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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09. 2016

Telefly - 무릉도원


블루스(‘My Blues’)와 디스코(‘God of Disco’)로 “궁극의 사이키델릭([Ultimate Psychedelic])”을 들려주려 했던 텔레플라이도 이제 햇수로 6년차 밴드에 접어들었다. 보컬/기타를 맡은 밴드의 핵심 김인후를 중심으로 베이시스트 허정현과 드러머 장희원까지 3인조로 출발한 이들은 산스크리트어로 ‘관세음보살’을 뜻하는 미니앨범 [Avalokiteśvara]에서 베이스는 이재혁에게, 그리고 드럼은 베테랑 오형석에게 각각 맡겼다. 김인후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허정현의 부재는 단순히 군입대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번 앨범 [무릉도원]부터 다시 텔레플라이의 베이스를 잡았다.


 원테이크 녹음과 추가 트랙 더빙을 택했던 데뷔작과 달리 오버더빙을 배제하고 인디 록 앨범들을 주로 마스터링 해온 뉴욕의 JLM스튜디오에 최종본을 의뢰한(김인후의 의지대로였다면 “최대한 거칠고 드럼을 크게” 했을) [Avalokiteśvara]는 바야흐로 텔레플라이의 음악 성향이 새로 규정되는 지점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텔레플라이의 창시자” 김인후의 사상과 취향이 팀의 음악 색깔에 보다 깊숙이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맞겠다. 이 앨범에서 김인후는 만화가 고우영의 <서유기>와 주성치의 <쿵푸허슬>, 그리고 달라이 라마를 담보로 대선배 신중현이 추구한 “상상하는 음악”을 동양적으로 펼치는데 집중했다. ‘메아리’에서 ‘여래신장’까지 펼쳐진 그 강렬하고 때론 공허한 블루스(록)의 여백은 이제 겨우 30대에 접어든 김인후가 이제 막 세상을 등진 비비 킹(B.B. King)을 흠모했다는 작은 단서이자, 영감의 원천인 동시에 결박이었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을 벗어나기 위한 본격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헨드릭스와 스티비를 따돌린, ‘모던’한 킹 크림슨(King Crimson) 같은 텔레플라이가 작정하고 신선의 세계로 진입하였으니, 바로 두 번째 앨범 [무릉도원]이다. 중국 후난 성의 한 어부가 발견한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을 앨범 제목으로 택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음악의 세계가 결국 ‘삼라만상’과 ‘신神’을 겨냥하고 있음을 간접으로 전하고 있다. 근래 들어 인도와 태국의 전통음악에 빠져 사는 김인후가 “상상력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탐닉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바로 이번 앨범 [무릉도원]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 이른바 ‘무위자연의 삶’을 바라는 듯 보이는 앨범 재킷을 넘겨 처음으로 우리 귀를 적시는 것은 ‘술병이 깨져 놀랐다네’라는, 꽤나 도발적이고 노골적인 동양색이다. 지난 가을, 유튜브를 통해 몰래 공개된 ‘와호장룡’의 인트로 같은 이 곡은 텔레플라이가 음악적으로, 그것도 너른 보폭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증명한다. 오리지널 빈티지 퍼즈 기타로 중무장한 ‘날 좀 내버려둬’에서 왈츠 리듬으로 반전하는 후반부도, “동요 같던” 전작의 ‘구름’보다 좀 더 성숙해진 스카 트랙 ‘방랑자’도 모두 틀림없는 진화의 증거들이다.특히 ‘방랑자’에서 아날로그 딜레이 톤을 찢는 김인후의 폭풍 같은 기타 솔로, 그리고 마지막 꽹과리 같은 오형석의 차이나 심벌 플레이는 지금 이들이 동서양의 조화를 넘어 우주와 종교의 영역까지 음악으로 넘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소리의 상상 또는 상상의 소리가 환희와 소멸로 번뇌하는 ‘삼라만상’, 반복되는 코러스 사이로 트리오 록 밴드 연주의 모든 것을 구겨 넣은 ‘태양의 노래’의 사운드 디자인은 그래서 이 앨범, 지금 텔레플라이의 가장 뚜렷한 음악적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신중현과 엽전들이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만난 듯한 ‘영웅’의 헤비니스와 EP에서보다 더 끈적하고 길게 비틀린 ‘신’은 그런 이들의 기운이 록(Rock)이라는 장르에 여전히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들려주는 것이다.


김인후의 ‘동양 감성’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허정현의 베이스 신스 이펙터가 뭉툭뭉툭 기타 멜로디를 썰어내는 ‘나비야’를 들으며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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