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들은 에릭 클랩튼은 자신의 기타를 불태워버리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내 경우 위대한 드러머들의 연주를 접하고 나면 그저 '연습' 말곤 하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닐 피어트
영화 <스쿨 오브 록>을 보면 가짜 교사 듀이 핀(잭 블랙)이 밴드 멤버가 된 아이들에게 '록 바이블' 한 장 씩을 집에 가 들어오라는 숙제를 내주는 씬이 있다. 기타를 맡은 잭 무니햄에겐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Axis: Bold As Love>를, 건반을 치는 로렌스에겐 예스의 릭 웨이크먼을 본받으라는 뜻에서 <Fragile>을 건넨다. 풍부한 성량을 지닌 백코러스 토미카에겐 클레어 토리를 소개하기 위해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을 준 듀이는 "역대 최고 드러머"라며 말썽꾸러기 드러머 프레디에게 러시의 <2112>를 준다. 바로 닐 피어트를 듣고 오라는 말이었다.
내가 닐 피어트를 처음 안 건 마이크 포트노이를 통해서였다. 더 정확히는 드림 씨어터를 통해 러시를 접한 것인데, 알고보니 러시는 1976년부터 5년 사이 [2112], [A Farewell To Kings], [Hemispheres], [Permanent Waves], [Moving Pictures]라는 명반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유행을 20년 앞서 예고한 밴드였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계보에서 언제나 최고 자리에 있던 드림 씨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는 바로 그런 러시의 '지적인 드러머' 닐 피어트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실제 러시의 'Cygnus X-1 Book I: The Voyage'나 'YYZ', 'The Trees' 에서 감행한 닐의 박자 놀음은 10여 년 뒤 등장할 마이크 포트노이의 리듬 쪼개기를 앞서 들려주었고, 'Tom Sawyer'에서 말끔하게 비트를 빚어나가는 닐의 섬세함은 현란하면서 단정한 포트노이의 드러밍이 어디에 빚 졌는지를 누구라도 알게 해줬다.
아프로비트와 스윙, 하드록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닐 피어트는 드럼으로 글을 쓰는 연주자였다. 힘있는 매치 그립으로 키스 문과 존 본햄의 거친 맛을, 느슨한 트래디셔널 그립으론 진 크루파/버디 리치 풍 루디먼트에 스티브 갯의 안정감을 두루 녹여낼 줄 알았던 그는 중년 이후 일렉트로닉/어쿠스틱 드럼들로 '360도 하이브리드 킷'을 세팅하며 자신만의 작은 우주를 만들었다. 그렇게 미디 트리거 패드, 아카이(AKAI) 디지털 샘플러, 롤랜드 V-드럼 등이 장착된 그의 드럼킷은 한때 튜블라 벨, 우드블록, 차임, 벨트리 등으로 'Xanadu' 같은 미니 오케스트라 트랙도 배설해냈었다.
신학과 우주, 판타지와 SF, 전체주의와 자유주의를 사상 속에 간직했던 닐 피어트는 마크 트웨인과 칼 세이건, 아인 랜드와 윌리엄 깁슨, 존 스튜어트 밀과 한나 아렌트를 자신의 가사와 드러밍 아래서 마음껏 버무렸다. 드럼으로 철학하는 법을 알았던 닐은 그야말로 북 치는 하이데거였고, 'La Villa Strangiato'로 절정의 폐곡선을 그린 그의 난해한 프레이즈는 사지(四肢)로 휘갈긴 <존재와 시간>이었다. 닐 피어트는 데이브 그롤의 말마따나 정말로 "스틱 두 개를 손에 쥐고 꿈을 좇던" 드러머였다.
2020년 1월 7일. 그런 닐 피어트가 3년 6개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암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밴드 러시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우리 친구가 떠난 것에 가슴이 미어진다"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했다.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도 "전설을 잃었다. 그가 남긴 것들과 영향력은 캐나다를 넘어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며 자국의 국보급 드러머를 기렸다.
글로 옮긴 사상을 리듬으로 재구축 했던 드러머 닐 피어트. 논리와 긴장을 돋운 그의 연주는 차라리 연구에 가까웠고, 그가 남긴 수 많은 패턴들은 결국 '리듬으로 쓴 논문'으로 역사에 새겨졌다.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런 닐의 "열정과 방법론, 원칙과 헌신"을 따로 되새겼다.
러시의 마지막 앨범 [Clockwork Angels](2012)를 틀고 고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