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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14. 2016

사이먼 필립스

#9 드러머의 이 한 장 - [Absolutely Live]

깔끔하고 정확하다는 면에서 그는 팝 드러머다. 느슨하거나 현란하단 점에서 또한 재즈 드러머이며, 호쾌하단 점에서 그는 자타공인 록 드러머이기도 하다. 카멜(Camel),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개리 무어(Gary Moore), 아시아(Asia), 스탠리 클락(Stanley Clarke), 마이클 쉥커 그룹(Michael Schenker Group) 등과 연주를 섞은 데서 사이먼 필립스(Simon Phillips)의 그런 성향은 비칠 것이다.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그를 찾았고 그와 어울렸다. 최고 세션 드러머 중 한 명이었던 그가 당대를 주름잡은 세션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한 토토(Toto)에 들어온 건 그래서 당연한 듯 보였다. 외려 왜 이리 늦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합류는 어쩌면 음악 팬들의 무의식 속 갈증과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어디 내놔도 꿀릴 것 없는 실력파답게 사이먼은 신고식도 라이브 앨범([Absolutely Live])으로 치렀다. 이게 벌써 22년 전. 앨범은 79년작『Hydra』의 타이틀 곡부터 시작하는데 토토에 언제 제프 포카로라는 드러머가 있었을까 싶으리만치 사이먼 필립스는 한 타 한 타 자신의 영역을 쌓아 나간다. 마르고 빳빳한 스네어 톤과 반대로 깊고 탄력 있는 베이스 드럼, 탐탐 톤의 대비는 난무하는 폴리리듬에 파도처럼 덮치는 더블 베이스 드러밍의 근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밴드의 양 축이랄 수 있는 데이비드 페이치(David Paich)와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의 그 화려한 테크닉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리듬 세계를 책임져나가는 모습은 다른 프로 드러머들조차 그를 왜 존경하고 사랑하는질 대번에 알게 해준다.

토토의 라이브 명반 [Absolutely Live]. 사이먼 필립스는 이 앨범으로 토토 멤버로서 신고식을 치렀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토토의 하이라이트였기도 한 「Rosanna」. 플램(Flam)으로 크게 끊은 스네어로부터 잘디 잔 6연음을 탐탐으로 흘려 넣는 이 곡에서 사이먼은 제프 포카로의 치밀한 셔플 비트를 나름 재연해내는데, 차이라면 제프 쪽이 보다 섬세하고 예리했다는 사실이다. '힘'을 강조한 사이먼의 드러밍은 그럼에도 4분30초대부터 작렬하는 데이비드와 스티브의 솔로 타임에 템포 바꿈과 변박으로 응수하며 끝끝내 이 곡, 이 앨범의 주인공임을 자처한다. 그야말로 더 이상일 수 없는, 압도적인(Absolute) 드러밍이다.   

2007년 파리 공연에서 연주한 'Rosanna'. [Absolutely Live] 연주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니 참고 바란다.

「Africa」에서 타임 키핑 역시 탁월하다. 토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긴 그 울창한 코러스까지 데려가줬다 다시 데려오는 일련의 과정을 그는 완벽하게 꾸려낸다. 한편, 헤비한 「Hold the Line」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셔플 라인은 로큰롤 드러머인 사이먼의 면모. 앞선 「Kingdom of Desire」완 다른 차원에서 중후하고 매너 있는 그의 비트 덩어리는 스티브 루카서의 속주를 관중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중반부 카덴자를 제외하곤 딱히 화려한 테크닉을 선봬지 않았음에도 와 닿는 이 편안함과 시원함은 역시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독보의 플레이다. 

이 역시 2007년 파리 공연에서 연주한 'Africa'. [Absolutely Live] 영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제프 포카로보다 낫다 아니다 같은 유치한 비교는 소모적이다. 그저 이 앨범이 증명한 것이라면 제프 포카로 없이도 토토가 계속 나아갈 수 있(겠)단 사실이었다. 멤버들도 팬들도 모두 그걸 느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스티브 포카로(Steve Porcaro)와 바비 킴볼(Bobby Kimball)의 부재보다 좀 더 본질적인 쟁점이었는데 그걸 일축시킨 존재가 바로 사이먼 필립스였던 것이다. 깨어지고 있는 마티니 잔이라는 동(動)과 그걸 접사로 부여잡은 정(靜)이 담긴 앨범 커버는 마치 사이먼의 플레이를 닮지 않았는가. 2007년작 『Falling in Between Live』이후 토토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지만 우리의 영웅은 당시 데렉 쉬리니안(Derek Sherinian)과 우에하라 히로미(Hiromi Uehara)의 앨범들에 참여하며 세션맨으로서 항상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무려 9년 만에 세상에 나온 토토의 14번째 스튜디오 앨범 [XIV]의 크레딧에 사이먼 필립스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키스 칼록(Keith Carlock)이라는 새로운 드러머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토토 드러머'로서 사이먼 필립스를 향한 팬들의 호불호가 '불호' 쪽으로 기운 것인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Absolutely Live]에서 만큼은 그가 최고(또는 최적)의 '토토 드러머'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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