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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3. 2016

리차드 베일리

#13 드러머의 이 한 장 - [Blow by Blow]

리차드 베일리는 훵크를 즐기는 드러머다. 자신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준 제프 벡(Jeff Beck)의 솔로 데뷔작 『Blow By Blow』가 나온 해에 그는 브랙퍼스트 밴드(The Breakfast Band), 배티 맘젤(Batti Mamzelle) 등과 함께 퓨전 재즈 및 훵크 리듬을 탐닉했고 그 스타일은 짐 뮬렌(Jim Mullen), 게리 보일(Gary Boyle) 같은 기타리스트는 물론 15년간 몸담은 인코그니토(Incognito)와 작업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베일리 드러밍의 매력은 넘칠 듯 절제된 라인에 있다. 그의 루디먼트는 현란하지만 귀신 같은 타이밍으로 곡 속에 정확히 녹아 들며, 마이크 맨지니(Mike Mangini)도 반한 기막힌 폴리 리듬은 낯선 논리로서 급기야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가령  「Scatterbrain」에서 들려준 점층적 리듬 운용은 혹자로 하여금 "빌리 콥햄(Billy Cobham)이 친 게 틀림없다"는 오해까지 사며 나름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정도다. 리차드 베일리의 디스코그래피 중 언제나 가장 화려한 시대로 언급되는 『Blow by Blow』에서 맨지니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드럼의 음악성(Musicality)"을 발견했고 이는 여태까지도 그를 비롯한 수 많은 퓨전 드러머들에게 하나의 교과서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이다.

재즈, 훵크 드러밍이 대부분 그렇지만 베일리는 유난히 '감'에 의존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른바 '천재과'라 할 수 있을 만 정확도와 구성을 자랑하는 타이밍, 리듬 계산 능력은 누구나 연습한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Wired』 수록곡 「Head For Backstage Pass」에서 그는 하이햇 스틱킹과 베이스 킥킹의 아슬아슬한 콤비네이션, 엇박과 정박의 불규칙 나열을 통한 맛깔스런 그루브를 맘껏 뽑아낸다. '감'이라는 추상이 그루브로, 그것도 아주 잘 구체화되면 그것이 바로 리차드 베일리의 연주일 것이다.

물론 그가 재즈 퓨전, 훵크 장르만 선호한 건 아니었다. 존 아마트레이딩(Joan Armatrading), 빌리 오션(Billy Ocean)의 신스팝 장르에서 그는 하이햇의 오픈/클로즈를 이용해 댄서블한 리듬을 뽑아냈 샤론 포레스터(Sharon Forrester), 스틸 펄스(Steel Pulse)와 작업에선 레게를 응용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잘했던 건 역시 훵크다. 댄스의 뿌리, 그루브의 결정체랄 만한 그 격한 리듬의 호흡 속에서 리차드 베일리의 드러밍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Blow by Blow』를 들을 때 드럼을 더 유심히 듣는다. 그는 제프 벡과 대등함을 넘어 그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의 나이 18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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