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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05. 2020

#84 : 마키하라 노리유키

마키하라 노리유키(槇原敬之). 사진출처=PR TIMES.


올해로 지천명에 접어든 마키하라 노리유키(槇原敬之). 애칭은 '맛키(マッキー)'다.


오사카 부립 카스가오카(春日丘) 고등학교를 졸업, 아요야마가쿠인 대학까지 진학했지만 프로 뮤지션으로서 바쁜 일정으로 곧 자퇴했다.


대단한 애견가로 알려진 마키하라는 한때 프렌치 불독 다섯 마리와 퍼그(Pug) 한 마리를 동시에 키우기도 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토요 카푸(広島東洋カープ)의 팬이기도 하다.


마키하라는 16살 때인 1985년 사카모토 류이치가 진행하던 NHK FM '사운드 스트리트’ 데모 테잎 코너에 C.M.C(Compressors Music Club)란 이름으로 'Half'라는 곡을 응모했다. 그의 곡을 들은 류이치는 "균형 잡힌 완성도. 흠 잡을 데가 없다”며 극찬 했고, 마키하라의 곡은 당시 이례적으로 풀코러스가 방송을 탔다.


1990년 ‘악시아(AXIA) 뮤직 오디션 ’89’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마키하라는 같은 해 워너뮤직을 통해 싱글 ‘NG’와 앨범 [네가 웃을 때 너의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을 내고 공식 데뷔 했다. 이듬해 영화 <취업 전선 이상 없다> 주제가로 쓴 싱글 ‘언제라도’가 밀리언 셀링을 기록해 마키하라는 류이치가 알아본 천재성을 발휘할 발판을 일찌감치 마련한다. ‘언제라도’는 그 시절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광고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마키하라의 데뷔작 [네가 웃을 때 너의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왼쪽)과 첫 밀리언 셀러 [너는 나의 보물](오른쪽) 앨범 커버.


1992년 6월 25일 세 번째 작품 [너는 나의 보물]을 발표. 나중에 그의 대표곡으로 남는 ‘멀리멀리’를 수록한 해당 앨범은 마키하라 이력에서 첫 밀리언 셀러로 기록된다.   


이후 마키하라는 영화 주제곡(‘Firefly~나는 살아가지’)부터 드라마 주제가(‘더는 사랑 따위 하지 않아’, ‘스파이’, ‘몽타주’, ‘네 잎 클로버’), 광고음악(‘겨울이 왔어요’, ‘넘버원’, ‘순수’, ‘스트라이프!’), 캠페인송(‘눈(雪) 속에 소망을/Red Nose Reindeer’), TV 생활방송 테마곡(‘Life Goes On〜Like Nonstop Music〜’),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성화봉송 공식 응원가(‘발소리’), 뮤지컬 테마곡(‘사랑하는 마음들을 위해’)까지 여러 방면에서 맹활약하며 뮤지션으로서 입지를 다져 나갔다.


비교적 빨리 전성기에 접어든 마키하라는 1994년 11월 25일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일본 30개 지역을 휩쓴 대규모 투어 ‘Welcome To My Pharmacy’를 감행, 약 15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투어가 끝나고 성대용종이 발견돼 입원, 이른 전성기 만큼 갑작스러운 장기 요양에 들어갔다.


요양으로 몸을 추스른 마키하라는 1997년 소니뮤직으로 이적했다. 같은 해 5월 10일 베스트 앨범 [Smiling ~ The Best Of Noriyuki Makihara~]를 발매하고 앨범은 190만 장 이상이 팔려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앨범은 그 해 연말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 팝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예술가가 커리어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신은 정말 질투를 하는 것인지, 거칠 게 없어 보였던 마키하라는 1999년 각성제(엑스터시) 소지가 발각돼 현행범으로 체포,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 받는다. 그는 이듬해 말까지 자숙의 시간을 보낸다.


스맙이 해체할 때까지 300만 장 이상이 팔린 메가히트 싱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꽃'. 각성제 소지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던 마키하라는 이 곡 하나로 완전히 부활한다.


죗값을 치르고 이전 몸 담았던 워너뮤직으로 돌아간 마키하라는 열 번째 앨범 [태양]을 2000년 11월에 냈다. 그리고 그가 작곡한 스맙(SMAP)의 싱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꽃’이 크게 히트하며 마키하라의 부활을 도왔으니, 해당 싱글은 발매 당시에만 200만 장 이상이 팔렸고 스맙이 해체한 2016년도엔 무려 300만장을 찍어 천문학적 판매고를 기록했다.


지옥과 천국을 오간 마키하라는 2004년 EMI뮤직으로 소속사를 바꾼다. 이어 8월, 열 한 번째 오리지널 앨범 [Explorer]와 베스트 앨범 [Completely Recorded]를 발매해 각각 50만 장씩을 팔아냈다. 차트에선 [Explorer]가 1위, [Completely Recorded]가 2위에 올랐지만 판매고에선 후자가 좀 더 끈기 있게 팬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같은 해 9월, 앨범 통산 판매량이 1천 만 장을 넘어서며 이노우에 요스이, 나가부치 츠요시에 이어 마키하라는 세 번째 ‘천 만 장 돌파’ 일본 남성 솔로 가수가 된다. 마키하라는 첫 차트 진입 후 13년 2개월 만에 이 대기록을 세워 기간 면에서 두 선배들을 앞질렀다. 물론 앨범 판매고에서도 마키하라는 2년 뒤 내놓은 통산 14집 [Life In Downtown]로 이노우에를 따돌려 결국 일본 남성 솔로 뮤지션 중 해당 분야 역대 1위에 올라섰다.


2006년 10월 다시 한 번 마키하라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가사 표절 시비다. 마키하라가 케미스트리(CHEMISTRY)에게 준 ‘약속의 장소’ 가사 중 일부를 문제 삼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유명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 마츠모토는 1996년부터 연재를 재개한 <은하철도 999> 속 대사를 마키하라가 도용했다며 주간지와 방송 등을 통해 그를 정면 비난했다.


이에 마키하라는 2007년 3월 마츠모토가 도작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적시해달라며 '저작권 침해 부존재 확인' 등 청구를 도쿄 지방재판소에 제출, 나름의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도쿄 지법은 12월 26일 마츠모토의 마키하라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손해 배상 판결을 내렸지만 양쪽 모두 항소하며 사태는 장기화 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마츠모토 측이 한 발 물러서 자신의 문제 제기가 “마키하라 씨의 사회적 평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사과,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 됐다.



마츠모토와 법정 싸움을 벌인 그 해 마키하라는 에이벡스 산하 제이-모어(J-more) 레이블로 이적했다. 이적 후 그는 36번째 싱글 ‘Green Days’를 냈고 내친 김에 연말 제58회 NHK 홍백가합전에도 1991년 42회 방송 이후 16년 만에 출연했다. 그리고 3년 뒤 새해 첫 날 데뷔 2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 두 장을 동시 발매, 같은 해 11월 말엔 자신의 레이블 붑푸(Buppu Label)를 차려 경영자로서도 활약했다.


마키하라는 지난 2월 13일, 또 한 번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됐는데 그나마 약물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와 투약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진 바로는 2년 전 0.083그램 각성제를 소지했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이라고. 그는 이 일로 어쩔 수 없이 정규작 발매를 미뤄야 했다.

마키하라는 각성제단속법, 의약품의료기기법 위반으로 지난달 4일 기소, 이틀 뒤 보석금 500만 엔을 내고 풀려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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