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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0. 2016

이상민

#12 드러머의 이 한 장 - [Evolution]

드러머 이상민은 농구선수 이상민과 룰라의 이상민보다 덜 대중적이다. 그는 음악팬들 사이에서도 고작해야 이적, 한상원, 정원영과 함께 한 ‘긱스의(젊었던)드러머’로만 인식되기 일쑤다. 이것은 부당하다. 그는 겨우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드러머가 아니며, 그는 드러머이기 전에 뮤지션으로서도 재조명 받아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은 때론 무자비한 망각의 칼날이 되어 이런 인재들을 흐지부지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상민도 혹 그 희생양이 될까두려워 여기 그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드러머,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자존심을 건 솔로 앨범 『Evolution』을 중심으로 그의 드럼 세계를 살펴본다.

프로 드러머 이상민의 시작은 들썩이고 쫄깃한 펑크(Funk)였지만 일렉트로 소울을 지향한 『Evolution』에서 그는 재즈 드러머가 돼 있었다. 가령 싱글 「My Vanished Dream」에서 그는 힘과 기교를 겸비한 토마스 프리젠(Thomas Pridgen)식 즉흥 연주를 선보이는데, 특히 2분대에 착실하게 이뤄지는 필인의 축적은 이상민 드러밍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만월광풍」보단 느리지만「How Could」에서 달래는 하이햇의 질감은 그의 플레이가 얼만큼 섬세한지, 그리고 그의 드러밍은 어디까지나 ‘드러머 이상민’이 아닌 ‘이상민의 음악’을 위한 것임을 들려준다. 드럼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위한 드럼인 셈이다. 수록곡들 중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Evolution Comes In」에서 그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집요함에 맞서는 날씬한 리듬 라인을 선보인다. 마이크 클락(Mike Clark)과 하비 메이슨(Harvey Mason)이 각각 참여한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Thrust』와 『Head Hunters』를 “드러머가 리드한 앨범들 중 최고”라 평한 이상민은 이 곡에서 두 거장을 훌륭하게 답습, 급기야 재창조해낸다. 이 깨끗한 패턴은 칙 코리아(Chick Corea)와 팻 매스니(Pat Metheny)의 정서가 함께 스치는 「I’ll Let You Go」에서 한 번 더 마주하게 된다.

크리스 데이브(Chris Dave)의 섬세함을 닮은「Blue Bird」의 단정한 리듬 역시 이상민이 즐기고 또 잘하는 것 중 하나로, 나설 듯 망설이며 조직해나가는 16비트의 기분 좋은 변덕은 긱스 시절 「랄랄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랄 만큼 성숙된 느낌이다. 퓨전재즈의 전형 「Indifference」에선 하이햇의 여닫이를 통해 댄스 리듬의 절대치를 노리는 이상민을 만날 수 있는데, 패닉과 한충완의 앨범, 이은미, 김현철, 김동률, 바비킴 등의 공연 세션으로 활약한 그답게 어떤 그루브 메이킹에도 자신 있음을 그는 이 한 곡에서 마음껏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펑크(Funk)와 재즈가 신나게 맞부딪는 「Burn It Up」은 이상민 드러밍 내지는 앨범 『Evolution』의 또 다른 정점이다. 여기서 그는 리듬의 축이 되는 스네어 드럼 포인트를 어지럽게 뒤꾸미는 하이햇과 베이스 드럼 사이 빈 공간에 치밀하게 구겨 넣어 참신한 리듬을 일궈낸다. 그것은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니키 클레스피(Nikki Claspie)의 테크닉과 어릴 적 절대 영웅 존 본햄(John Bonham)의 파워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것으로, 소박한 브러슁으로 일관하는 「Nostalgia」로 실질적 매듭을 짓는 앨범의 가장 뜨거운 지점이기도 하다. 

이상민은 긱스 출신 드러머이지만 그는 더 이상 긱스 출신 드러머가 아니다. 멤버 모두가 리더였던 레드 오션 긱스를 벗어나 이제 그는 '작곡하는 드러머'로서 자신만의 블루 오션을 개척해냈다. 그의 난타에는 논리가 있고 스틱킹과 킥킹의 콤비네이션은 고도의 사유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한국에 이런 드러머는 드물거나 없었다.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그것은 당연히 또 한 번의 진화(evolution)를 들려줄 것이다.  


● 참여 앨범 


긱스(Gigs)

긱스 1집 - Gigs (1999, Polimedia)

긱스 2집 - Gigs 02 (2000, Polimedia) 


솔로

Evolution (2010, Mirrorball Music)


컴필레이션

A Tribute To 들국화 (2001, Universa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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