사. 프로듀서 겸 매니저였던 스티브 리버와 데이비드 크랩스가 설립했다. AC/DC는 1979년『Highway to Hell』발매 직전 계약을 맺고 82년까지 소속돼 있었다. 그 외 에어로스미스, 데프 레파드 등도 이 회사에서 AC/DC와 한솥밥을 먹었다.         


Mark Evans



AC/DC의 전 베이시스트. 그가 밴드에 가입하기 전 AC/DC는 베이시스트 없는 4인조였던 탓에 말콤 영이 베이스까지 맡아야 했다. 밴드 매니저로부터 소개 받아 1975년 AC/DC에 들어왔으나, 앵거스와 관계가 악화돼 77년 탈퇴했다. 이후 클리프 윌리암스가 새 베이시스트로 영입돼 30년 이상을 머물게 된다.  


Marquee Club



런던에 있는 전설적인 라이브 하우스. 롤링스톤즈가 첫 라이브 무대를 장식한 곳으로 유명하며, 초기 AC/DC 역시 공연 장소로 애용했다. 『Dirty Deeds Done Dirt Cheap』 발매를 앞둔 1976년 5월 첫 출연 후 그 해 9월까지 총 11회 같은 무대에 섰다. 특히 8월 라이브는 후(The Who), 지미 헨드렉스에 버금가는 마키 클럽 사상 최고 관객 동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AC/DC는 77년 이후론 이곳을 찾지 않았다.  


Metallica



메탈리카가 본무대에 오르기 직전 나오는 곡이 바로 AC/DC의 「It's a Long Way to the Top (If you Wanna Rock 'N' Roll)」. 이 곡과 엔니오 모리꼬네의 'The Ecstasy of Gold'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곧바로 메탈리카가 무대에 등장한다는 건 팬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Mike Fraser



캐나다의 프로듀서 겸 믹싱 엔지니어. 그는 유명 프로듀서였던 브루스 페어베언과 함께 에어로스미스의『Permanent Vacation』 『Pump』를 다듬어 명성을 떨쳤다. AC/DC와는 『The Raor's Edge』와 『Ballbreaker』에서 연을 맺어 이후 AC/DC의 전작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까지 지휘했다.


MOBY



99년작 『Play』로 1000만장을 찍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모비는 2005년 투어에서 「You shook me all night long」등 AC/DC를 커버했다.   


Molly Meldrum



AC/DC가 출연한 호주의 인기 프로그램 카운트다운(Countdown)의 사회자이자 레코딩 프로듀서, 음악평론가. 74년 첫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호주 방송 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음악 방송이다. 멜드럼은 프로그램의 공동 기획자이기도 했고 75년부터 해당 프로그램의 얼굴이 됐다. 방송 시작 당시 AC/DC는 여기에 자주 출연해 연주를 했고, 밴드의 인기를 부채질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 방송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이래 20년이 지나도록 AC/DC는 TV 출연을 삼갔다.   


Monsters of Rock



1980년부터 96년까지 영국의 도닝턴에서 매해 개최된 록 페스티벌. AC/DC는 81년, 84년, 91년 3차례 모두 헤드라이너로서 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판테라(Pantera),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 메탈리카(Metallica) 등과 함께 선 91년 무대는 『Live at Donington』이라는 이름의 영상 자료로 따로 남아 현재까지도 로큰롤계의 명 라이브로 회자되고 있다. 2006년 특별 개최 이후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지만 2003년 같은 곳에서 열린 다운로드 페스티벌은 몬스터스 오브 록을 잇는 하드록 페스티벌이 되었다.  


Music Machine



본 스콧(Bon Scott)이 죽기 직전까지 마셨던 런던 소재 클럽. 원래는 극장이었지만 72년 나이트 클럽으로 바꿔 문을 열었다. 79년 개봉된 디스코 영화 『The Music Machine』의 무대이기도 했다. 이후 컴댄 팰리스에서 코코(KOKO)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도 영업 중이다. 죽기 전날 투어 매니저의 집에서 저녁을 먹은 본은 이 클럽에서 친구와 함께 새벽 3시 문 닫을 때까지 '던졌다'고 한다. 너무 마셔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그를 친구는 차 안에 그대로 방치해버렸고, 본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지옥으로의 고속도로'를 타고 머나먼 길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Newcastle United F.C.  



