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Sep 07. 2020

BTS 현상의 본질을 파헤치다

김영대 [BTS: The Review,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손흥민’ BTS 열풍이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열기는 당장 서점의 문화/예술 코너에만 가봐도 알 수 있다. BTS라는 문화 현상, BTS와 케이팝의 관계, 콘텐츠와 소셜 파워로서 BTS, BTS 마케팅, BTS에게 배우는 경영 전략, 철학으로 읽는 BTS, BTS가 좋아한 심리학자(칼 구스타프 융)와 BTS가 곡의 콘셉트로 삼은 소설(데미안), BTS ‘입덕’을 위한 책, BTS의 역사, 아미(ARMY)들의 시선, 심지어 일러도 너무 일러 보이는 BTS 평전까지. 아무리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다. 많은 건 둘째 치고 그 내용이 너무 작위적이고 얕고 부실하다. 이 세계적인 ‘현상’을 갖고 겨우 저렇게들 밖에 쓰지 못하는가. 독자로서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BTS: The Review’. 부제는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였다. 모두들 BTS를 놓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이 책만은 BTS의 음악 또는 BTS 자체를 다루려 한 것 같았다. 내가 원한 게 바로 이런 거였다. 이런 게 ‘책’이고 책의 역할이라 나는 생각한다. 완독한 결과,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 책은 2013년 KCON(‘Korea Convention’의 약자. 2012년부터 CJ그룹이 매년 열고 있는 세계적인 ‘K-Culture’ 페스티벌-필자주)에서 GD와 래퍼 미시 엘리엇이 ‘늴리리야’를 함께 부른 “한국 힙합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목격한 저자가 이듬해 KCON 현장에서부터 추적해온 BTS의 미국에서 활약상을 바탕으로 쓴 BTS 평론집이다. 그는 이후 2018년까지 매년 KCON을 방문했고 BTS를 주목하며 뱉고 쓴 말과 글을 영상, 텍스트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바로 그 2018~2019년에 걸쳐 저자가 개인 유튜브 방송에서 언급한 BTS에 관한 내용 및 신문,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정리해 내놓은 것이다.


책 구성은 심플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풀어놓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비롯해 KCON 등 미국 현지에서 밀착 취재에 바탕한 저자만의 ‘BTS론’을 엿볼 수 있는 칼럼 아홉 편, 그리고 힙합 저널리스트와 BTS 음악에 관여한 작곡가, BTS 콘텐츠 번역계정 운영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 문학평론가, 빌보드 저널리스트, 그래미 선정위원이기도 한 팝페라 테너 임형주까지 전문가 7명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심플하지만 타이트한 이 내용으로 저자는 “BTS 현상의 비밀을 파헤치려” 노력했다고 한다.


저자 김영대는 21세기를 맞은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두 변곡점을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BTS 현상’이라 정의내렸다. 물론 한국에서 발화된 싸이의 그것과 달리 BTS의 인기는 팝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은 뒤 아시아와 남미 쪽으로 역유입 된, 그야말로 글로벌 케이팝 역사에서 처음 벌어진 “양방향과 역수입 현상”이라는 점에서 싸이의 성취와 다르다. 저자는 바로 그 두 변곡점 중 하나인 BTS 현상의 본질을 짚어내기 위해 이 책을 구상 했고, 성공이라는 ‘결과’보다 그들의 음악과 메시지, 그들이 걸어온 ‘과정’을 논해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집필했다. 보이밴드라는 오랜 전통에 힙합이라는 낯선 장르를 접목한, 그러니까 “한국 힙합의 맥락과 한국 아이돌 음악의 맥락을 모두 계승 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킨 팀”으로 BTS를 평가한 김영대는 “BTS가 왜 시대정신으로 불리는 위치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책 쓰기를 결심한 것이다.



결과보단 과정을 중시하고, 현상보단 본질을 파헤치려는 저 의도도 물론 좋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역시 BTS의 정규작과 멤버들의 솔로작을 망라한 16장 앨범 리뷰다. 책 제목 그대로 ‘BTS를 리뷰’ 한 셈인데 더 흥미로운 건 그 리뷰가 앨범 단위를 넘어 곡 단위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는 BTS의 ‘학교 3부작’을 그냥 겉핧지 않고 ’등골브레이커’가 워런 지, 닥터 드레 같은 90년대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를 레퍼런스로 삼았다는 사실과 뷔의 보컬이 네이트 독 같은 지 펑크 스타일을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을 충실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또 ‘Lost’ 리뷰에선 “당김음이 많은 까다로운 패시지(passage)를 유연하게 타고 넘는 보컬 라인의 기량"을 논했으며, ‘Am I Wrong’에선 미국 블루스 뮤지션 켑 모(Keb’ Mo’)의 ‘Am I Wrong’을 인용한 부분을 짚어낸다.


결국 BTS의 인기 비결은 화려한 퍼포먼스, 진중한 태도와 진정성에도 있겠지만 핵심은 음악의 독창성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멤버들 간 유기적인 창작 방식에 기반한, 기존 아이돌 음악에선 보기 힘들었던 한과 슬픔의 정서, 청춘 담론, 세태 비판, ‘2학년’ 같은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가감없는 자기고백 즉, 그 세대 젊은이들에게 직접 발언하고 위로를 전하는 가사가 지금의 BTS를 만든 것이다. 이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끝내 “동시대 청년들의 보편적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 BTS와 아미가 함께 만들어낸 이 사납고 신기한 ‘글로벌 현상’까지 이어졌다.


얼마전 BTS가 영어 싱글 ‘Dynamite’로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 1위에 이은 또 한 번의 쾌거다. 케이팝의 승리일까? 나는 그 판단을 조금 미루고 싶다. 저자도 책에서 지적했듯 BTS는 이미 케이팝에서 “개별화”와 “탈-한국 양상”을 보이고 있을뿐더러 “인종적인 한계는 물론 아이돌 보이밴드의 한계마저 뛰어넘은 새로운 팝 그룹”이다. 이 책에서 인터뷰이로 나온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의 말처럼 BTS는 또한 “케이팝 산업이 어떻게 새롭게 작동하기 시작하는지를 알려준 그룹”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BTS는 더이상 ‘케이팝 보이밴드’라는 좁은 범주에 가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언론과 여론은 그들의 음악과 메시지가 아닌 성과와 가치에만 집착하는 ‘민족주의적 관심’을 꾸준히 드러낸다. 이젠 정말 순위와 노미네이트와 수상에서 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BTS는 ‘한국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이제 ‘세계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모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