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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14. 2019

오프스프링의 긍정적 과도기

The Offspring [Americana]

도쿄 시부야의 한 술집에서 일본인 친구와 잔을 기울이다 자연스레 미국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친구에게 미국이란 나라의 이미지는 1년 365일 파티에 축제에 언제나 즐겁고 넉넉해 보이는, 한마디로 “나도 저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파라다이스였다. 이는 단순히 일본인 한 사람만의 사적인 의견이 아닌 아마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지는 종합, 보편적인 이미지일 게다. 그것은 다시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가 미국에 가지는 일종의 동경, 이른바 아메리카 드림의 맥락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Americana : 미국에 관한 문헌(사물), 미국의 풍물(사정), 아메리카지(誌)



하지만 정작 미국 출신 펑크 밴드 오프스프링의 생각은 남의 떡을 크게 보는 아시아인들과 조금은 다른 듯하다. 'The Kids Aren't Alright'라는 곡에서 미국에 대한 밴드의 생각(또는 앨범의 총체적인 주제 의식)은 매우 적절하게 요약되고 있는 바.


"기회는 버려졌고

무엇도 자유롭지 않아

이전의 바람들은

여전히 어렵고 막막해

간당간당한 삶

산산이 부서진 꿈들"


이 곡에 따르면 미국이란 나라는 천국보단 지옥에 가깝다.


아시아인들이 꿈꾸는 미국엔 사실 저런 악몽 같은 이면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미국이란 나라가 그저 풍요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곳만이 아님을, 햇수로 21주년을 맞는 밴드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Americana]는 아메리카지(誌)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쓰여졌고 또 여태껏 남아있다. 이 리뷰의 출발은 바로 여기서부터여야 할 것 같다.


'Come Out and Play'에 무등 탄 특급 싱글 'Pretty Fly(for a White Guy)'


[Smash]는 정말 대단한 앨범이었다. 그것은 'Come Out and Play', 'Gotta Get Away', 'Self Esteem', 'What Happened to You?'를 앞세워 2019년 1월 현재까지 전세계에 천 만 단위로 팔려나가 에피타프(Epitaph Records)를 인디 레이블 역사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밴드 역시 그 주인을 믿고 좋아했다. 그러나 모두의 레이블이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형편을 알게 되면서부터 오프스프링은 조심스럽게 메이저 행을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렇게 공개된 메이저 1탄이 바로 [Ixnay on the Hombre].(유럽에선 에피타프를 통해 발매.) 밴드는 메이저로 이적한 자신들을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팬들 앞에 선보일 이 앨범을 만드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술회한 적이 있는데, 정작 그 결과물은 의외로 괜찮은 것이었다. 물론 평단이 보낸 뜻밖의 냉소와 전작에 훨씬 못 미친 판매고는 결과물의 질(質)과는 별도의 결과로 해석되어야 하겠다.


대한민국에선 이 때까지만 해도 'Come Out and Play'가 오프스프링의 대명사였다. 아무리 들어봐도 [Ixnay on the Hombre]엔 저런 빅싱글이 없었기 때문에. 허나 그로부터 1년 여 뒤 오프스프링은 'Come Out and Play'를 대신할 메가히트 싱글을 마침내 가지고 돌아왔으니 바로 'Pretty Fly(for a White Guy)'다.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으로 오프스프링은 대한민국에서 그 해 가장 잘나가는 팝(?)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로큰롤, 그 중에서도 때론 대중적이라는 사실이 비판의 빌미가 되곤 하는 펑크 앨범으로선 그야말로 이례적인 결과였던 것. 바야흐로 오프스프링의 긍정적 과도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오프스프링은 'Pretty Fly(for a White Guy)'로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이 곡의 인기는 대단했다.


데프 레파드(Def Leppard)의 83년작 [Pyromania] 수록곡 'Rock of Ages'의 인트로(Gunter Glieben Glauten Globen)를 그대로 가져다 쓴 'Pretty Fly(for a White Guy)'는 갱스터가 되고 싶어하는 어설픈 백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아 트렌디(Trendy)에 집착하는 미국 젊은이들의 덧없는 꿈, 그 그늘진 갈증을 밝고 신나는 사운드에 실어 역설(逆說)로써 역설(力說)하고 있다. "살사(Salsa)와 얼터너티브 락이 만났다"고 한 올뮤직가이드의 촌평을 뒷받침하듯 둥실덩실대는 기타 리프, 뻔뻔하고("Aha~Aha~") 앙증맞은("Give it to me baby~") 남녀의 낯뜨거운 코러스 균형은 이 대박 싱글의 사운드상 중추가 되어 곡에 쌈박함을 더해준다.

 

‘She's Got Issue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이야기?


