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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5. 2016

크리스 애들러

#14 Lamb of God/Megadeth, Chris Adler

메가데스의 신작 [Dystopia]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90년대 초에 버금가는 데이브 머스테인의 작곡력이 다시 고개를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램 오브 갓의 드러머 크리스 애들러가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가 사무엘슨과 닉 멘자, 지미 드그라소와 비니 콜라유타가 사라진 메가데스의 드럼에 크리스가 앉자 그들 모두가 거짓말처럼 소환되어 온 것이다. 크래쉬와 스플래쉬, 헤비 라이드와 차이나 심벌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또 그것들을 차별없이 적극 활용하는 크리스의 드러밍은 무겁고 날쌔다. 그는 티없이 맑은 콤비네이션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매우 까다로운 리듬 라인을 그 안에 박으며 고등학생 시절 가졌던 악기 편력(크리스는 당시 기타와 베이스는 물론 바이올린과 색소폰, 피아노 레슨까지 받았다)을 조용히 녹여내었다. 때문에 그의 드러밍은 다른 악기들을 모두 챙기느라 다소 산만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엄연한 중심과 질서가 있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최종 그루브는 의외로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이번에는 크리스 애들러, 바로 이 드러머를 조명해보려 하는데 앞 것들관 살짝 다른 형식으로 그의 드럼 세계에 접근해볼 것이다. 이른바 기타 키드이자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스 애들러를 드러머로 만든 앨범 10장’이다.

1. Wrathchild America – [3-D] by Shannon Larkin

쉐논 라킨은 래스차일드 아메리카의 드러머로서보다 갓스맥의 드러머로 록 팬들에겐 더 익숙할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90년대 초반에,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존 돌마얀도 영향 받았을 변태적인 리듬 라인을 이미 선보였고, 이는 다양한 악기들에 시달리고 있던 크리스 애들러에게 드러머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게끔 만들었다. 베이시스트로서 몇몇 밴드에 발을 담갔던 크리스는 발티모어에서 있었던 래스차일드 아메리카의 공연을 본 뒤 가지고 있던 베이스를 모두 팔고 그 돈으로 자신의 첫 드럼킷을 샀다. ‘드러머’ 크리스 애들러의 탄생. 기교와 자신감, 그리고 힘이 넘쳤던 쉐논의 드러밍이 남긴 소리 없는 업적이다.


2. Aerosmith – [Aerosmith] by Joey Kramer

아메리칸 하드록의 상징인 에어로스미스의 데뷔 앨범에서 크리스는 ‘기본’을 배웠다. 사실 당시 조이 크레이머의 드러밍은 그리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의 책 제목처럼 드럼을 하드(hard)하게 치는(hit) 기술을 크리스는 이 앨범으로 닦을 수 있었다 한다. 그리고 드러머가 항상 염두에 두고 절차탁마 해야 할 ‘(손발의)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이는 크리스에게 이 앨범 한 장으로 전수하였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크리스의 현란한 콤비네이션 그루브가 이 앨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3. The Police – [Reggatta de Blanc] by Stewart Copeland

과소평가 된 명 드러머 스튜어트 코프랜드의 기교가 응축된 ‘Message in a bottle’에서 크리스는 속도를 어떻게 내고 줄이는지 즉, 드럼의 완급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다. 심지어 그는 이 곡을, 하프타임 셔플 리듬을 상징하는 제프 포카로(토토)의 ‘Rosanna’보다 더 어려웠다 고백하며 스튜어트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 정도를 에둘러 강조했다. 나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모두가 폴리스의 드러밍에 한 번 더 귀 기울여 봤으면 좋겠다. 스튜어트 코프랜드는 단순히 스팅에게만 최고의 드러머는 아니었다.


4. Strapping Young Lad – [City] by Gene Hoglan

크리스와 똑같이 어린 시절 조이 크레이머와 스튜어트 코프랜드 같은 드러머를 좋아했던 스트래핑 영 래드(스티브 바이 밴드에서 탈퇴한 데빈 타운센드의 프로젝트)의 진 호글란은 크리스 애들러가 헤비메탈 드럼에 관심을 갖도록 한 드러머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영향력은 크리스에겐 절대적이었는데, 호글란의 사지에 염색체처럼 낀 가스펠과 훵크 그루브가 무지막지한 헤비메탈 리듬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준 데서 크리스는 드러머로서 진(gene)의 위대함을 찾는다.  


