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평가 된 '뮤지션' 신해철의 출사표
신해철.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느덧 8개월이 다 되어 간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그의 죽음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의 음악들 사이에서 당혹감은 익숙함으로, 슬픔은 그저 지난 아픔으로만 남은 느낌이다. 하지만 떠난 자를 향한 미련이 소리 없이 고개 들 때 그 아픔의 기억은 바로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 다시 우리를 찾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90년대를 대표한 뮤지션의 앨범 한 장이 이 밤,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와 ‘재즈 카페’로 슈퍼스타가 된 신해철이 “솔로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접고 “엔터테이닝과 내용성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결성한 밴드가 바로 넥스트(N.EX.T)이다. 펑크(Funk)와 로큰롤을 접목한 이른바 ‘펑큰롤’을 들려주기 위해 신해철은 최첨단 신시사이저를 맡았고, 솔로 2집인 [My Self](1991) 투어 당시 신해철을 도운 정기송(기타)과 이동규(드럼)가 계속 남아 디스코와 록의 미팅을 주선했다.
‘새로운 실험을 하는 팀(New Experiment Team)’이라는 밴드 이름에 걸맞게 넥스트 음악에는 신해철이 잘하고 또 좋아하는 아레나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그리고 전자 음악의 늘씬한 교류가 있다. 그것은 영화감독 유하의 말처럼 “근대적 기획(Modern Project)”을 통한 “뽕짝과의 싸움”이었고 “한국 대중가요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였다. 고인이 밴드의 최고작으로 꼽았던 [Lazenca: A Space Rock Opera](1997)에 도달하기까지, 그 기획과 싸움은 바로 이 앨범 [Home](1992)에서 시작되었다.
동요집 같은 앨범 재킷을 젖히면 피터 잭슨의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마왕의 목소리와 무리의 함성, 그리고 아시아(Asia)식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서로를 탐한다. 바로 ‘인형의 기사 Part I’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Part II’에서 분위기는 반전 되고, 우리는 이 앨범에서 가장 성공한 신해철의 동화 같은 감성을 솔로 시절 이후 다시 마주하게 된다. 힘찬 드러밍과 예쁜 기타 솔로가 신해철의 목소리와 이루는 슬픈 화음은 그가 없어 더욱 뭉클한 감동으로 와 닿는다.
하지만 넥스트의 음악에 철학적 사회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솔로 신해철’의 연장일 뿐이다. 내리찍듯 공격적인 신시사이저와 길고 날카로운 기타 솔로를 앞세운 ‘도시인’은 그런 넥스트의 정체성을 가장 극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심었다. 펑키한 ‘Turn off the T.V.’역시 “정권의 시녀”로서 얻은 무소불위 권력을 “방향성 없이 휘두른 무식한” 방송국들에 보내는 일침이었다. “다 함께 있지만 외로운” 도시인들의 삶, 여전히 꺼지지(Turn Off) 않은 방송국의 “권력”. 23년 전 발매된 넥스트의 데뷔작을 지금 들어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외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연인에서 타인이 되기 위해”라는 대구법으로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쓴 신해철의 문장력을 다시 확인시켜준 ‘외로움의 거리’, 엔니오 모리꼬네를 참조한 내레이션 트랙 ‘아버지와 나 Part I’, 핑크 플로이드 같은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정기송이 쓴 어쿠스틱 넘버 ‘집으로 가는 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영원히’까지. 돈과 명예를 거머쥔 잡식성 리스너 신해철이 그 돈과 명예로 음악적 꿈을 이룬 모습은 그 자체 아름답고 값졌다.
나는 언젠가 그와 인터뷰에서 [Home]의 리마스터링 계획을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마스터 테이프가 없어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그의 대답을 들었다. 알고 보니 그 마스터 테이프는 당시 레이블 메이트였던 윤종신의 데뷔 앨범을 만드는 데 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