뉴캐슬을 본거지로 하는 영국의 명문 축구팀. 뉴캐슬 근방에서 나고 자란 브라이언 존슨(Brian Johnson)이 이 팀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팀으로 이적한 선수를 소재로 한 2005년 영화 GOAL!에선 펍(Pub)에서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으로 브라이언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Ozzy Osbourne



77년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유럽 투어를 서포트 한 AC/DC는 오지 오스본과 잘 알던 사이였다. 『Blizzard of Ozz 』 수록곡 「Suicide Solution」은 당초 그 배경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청소년 2명이 이 곡을 듣고 자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소송에 말리며 오지는 이 곡이 자신의 친구 본 스콧을 추도하는 곡이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Pete Townshend



후(The Who)는 밴드 자체로도 AC/DC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피트 타운센드는 영 형제가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피트는 70년대에 깁슨SG를 썼는데 이는 앵거스 영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AC/DC는 1979년 영국 웸블리 구장에서 있었던 후 재결성 공연에서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선 바 있다.   


Peter Mensch


피터와 클리프 번스타인(메탈리카 매니저).


79년 레버 크렙스(Leber-Krebs)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할 당시 매니저로서 추천돼 81년까지 AC/DC의 매니저를 맡았다. 81년 레버 크렙스를 퇴사한 피터(사진 왼쪽)는 직접 큐프라임(Q Prime)이라는 회사를 차려 메탈리카,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지미 페이지(Jimmy Page) 등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삼았다.  


PMRC



1985년 설립된 PMR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는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성적, 폭력적, 범죄성이 있는 가사에 경고한 뒤 미디어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단체다. AC/DC는 바로 그 특유의 '성적 가사'로 PMRC를 불편하게 만들어 온 밴드 중 하나로, 실제 85년 단체가 발표한 '더러운 15곡' 리스트 6위에 Let me put my love into you가 오르기도 했다.  


Princess Diana



'대포' 이미지가 AC/DC를 상징하게 된 계기는 영국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왕비의 결혼식이었다. 『For those about to rock (We salute you)』 녹음 첫 날이 바로 그 결혼식 날이었는데, 타이틀 곡을 연습하고 있을 때 옆방 TV에서 결혼식 축포 소리가 들려 곡 속에 대포 소리를 넣게 된 것이다. 물론 대포는 이미지로서 해당 앨범 재킷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Private Parts



AC/DC가 출연한 베티 토마스 감독의 97년작. 미국의 인기 DJ 하워드 스턴의 동명 자서전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한국에선 '언터처블 가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워드 본인이 직접 주연까지 맡아 화제가 됐다. AC/DC는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열린 야외 콘서트 장면에 나와 'You Shook Me All Night Long'을 연주했다.   


Richard Leyva Ramirez  



미국의 연쇄살인범. 84~85년 1년 사이 무려 14명을 죽였다. 그 외 폭행, 강간, 강도 등 깨알 같은 전과들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정작 사인은 B-세포 림프종으로, 2013년 6월7일 53세로 사망했다. AC/DC 로고가 박힌 모자를 사건 현장에 남기거나 AC/DC 티셔츠를 입고 범죄를 저지르는 등 열혈 악마숭배자였던 라미레즈는 AC/DC를 철저히 곡해하며 범행을 이어갔다. 그 결과 애먼 AC/DC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참고로 마릴린 맨슨의 베이시스트였던 트위기 라미레즈의 '라미레즈'도 바로 이 살인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Rick Rubin



러셀 시몬즈와 힙합 레이블 데프잼을 공동 설립했다. 슬레이어, 비스티 보이스, 런디엠씨,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메탈리카 등의 앨범을 손본 스타 프로듀서로 AC/DC와는 95년작 [Ballbreaker]에서 만났다. 하지만 릭과 AC/DC의 첫 인연은 존 맥티어난 감독의 93년작 '라스트 액션 히어로'의 주제곡 'Big Gun'에서였다.   


Robert John "Mutt" Lange  



영국 출신 프로듀서. 피터 멘치의 소개로 79년작 [Highway to Hell]에서 AC/DC와 작업, 이후 [Back in Black] [For Those about to Rock (We Salute You)]까지 함께 했다. 그 외 관여한 주요 앨범엔 데프 레파드의 [Hysteria]와 니켈백의 [Dark Horse], 샤니아 트웨인의 [The Woman in Me], 마룬파이브의 [Hands All Over] 등이 있다.   


