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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Dec 19. 2019

마이크 포트노이

Dream Theater


그의 드러밍을 듣고 있으면 ‘어쩌면 드럼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밴드에서 드럼을 리드 악기로 여기게 한 드러머인 링고 스타를 보고 드럼의 세계로 뛰어든 그는 칼 파머와 빌 브루포드, 앨런 화이트와 비니 콜라유타, 데이브 롬바르도와 존 본햄을 엮어 다른 모든 파트를 헤쳐모여 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드러머로 역사에 남았다. 20개에 이르는 북들과 31장의 심벌, 그리고 차임·탬버린·트리거 패드(Roland PD-8 Trigger Pad) 등 액세서리 6개로 둘러싸인 그의 드럼 셋은 하나의 성(城)이요 세계였다. 드럼 전문지 <모던 드러머>에서만 30개 이상 상을 받은 드러머. 듣는 순간 연주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드러머. 리듬이라는 추상 속에 구체적인 인격과 개성을 심은 드러머. 바로 드림 씨어터의 마이크 포트노이다.


마이크 포트노이를 세간에 알린 건 분명 드림 씨어터지만, 그가 계속 드림 씨어터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포트노이는 많은 밴드를 거쳤거나 지금도 거치고 있다. 기타리스트 마이크 올랜도와 의기투합한 아드레날린 몹, 딥 퍼플의 스티브 모스와 결성한 플라잉 컬러스, 미스터 빅의 두 ‘빅 뮤지션(빌리 시헌, 리치 코첸)’과 살림을 차린 와이너리 독스, 역시 빌리 시헌과 데렉 세리니언(키보드)에 제프 스콧 소토(보컬)가 가세한 선스 오브 아폴로, 메가데스의 베이시스트(데이비드 엘렙슨)와 테스타먼트의 기타리스트(알렉스 스콜닉)를 영입해 만든 메탈 얼리전스(Metal Allegiance)까지. 그는 헤비메탈과 재즈,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범주 안에서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음악 세계를 그야말로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신나게 펼쳐왔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드림 씨어터의 마이크 포트노이’만 언급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드러밍은 드림 씨어터에서 시작돼 드림 씨어터에서 끝났다는 게 내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후 그가 결성한 밴드들을 통해 펼친 음악, 퍼포먼스는 드림 씨어터 시절 것들을 전혀 압도하지 못했고 결코 그것들에 미치지 못했다. [Images And Words] 시절부터 비트의 심장을 움켜쥐어 급기야 터뜨리고 으깨버린 포트노이의 플레이는 드림 씨어터 시절 것만 다뤄도 충분하다. 그것들만 소화해내어도 당신은 포트노이를 감상할 수 있거나 따라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그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 물론 엄청난 연습과 재능이 뒤따라야겠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가장 유명한 밴드 이름처럼 옴니버스 식 서사를 머금은 포트노이의 드러밍을 나는 ‘시네마틱 드러밍’이라 부르고 싶다. 응축과 분열을 번갈아 일으키는 스마트 필인(‘Stream Of Consciousness’에서 기타와 키보드의 기브 앤 테이크 솔로 때), 9/8박 또는 6/8박과 7/8박을 섞어 토해내는 리듬의 아찔한 탄력(‘The Great Debate’)은 과연 히치콕의 클로즈업이나 세르게이의 몽타주에 비할 만하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서스펜스와 갈등, 기대와 반전은 그대로 마이크 포트노이라는 드러머가 연출한 리듬 세계의 본질에 정확히 맞닿았으니, 포트노이는 스틱이라는 메가폰을 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였고 그가 두드린 드럼 셋은 <지옥의 묵시록>의 마틴 신 또는 <대부>의 알 파치노였다.


어린 시절 나를 충격의 도가니로 빠뜨린 ‘Take The Time’과 ‘Under A Glass Moon’, ‘The Mirror’와 ‘Change Of Season’(토니 맥켈파인, 빌리 시헌과 함께 연주한 버전이 유튜브에 있는데 그는 정말 여기서 기타와 베이스를 ‘지휘’하고 있다), ‘The Dance Of Eternity’와 ‘In The Presence Of Enemies Part 1’은 바로 그런 명감독(포트노이)과 명배우(타마 드럼)가 만나 빚어낸 가장 묵직한 마스터피스들이다. 



포트노이의 프레이즈는 까다롭다. 드러머 자신은 황홀경에 취해 울창한 비트 사이를 가소롭게 넘나들지만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 청자가 정박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이 타자(打者)는 이미 엇박의 샛길로 빠져 있다. 그는 다른 연주자들을 이끌기 위해 한 움큼 리듬을 사들이다가도 금세 그 연주자들을 받쳐주려 미련 없이 그것들을 버리기도 한다. 그의 드러밍은 자유로운 즉흥이면서 갇힌 계산이고, 현란한 미적분 아래에서 하품 하는 여유의 문학이다.     


언뜻 마이크 포트노이는 테크닉을 남발하는 드러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만이 휘두를 수 있는 조직적인 남발은 헐렁한 스틱킹과 단단한 킥킹 안에서 이내 균형이라는 미덕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재즈 평론가 테드 지오이아의 말을 빌리면 “즉흥 연주로 도약할 짜릿한 가능성을 무수히 많이 간직한” 드러밍이다. 때문에 우린 좀 더 집중해 그의 플레이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 연주들 속에 얼마나 철저하고 계산적인 프레이즈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 안에선 또한 얼마나 또렷하고 정중한 낭만의 비트들이 맴돌고 있는지. 모든 것은 드림 씨어터에서 시작해 드림 씨어터에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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