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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04. 2020

프롱의 사운드를 만들어준 광대한 풍경

Prong [Songs From The Black Hole]


생각해보면 뉴욕 헤비메탈 밴드 프롱(Prong)은 참 운이 없는 팀이었다. 자신들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던 [Cleansing](1994)이 발매되던 해 비슷한 성향의 판테라가 빌보드 넘버원 앨범 [Far Beyond Driven]을 내면서 동료 팀을 머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인데 실제 프롱의 리더 토미 빅터(Tommy Victor)가 다임백 대럴에게 느낀 열등감 비슷한 것은 당시 꽤 심각한 수준이었기에 더 그렇다. 인더스트리얼 메탈과 스래쉬/그루브 메탈을 뭉뚱그린 수작 [Rude Awakening](1996)까지 자신의 감각을 유지하던 토미는 그러나 7년 공백 끝에 발매한 다음 앨범 [Scorpio Rising](2003)부터 작곡력 면에서 눈에 띄는 하향세를 보이며 기회를 놓친 자의 회한 같은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었었다. 2014년에 발매한 [Ruining Lives]가 그나마 회생의 기미를 보였음에도 이미 ‘메이저급 언더그라운드 밴드’로서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힌 터여서인지 프롱의 음악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열혈 하드코어 펑크, 헤비메탈 팬이 아니고선 드물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을까. 토미 빅터는 자신의 음악적 과거를 돌아보는 데 10번째 앨범을 할애하기로 한다. 즉, [Force Fed](1988)가 아닌 [Primitive Origins](1987)를 프롱의 진정한 데뷔작이라고 말하는 토미의 평소 언급이 이 앨범 [Songs From The Black Hole](2015)의 발매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드코어 펑크. 바로 이 장르가 이 음반의 주제다.



'Doomsday' by Discharge




도어스(The Doors)가 아닌 미스피츠(The Misfits)를 메뉴로 선택한 앨범은 영국 하드코어 펑크 밴드 디스차지 커버로 그 막을 올린다. 디스차지는 스래쉬/블랙/익스트림 등 각종 헤비메탈 장르와 크러스트 펑크, 그라인드 코어에까지 크게 영향을 주고 급기야 피-펑크(P-Funk)라는 장르 이름을 남긴 팔리아멘트-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 마냥 디-비트(D-Beat)라는 고유명사까지 부여받은 영국 하드코어 펑크 밴드. 이 곡은 그들의 두 번째이자 대표작인 [Hear Nothing See Nothing Say Nothing](1982)에 수록된 곡으로, 원곡의 질주감을 아트 크루즈(드럼)의 블래스트 비트가 더욱 부채질하며 프롱의 그 무지막지한 공격 성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들려준다.



'Vision Thing' by Sisters Of Mercy




허스커 두(Hüsker Dü)의 'Don`t Want To Know If You Are Lonely'와 더불어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일 멜로디와 비트로 무장한 곡. 77년 영국에서 결성된 고딕/하드록 밴드 시스터스 오브 머시의 세 번째 앨범 [Vision Thing](1990)의 타이틀 트랙으로, 쉽고 명쾌한 기타 리프가 프롱의 경쾌한 성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케 한다. 이런 멋진 곡이 있던 앨범에 별 두 개를 던진 올뮤직 리뷰어의 멱살을 잡고 싶도록 만드는 멋진 고전이다.



'Goofy`s Concern' by Butthole Surfers




한 평론가로부터 “펑크와 노이즈, 컨트리와 헤비메탈을 강간하는 음악”이라는 평을 이끌어낸 텍사스 출신 밴드 버트홀 서퍼스. 어쩌면 얼터너티브 록 팬들은 [Locust Abortion Technician](1987)이 커트 코베인에게 끼친 영향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의 셰프는 엄연히 토미 빅터. 상쾌한 펑크 리프로 시작해 더블 베이스 드러밍과 팜 뮤트(Palm Mute) 기타 리프로 일순 살벌해지는 초반부, 그리고 헤드뱅잉을 부르는 중반부 근육질 훅은 바로 토미가 기억하는 버트홀 서퍼스다. 소닉 유스와 다이노소 주니어(Dinosaur Jr.)보다 메이저에 진출한 사실이 더 납득이 가지 않는 철저한 언더그라운드 밴드. 프롱은 음악 뿐 아니라 그 역설적 숙명까지도 이들을 닮아버렸다.



'Kids Of The Black Hole' by Adolescents




오프스프링과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머드하니와 블링크-182 등 90년대 밴드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 하드코어/스케이트 펑크 밴드(1980년 결성) 아돌센츠(Adolescents)의 이 곡은 프롱의 [Prove You Wrong](1991)이 어디에 빚진 앨범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원곡보단 무거워도 놓치지 않고 재연한 템포 체인지, 듣기에 편하지만 않은 코드 진행이 [Beg to Differ](1990)의 그윽한 땀 냄새를 지워내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에 따라선 다른 트랙들에 비해 조금 싱겁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토미는 구성 면에서 이 곡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의 입장은 가끔 이렇게 엇박을 타곤 한다.