The Rolling Stones



AC/DC가 영향 받은 밴드 중 하나. 말콤 영을 비롯해 멤버 전원이 AC/DC 결성 전 공연장을 드나들며 그들을 동경해왔고, 밴드 초기엔 롤링 스톤즈 곡들을 심심찮게 커버했다. 두 밴드가 처음으로 조인트 공연을 한 것은 2003년. 롤링 스톤즈의 호주 공연에서 영 형제가 게스트로 출연해 쿼터 기타 모양새로 비비 킹의 'Rock Me Baby'를 협연했다. 두 밴드는 이후에도 토론토에서 치러진 자선 공연을 함께 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Rosie



본 스콧은 자신의 실제 이성관계를 가사로 자주 풀어냈는데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여자가 'Whole Lotta Rosie'의 'Rosie'다. 본은 "42-39-56(107-99-142cm) 사이즈에 체중은 120kg의 멋진 거구"였다며 "침대에서 테크닉은 지금껏 여자들 중 최고"였다고 노래했다. 본의 실제 경험담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로지 본인이 실존하는지 증명된 바가 없어 설은 분분하다. 이후 콘서트에서 로지는 가로 누운 대형 인형의 모습으로 그 '멋진 거구'를 뽐내곤 했다.  


Simon Wright



필 루드가 탈퇴한 1983년 필의 후임으로 들어왔다. AC/DC와 함께 한 작품은 밴드 최악의 앨범으로 기억되는 [Fly on the Wall]과 최악의 영화로 기억되는 <맥시멈 오버드라이브>의 OST 앨범 [Who Made Who], 그리고 밴드의 부진을 씻어준 [Blow Up Your Video]까지 도합 3장이다. 89년 디오에 들어가기 위해 탈퇴, 그의 후임으론 유라이어 힙 등을 거친 크리스 슬레이드가 들어온다.  


Stephen King



스릴러 소설의 대명사인 스티븐 킹은 AC/DC의 팬이다. 물론 자신이 직접 감독까지 해 쫄딱 망한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OST를 AC/DC에게 의뢰한 것도 그였다. 그는 로큰롤 마니아로서 작가들로 구성된 록밴드인 록 보텀 리메인더즈의 멤버이기도 하며, AC/DC 외에 '라몬즈 빠'로도 유명하다.    


Stevie Young



영 형제의 조카로 맏형인 알렉스 영의 아들이다. 88년 'Blow Up Your Video' 투어 당시 알콜 중독에 시달리고 있던 말콤 영을 대신해 투어에 합류한 일을 연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말콤 영 대신 AC/DC의 리듬 기타를 치고 있다. 70년대부터 여러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고 80년대엔 스타 파이터즈라는 헤비메탈 밴드의 멤버로서 'Back in Black' 투어의 오프닝 밴드를 맡았다.  


Tantrum



앵거스 영이 AC/DC 결성 전에 적을 두었던 밴드. 15살 때 학업을 포기한 앵거스가 기타리스트 되겠다고 들어간 켄터키라는 밴드에서 바뀐 이름이다. 이 밴드는 이지비츠의 멤버였던 스티비 라이트의 프로듀싱 아래 레코딩을 하기도 했다.  


Tony Platt



영국의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 로버트(Robert John "Mutt" Lange) 밑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한 덕분에 [Highway to Hell] [Back in Black] 같은 명반들의 스태프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로버트가 빠진 [Flick of the Switch] 같은 앨범에서도 AC/DC와 인연을 이어갔다.   


Vacuum Cleaner & Sewing Machine  



밴드 이름을 놓고 고심하던 영 형제에게 누나 마가렛 영이 청소기(미싱이라는 설도 있다) 뒤에 붙은 'AC/DC'를 제안, 둘은 밴드의 강력한 사운드와 격렬한 퍼포먼스에 딱이라며 그 자리에서 밴드명으로 결정했다고.   


Velvet Underground



AC/DC 결성 전 말콤 영이 속해 있던 밴드. 물론 루 리드의 벨벳 언더그라운드완 아무 관계 없다. 70년대 초반 시드니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밴드에 말콤이 들어왔고 밴드는 티렉스, 롤링 스톤즈 등을 주로 커버했다. 말콤은 73년 밴드를 탈퇴, 보컬이었던 데이브 에반스와 함께 AC/DC를 결성했다.


W.Axl Rose



액슬 로즈 역시 AC/DC의 팬으로 유명하다.(지금은 팬을 넘어 AC/DC의 보컬 자리까지 꿰찼다.) 건스 앤 로지스 활동 초기 'Whole Lotta Rosie'를 즐겨 커버했고 이 버전은 일본에서 발매된 라이브 앨범 'Live from the Jungle'에 수록됐다. 액슬은 2009년 'Chinese Democracy' 투어에서도 같은 곡을 커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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