5. Mahavishnu Orchestra – [Inner Mounting Flame] by Billy Cobham

올해로 71세인 빌리 콥햄은 재즈와 록, 그리고 훵크를 버무린 퓨전 재즈 장르에선 거의 독보적인 드러머다.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단정한 매무새를 잊지 않는 그의 바람 같은 드러밍은 어린 크리스에게 잼(Jam)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고, 그때 빌리에게서 얻은 가르침은 지금도 크리스의 필인(fill-in)들에 묵시록처럼 스며있다. 혹 램 오브 갓이나 근래 메가데스의 드럼 라인에서 재지(jazzy) 느낌이 드는 구석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빌리 콥햄의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


6. Megadeth - [Peace Sells… But Who's Buying] by Gar Samuelson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이유로 크리스는 메가데스 2집을 “헤비메탈의 바이블”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앨범의 드럼을 책임진 가 사무엘슨은 빌리 콥햄과 함께 크리스에게 재지 드러밍의 매력을 알게 해준 또 다른 사람이었다. 데이브 머스테인과 크리스 폴랜드의 기타 만큼 ‘유니크’했던 사무엘슨의 드러밍은 라스 울리히(메탈리카)와 루이 클레멘트(테스타먼트), 심지어 ‘더블 베이스 드럼 킹’ 데이브 롬바르도(슬레이어)보다 더 많은 영감을 크리스에게 주었다.


7. Metallica – [...And Justice For All] by Lars Ulrich

1988년 발매한 메탈리카 4집의 프로듀싱, 구체적으론 그 깡마르고 건조한 드럼 톤을 크리스는 동경했다. 그는 요즘도 이 앨범을 들으며 자극을 받고, 이 앨범 속 라스 울리히 같은 드러머가 되고 싶다 당당히 밝힌다. 불행히도 제이슨 뉴스테드의 베이스 소리는 거세되었지만 대신 기타 두 대에 맞서는 라스의 고밀도 드러밍은 지금도 또렷이 본작을 대표하며, 기어이 본작을 삼키고 있다. 헤비메탈 드러머(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플레이에서 톤까지, 반드시 카피해보아야 할 걸작. 크리스도 물론 그 사실을 알았고 또 실천했다.


8. Slayer – [South Of Heaven] by Dave Lombardo

이 앨범을 두고 “전작들에 비해 믹싱이 더 깔끔하게 되었다”는 이유를 먼저 말하는 크리스는 역시 드럼 ‘톤’에 민감한 사람으로 보인다. 더불어 그는(당연히)데이브 롬바르도의 비현실적 더블 베이스 드러밍 속도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목표 지향적이었던 가 사무엘슨보다 훨씬 “동물적”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그리고 크리스는 그것을 흠모, 존경했다. 크리스 애들러의 더블 베이스 드러밍을 들어보라. 데이브 롬바르도가 들릴 것이다.


9. Motley Crue – [Too Fast For Love] by Tommy Lee

토미 리는 크리스 자신을 비롯, 수 많은 사람들에게 “드럼을 치고 싶도록 만든 사람”이었다고 한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헤어메탈의 섹시한 질주감, 여자(girls)를 탐하며 여성스런 분장을 하면서도 남자(dudes)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토미의 호탕하고 명쾌한 드러밍은 20대 초반 어린 ‘사내’였던 크리스 애들러에겐 어쩔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크리스의 드러밍에서 배어나오는 호쾌한 맛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머틀리 크루의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되겠다.     


10. Pantera - [Far Beyond Driven] by Vinnie Paul

무서울 정도로 저돌적이었던 ‘Strength beyond strength’의 드러밍은 크리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듯 하다. 라이트메탈에서 헤비메탈로 노선을 바꾼 판테라의 지난 앨범 두 장을 디딤돌 삼아 “궁극의 헤비메탈”에 이른 바로 이 세 번째 작품, 그리고 드러머 비니 폴을 크리스 애들러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마지막 아이콘으로 꼽았다. 그루브 메탈을 지향하는 램 오브 갓이 기본적으로 어디(또는 어느 밴드)에 빚을 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 터. 크리스는 어쩌면 지금도 ‘Becoming’ 같은 리듬을 만들어내고 싶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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