'The Bars' by Black Flag




아돌센츠 못지않게 수많은 펑크/메탈 밴드들에게 영감을 준 미국 하드코어 펑크의 전설 블랙 플래그. 불량스런 표정의 한 수녀가 다리털이 수북한 한 남자의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재킷이 인상적이었던 [Slip It In](1984)에 바로 이 곡이 수록돼 있다. 나는 늘 프롱의 초기작들과 토미 빅터에게서 블랙 플래그의 초기작들과 헨리 롤린스의 그늘을 느끼곤 했는데, 이렇게 그 증거물을 접하고 보니 나름 감개무량하다. 메탈리카와 판테라의 합성이니 뭐니 해도 프롱 음악의 뿌리는 어쨌거나 하드코어 펑크였다.



'Seeing Red' by Killing Joke




포스트 펑크에서 고딕/인더스트리얼 록까지를 커버하는 노팅힐 출신 록 밴드 킬링 조크는 그 영향력을 넘어 프롱과 따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팬들은 아마 폴 레이븐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인데, 그는 다름아닌 [Cleansing]과 [Rude Awakening]이라는 두 작품에 이름을 남긴 킬링 조크 출신 베이시스트였던 것이다. 이 곡은 <얼터너티브 프레스>에서 만점을 준 [Killing Joke](2003)의 8번 트랙으로, 본래 비슷했던 자즈 콜맨(Jaz Coleman)의 보컬 색은 물론 연주 면에서도 거의 원곡을 해치지 않고 있다. 그만큼 토미가 좋아하고 아꼈던 팀과 곡이었던 것 같다.



'Don`t Want To Know If You Are Lonely' by Hüsker Dü




8~90년대 (하드코어)펑크,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에게 진한 영향력을 행사한 허스커 두. 이 밴드는 프롱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데 'Don`t Want To Know If You Are Lonely'가 들려주는 거칠고 단순한 펑크 코드와 그 아래를 흐르는 말간 멜로디는 언젠가 그린 데이도 커버했던 것이다. 다른 명반들을 제쳐두고 비교적 범작인 [Candy Apple Grey](1986)에서 추출한 이 곡을 토미는 원곡에는 없던 헤비 그루브를 얹어 잭 와일드도 울고 갈 날카로운 피킹 하모닉스로 포인트를 줘 요리했다.



'Give Me The Cure' by Fugazi




여덟 번째 트랙은 워싱턴이 낳은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 푸가지의 오래된 EP [Fugazi](1988)에서 가져왔다. 물론 토미가 이 곡에서 주목한 곳은 아르페지오 리프의 운치가 아닌 기타의 왜곡(Distortion)과 보컬의 외침으로 반전하는 1분 30초대와 2분 30초대 사이였을 것이다. 토미는 아마 이안 맥케이의 보컬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았던 듯하다. 푸가지는 EP를 내고 2년 뒤 그 유명한 [Repeater](1990)부터 시작해 명반 고공행진을 이어나갔다.



'Banned In DC' by Bad Brains




펑크와 훵크에 레게, 소울까지 얹어 말 그대로 대안(Alternative)의 록을 들려준 배드 브레인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앨범의 주제를 우리가 잊었나 싶었는지, 아니면 프롱의 음악적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자는 뜻에서인지 토미는 이렇게 앨범 꼬리에 'Doomsday'에 맞먹는 순혈 하드코어 펑크 트랙을 한 곡 더 배치했다. 토미의 멜로딕 기타 솔로가 좋은 이 곡은 오프스프링이라는 밴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Cortez the Killer' by Neil Young




캐나다의 밥 딜런이라고는 하지만 닐 영은 '음유 시인' 운운 전에 일단 기타리스트로서 먼저 다뤄져야 하는 인물이다. 그의 명반 [Zuma](1975)에서 가져온 이 곡의 기타 연주를 들어보면 내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토미 빅터도 마찬가지다. 그를 프롱의 리더이자 탁월한 리프 메이커로 아는 사람들은 그가 가진 기타리스트로서 자질을 자주 간과하는 듯 보인다. 마치 [Far Beyond Driven]에서 다임백 대럴이 ‘Planet Caravan’으로 토니 아이오미를 따로 추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 곡은 그래서 기타리스트 토미 빅터의 연주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지점이다. 물론 닐 영의 그 정신과 정서도 프롱의 음악에 알게 모르게 침투해있을 것이라는 건 이 음악이 가진 깊은 마이너 성향에서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겠다. 닐이 자신의 밴드 크레이지 호스와 남긴 이 아름다운 연주는 <기타 월드>가 뽑은 ‘위대한 기타 솔로 100’에서 37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위대한 곡 500’에서 321위에 오르며 그 불멸성을 공인받았다.


토미 빅터는 이 커버 앨범을 가리켜 “프롱의 사운드를 만들어준 광대한 풍경”이라 자평했다. 프롱의 팬이라면 그 말에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록(특히 펑크와 헤비메탈) 음악을 사랑한다면 이 앨범도 사랑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름 모를 록 뮤직 애호가들로부터 그 사랑을 구하기 위해 이 리뷰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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