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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04. 2018

일본인이 쓴 한국 헤비메탈 역사

데스메탈 코리아(デスメタルコリア)


지난 9월1일 일본 펍립(PUBLIB)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이 나왔다. 제목은 ‘한국 메탈 대전: 데스메탈 코리아’. 이는 펍립이 기획한 ‘세계 과격 음악’ 시리즈 중 8번째 책으로 해당 출판사에선 이미 ‘데스메탈 아프리카’와 ‘데스메탈 인도네시아’ 따위를 내놓은 터였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데스메탈 코리아라니. 힙합(일본엔 ‘힙합 코리아’도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도 아니고 아이돌도 아니고 일렉트로닉도 아닌, 한국에서 철저한 마이너 장르인 헤비메탈을 무려 책씩으로나 다룬 것이다. 그것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 사람이. 아직 한국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책이 이웃나라에서 먼저 나온 일이 한편으론 충격이었고 어떤 면에선 부끄러웠다. 물론 국적을 떠나 이 땅의 헤비메탈에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준 사실은 그 자체 감동의 영역이므로 무조건 아쉬워 할 일만은 아니다. 그저 이런 책 앞에선 반갑다는 말을 제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책을 쓴 사람은 일본대학 영화학과를 졸업한 미즈시나 테츠야. 그는 중국 록의 아버지로 불리는 추이젠(崔健)을 계기로 아시아 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 록에 빠지며 98년부터 한국만 10번을 방문한 테츠야는 일본과 영국, 한국을 넘나들며 라이터·편집자·번역가로 활동, 60점에 이르는 단행본 및 잡지, 무크 제작에 관여해왔다. 대표작으론 ‘잉베이 맘스틴 자서전’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한 ‘한국 대통령 실록’,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다룬 ‘초대소라는 이름의 수용소’가 있다. 펍립 출판사는 ‘데스메탈 코리아’의 필자로 미즈시나 테츠야를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출판업계에서 15년 이상 커리어 보유
긴 시간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애청
한국어로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한국 메탈 대전: 데스메탈 코리아’는 그런 테츠야가 자신의 이름으로 탈고한 작가 데뷔작이다.


미즈시나 테츠야의 야심작 <한국 메탈 대전: 데스메탈 코리아>는 한국 메탈 아티스트 312팀의 앨범 384장을 다루고 있다.


헤비메탈을 전제로 장르별 총 8챕터로 나눈 이 책은 ▲무당, 작은거인, 시나위, 블랙 신드롬, 부활, 백두산 등 고전 밴드들을 소환한 ‘하드록/헤비메탈’을 시작으로 ▲사하라, 예레미, 넥스트, 고스트윈드, 가이아, 잠비나이 등을 다룬 ‘프로그레시브/심포닉/포크 메탈’ ▲크래쉬, 매써드, 피컨데이션이 등장하는 ‘스래쉬/둠/스토너/데스/브루털데스 메탈’ ▲서태지, 노이즈가든, 노바소닉, 피아 등 한국 대중들에게 제법 익숙한 이름들이 포진한 ‘그런지/얼터너티브/믹스쳐’ 칼파, 문샤인, 홀리마쉬, 새드 레전드, 미디안 등이 나오는 ‘블랙/멜로딕데스 메탈’ ▲바셀린, 삼청, 써틴스텝스, 디아블로, 할로우잰 같은 이름이 보이는 ‘하드코어/메탈코어/그라인드코어/데스코어/일렉트로코어’ ▲이브, 워킹 애프터 유를 다룬 ‘비주얼계/레이디스 밴드’ ▲그리고 다양한 기획과 의미를 담은 ‘컴필레이션 반(옴니버스/스플릿)’ 등 헤비메탈 관련 장르들을 뼛속까지 침투해 한국 메탈 아티스트312팀의 앨범 384장을 다루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헤비메탈 아카이브 인싸이클로페디아 메탈럼(Encyclopaedia Metallum)에 올라있는 237장보다 무려 174장이 많은 양이다. 테츠야는 여기에 자신의 지난 1년여를 꼬박 바쳤다.



한국 헤비메탈에 관심 있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쓴 책인 만큼 저자는 까다로운 분석보단 너그러운 정보전달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보인다. 가령 무당이나 잠비나이처럼 반드시 주목해야할 밴드의 경우 활동상황, 활동시기, 출신지, 비슷한 풍의 밴드, 디스코그래피를 짧게 다룬 뒤 팀의 바이오그래피 및 대표작(들) 리뷰를 적게는 1페이지, 많게는 2페이지를 할애해 실었다. 비록 바이오그래피까진 싣지 않았어도 개별 앨범으로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자가 판단한 팀들은 리뷰 형식으로 따로 기록했다. 여기에 시대가 시대인지라 어떤 SNS와 음원·포털사이트가 해당 밴드들을 다루고 있는지 조목조목 표시해둔 것은 독자들을 위한 작은 배려일 터다. 또한 책 속엔 제법 긴 인터뷰들이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데 읽는 이는 신대철과 안흥찬, 김세황 같은 한국의 유명 로커들, 메탈 레이블(도프엔터테인먼트)과 록 잡지(파라노이드) 대표 및 편집장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네 역사, 사회제도적 특징과 관련한 잡다한 디테일들이다.


또 하나 재밌는 건 책 속의 잡다한 디테일인데, 이 책은 시작부터 단군과 삼국시대, 발해와 고려, 조선까지 우리네 고대 및 중근세사와 3.1 독립운동, 한국전쟁, 4.19혁명, 10.26사건, 5.18혁명 등 한국 근현대사 관련 ‘용어설명’을 첨부 하고 들어간다. 여기에 지역갈등 문제,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한국 대통령들 소개, 한국의 검열제도와 병역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덤으로 얹었다. 저자가 굳이 이것들을 챙긴 건 아마도 대중음악이 정치, 사회, 역사와 불가분인 인간의 ‘삶’ 아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미즈시나 테츠야는 384페이지 중 14페이지를 활용해 온오프(음원사이트와 음반샵)양방향으로 독자가 할 수 있는 ‘한국 하드록/헤비메탈 음원 감상 방법’을 안내했고, 국내에서 밴드 활동을 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일상 한국어구도 소개했다. 또 존 명(드림 씨어터)과 조 한(린킨 파크)같은 한국계 해외 뮤지션들은 물론 유럽과 미국 록밴드들의 내한공연 역사(333건), 일본 뮤지션들의 내한공연 역사(418건), 한국 아티스트들의 해외공연 역사(317건, 일본 제외), 한국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종류 등을 부록처럼 덧붙이며 우리와 관련된 헤비메탈 역사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담아내려 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대한민국 헤비메탈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착실하게 엮은 음반가이드, 아카이브다. 비록 일본어를 몰라도 한국 헤비메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쭉 훑어만 봐도 흥미로우리. 때와 장소가 무의미해진 인터넷 글로벌시대에, 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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