다운로드로 대표되는 디지털 루트든 시디를 거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아날로그 주의자든 이 앨범의 문을 연 모든 사람들을 환영(Welcome)하는 멘트가 짤막하게 흐르고 나면 접속곡 'Have You Ever'와 'Staring at the Sun'이 힘찬 어깨동무를 한다. 80년대 하드코어 펑크에 영향 받은 밴드답게 간직된 속도감과 그린 데이(Green Day)와 더불어 네오 펑크(Neo-Punk) 시대를 이끈 선구자답게 살가운 멜로디는 [Smash]에 이은 성공의 전주곡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어 앞서 언급한 첫 싱글을 건너 뛰면 앨범의 넘버2라 할 만한 'The Kids Aren't Alright'를 만나게 된다. 조이 라몬(Joey Ramone)이 생전에 칭찬한 곡의 제목은 후(The Who)의 곡 'The Kids Are Alright'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보면 맞겠다.


한 인터뷰에서 누들스(Kevin 'Noodles' Wasserman)가 "나는 후의 광팬이다 (...) 우린 단지 그들을 인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볼 때 정반대 곡 제목에 굳이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덱스터(Dexter Holland)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주변 친구들의 비참한 일상이 동기가 된 이 곡은 방송용으로는 적절치 못할 듯한 직설적 헤비함에도 불구하고 MBC '형사'라는 프로의 엔딩을 장식하며 한국 대중들에게도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덱스터 홀랜드가 따로 아꼈던 'She's Got Issues'는 휘트니 휴스턴의 이야기라는 설이 있었다.


다음 곡 'Feelings'는 브라질 출신 뮤지션 모리스 알버트(Morris Albert)의 고전으로, 그 달콤했던 사랑(Love)이 순식간에 서슬퍼런 증오(Hate)로 바뀌어 질주하는데 원곡에 충실했던 라몬즈(Ramones)의 커버 'I Wanna be Sedated'에 비하면 그야말로 엽기에 가까운 리메이크다. 팬들은 당연히 원곡의 작위적인 감성보단 이 버전이 가진 본능적인 질주감을 더 사랑한다. 그리고 오프스프링의 물오른 팝 감각을 엿볼 수 있는 'She's Got Issues'는 덱스터 홀랜드가 다른 곡들보다 좀 더 아끼는 곡으로 항간에선 그 가사 내용을 두고 휘트니 휴스턴의 인생 이야기라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Ob-La-Di, Ob-La-Da'의 부활 'Why Don't You Get a Job'


사실 전작 [Ixnay on the Hombre] 시절에 만들어졌던 곡은 마지막 곡 'Pay the Man'이지만 사운드상으로 그 연관성을 찾자면 붙은 세 곡 'Walla, Walla', 'End of the Line', 'No Brakes'에서가 더 자연스럽겠다. 두 장 앨범 어디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은 통일감을 이 곡들은 똑같이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앨범에 수록된 이유라면 역시 아메리카를 반추하는 앨범의 주제에 가사 내용이 좀 더 어울렸기 때문이었으리라. 선택은 적절했고 그것들은 훌륭하게 앨범의 공백을 채워주었다.


비틀즈(The Beatles)의 ‘Ob-La-Di, Ob-La-Da’가 부활한 듯 정다운 스카 펑크 'Why Don't You Get a Job'은 언제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Cecilia'와 더불어 소개되며 소스 판정을 받는 앨범의 대표곡인데 영향력이란 측면에선 'Pretty Fly…'에 미치지 못했지만 감각이란 측면에서 'She's Got Issues'는 뛰어넘은 곡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외 열 한 챕터의 각론을 추스려 단박에 일갈하는 총론격 'Americana'와 아랍 멜로디에 대한 밴드의 집착과도 같은 ‘Pay the Man’(그리고 덧붙은 보너스 트랙)까지를 보내고 나면 비로소 앨범의 문은 닫힌다.


예술성+상업성+사회성=[Americana]


흔히 한 장의 앨범을 논할 때 기준은 상업성과 예술성이다. 상업적이면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예술적이면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손쉬운 정의 패턴인 것이다. 물론 이건 꽉 막힌 이분법에 불과하다. 가령 예스(Yes)의 [Fragile]같은 앨범은 예술성을 중시하는 평단으로부터도 별 다섯 만점을, 상업성을 척도로 내세우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도 46주간을 머물며 최고 4위까지 오른 바 있기 때문이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남긴 자타공인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또 어떤가. 예술성 면에서 일말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이 난해한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200위 안에 무려 741주(14년)간이나 머문 사실은 우리에게 꽤 많은 것을 시사한다.


'Why Don't You Get a Job'은 비틀즈와 사이먼 앤 가펑클이 스카펑크로 대동단결한 곡이다.


태도와 정신을 중시하는 펑크 밴드를 놓고 예술성을 논한다는 게 왠지 어색하지만 [Americana]는 바로 그 예술성과 상업성에 사회성까지 곁들여진 앨범이라는 것이 이 리뷰의 결론이다. 음악(예술성)만을 놓고 봤을 때도 판매고(상업성)만 놓고 봤을 때도 그리고 앨범의 주제(메시지)만 놓고 봤을 때도 이 앨범은 정말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과 같다. 90년대 들어 너바나(Nirvana)와 콘(Korn), 그리고 린킨 파크(Linkin Park)만큼 오프스프링이 대한민국에서 사랑 받지 못했다고 그 누가 쉬 단정지을 수 있을까. [Americana]가 있는 한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단정지을 수 없는 단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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