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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5. 2020

프린스가 존경한 거장들의 거장

조니 미첼: 삶을 노래하다


그녀는 삶의 고락을 탐사하며 영원한 슬픔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란츠 슈베르트까지 나아가는 아트 송의 전통을 20세기에 이어받은 거장이며, 밥 딜런이나 레너드 코언 같은 ‘내성적인 달변가’다. 하지만 멜로디나 하모니 영역에서 조니는 그들을 넘어섰으며, 재즈 명인들만 만족스럽게 연주할 법한 코드를 구사했다 (…) 아름다움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간직한 그녀의 레코드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돌고 있다.


책의 저자 데이비드 야프는 조니 미첼에 관해 이렇게 썼다.  


그는 1943년 11월 7일 교사 어머니와 전직 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타 조앤 앤더슨(조니 미첼의 본명)이 2015년 3월 31일 주방에서 의식을 잃은 채 3일이나 방치돼 “거의 죽을 뻔” 한 순간까질 그녀가 발매한 앨범들을 중심으로 추적해 나간다.


거기엔 “사랑의 언어를 가르쳐 준” 조니의 은사 아서 크라츠만에게 헌정한 [Song To A Seagull]을 비롯해 처음으로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운 조니의 앨범 [Ladies Of The Canyon], ‘Tangled Up In Blue’란 곡을 쓸 때 밥 딜런이 푹 빠져 있었던 [Blue], 공공연한 조니의 팬이었던 프린스가 가장 좋아한 [The Hissing Of Summer Lawns], 조니와 밴드를 하는 게 꿈이라고 밝힌 지미 페이지의 애청반 [Court And Spark], 재즈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의 곡에 가사를 붙인 [Mingus], 마음 먹고 정치 메시지를 시전 한 [Dog Eat Dog], 70인조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감행한 셀프 커버작 [Both Sides Now],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앨범이 될 확률이 높은 [Shine]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이 책은 레너드 코언과 그레이엄 내시, 데이비드 크로스비와 제임스 테일러, 재코 패스토리어스 등 그녀와 짧게든 길게든 사랑을 나눈 유명인들과 래리 칼튼, 팻 메시니, 허비 행콕 같은 재즈 거장들(행콕은 조니를 가리켜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싱어”라고 말했다)이 그녀와 음악으로 소통한 순간들도 담고 있어 흥미롭다. 물론 음악평론가인 저자가 단순히 그런 조니의 살아온 이야기, 조니 음악에 대한 인상비평만을 써둔 건 아니다. 예컨대 'Coyote'라는 곡에서 데이비드는 “대위법에 기반한 얼터네이팅 베이스 코드로 진행”하는 재코의 연주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은 독자들이 조니 미첼의 음악을 음악으로 더 깊게 들을 수 있도록 필자가 심어둔 사려 깃든 조건들로 기능 한다. 참고로 조니는 재코를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준 베이시스트”로 기억했다.


저자 데이비드 야프는 이 모든 걸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조니와 관계를 맺은 수 십 명 사람들과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다. 그리고 음악 저널리스트 어맨다 페트루식은 10년 묵은 이 700쪽 짜리 평전이 “조니 미첼을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 했다”고 평가했다.


주디 콜린스가 불러 히트한 'Both Sides, Now'는 그러나 조니 미첼이 부를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조니 미첼. 그녀는 드뷔시와 라흐마니노프, 에디트 피아프와 마일즈 데이비스를 사랑하는 음악가 이전에 피카소와 렘브란트, 고흐도 흠모 했던 화가였다. 조니는 그런 스스로를 “슬픔을 노래하고 기쁨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숨소리 섞인 소프라노와 바리톤 우쿨렐레, 존 바에즈와 주디 콜린스를 동시에 탑재한 그 독보적인 목소리로 조니는 포크와 록, 재즈와 클래식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화시켜 냈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조니는 어린 시절 램버트 헨드릭스 앤드 로스(Lambert, Hendricks & Ross)를 자신의 비틀스로 여겼다. 밥 딜런의 스토리텔링, 그러니까 곡 하나에 사람 하나를 다룬 것 같은 개인적 서사에 영향 받은 그녀를 신경과학자이자 뮤지션인 대니얼 레비틴은 “곡 구조와 화성학 관점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아한 언어와 신랄한 아이러니(앨범 [For The Roses]에 보낸 ‘뉴욕 타임스’의 찬사)를 병치시킬 줄 알았던 조니는 누군가로부터 영향 받았을 때조차 여전히 독립적(이 책 172페이지)이었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과거 조니와 작업한 기타리스트 로벤 포드는 “C3 화음 위에 G3 화음을 얹는” 악기 조율 방식이 그런 조니의 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분짓는다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조니 미첼만이 들려줄 수 있는 “불협화음과 듣기 좋은 화음의 달콤한 결합(이 책 461페이지)”이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조니를 “천상의 언어를 쓰는 환상적인 여성”이라 말했지만 그녀는 지금의 인디 뮤지션들이 그렇듯 자기 주장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과거 뱅가드 레코즈를 이끌던 존 바에즈의 러브콜을 “노예짓”이라며 일축한 일, 또 ‘권위’보단 ‘조력’이란 개념을 더 좋아한 조니가 프로듀서를 ‘인테리어 업자’ ‘거머리’ ‘베이비시터’로 격하시킨 건 조니가 얼만큼 자기확신에 찬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모르긴 해도 저자가 조니를 “우리가 셀러브리티 세상으로 파견한 밀정”이라 표현한 건 필시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생전의 프린스는 조니 미첼을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공공연히 꼽곤 했다. 그가 부른 'A Case Of You'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조니 미첼 커버'일 것이다.


“삶은 고통이다. 살아남는다는 건 고통 속에서 뭔가 의미를 발견해 보려는 것”이라는 니체의 말을 좋아한 조니 미첼. 개인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대중음악 속에 초대한 그녀는 지금 소아마비후 증후군과 모겔론스 신드롬에 긴급 뇌 수술까지 받고 13년째 창작을 멈춘 상태다. ‘혼자’와 ‘외로움’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달려온 그녀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가, 부디 이 책에서 멈추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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