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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Dec 14. 2020

뮤지션 가이드북의 끝판

<더 컴플리트 데이비드 보위> 니콜라스 페그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니체라는 사람을 안다고 하자. 그것은 단순히 ‘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를 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사람이 알고 있는 니체를 뜻할 수도 있다. 아니면 관련 전집을 독파한 사람에게 니체라는 사람은 앞선 두 부류에 비해 훨씬 깊고 거대한 존재일 게다.


그러니까 ‘안다’는 건 그냥 이름만 아는 것, 이름도 알면서 그 사람의 작품 하나 정도는 감상했다는 것, 나아가 오랜 시간 그 사람의 작품 세계 또는 사상에 관심을 두면서 그 사람에 정통했다는 것까지 아우른다는 얘기다.     


책 ‘더 컴플리트 데이비드 보위’는 저 중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쓴 말 그대로 ‘완전한’ 데이비드 보위 안내서 또는 데이비드 보위 가이드북의 ‘완성(끝판)’이다.     


영국 영문학 석사이자 작가, 배우, 감독인 저자 니콜라스 페그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방대한 자료와 해석으로 ‘마니아’라는 단어가 가진 뜻이 무엇인지 무겁게 환기시키며 데이비드 보위가 작가 자신과 팬들, 이 세상에 어떤 존재였는지를 시시콜콜 따져 나간다. 행여 깨알만한 족적 하나도 놓칠세라 치밀하게 보위의 흔적을 되짚는 니콜라스의 집념은 언젠가 보위가 존 레넌을 표현한 방식 “지식인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 진짜 지식인”의 모습 그 자체다.


갑옷 같은 양장본에 두께만으로도 독자를 긴장시키는 948페이지 책 속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모든 정규앨범과 노래, 그가 참여한 다른 앨범들(예컨대 루 리드와 이기 팝의 작품들), 공연(투어)과 영상, 극과 영화, 미술/전시/집필, BBC 라디오 세션, 외전과 연대표까지, 데이비드 보위라는 아티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료들이 거의 모두 포함됐다.  


특히 1964년을 기준으로 대상을 제한한 앨범 파트에선 보위가 공연자, 프로듀서로 참여한 공식 스튜디오 앨범 및 라이브 앨범들 외 보위의 역사를 한 자리에 모은 컴필레이션과 사운드트랙 앨범, 다른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따로 분류했다. 또 곡들 경우엔 보위가 직접 썼거나 녹음, 커버, 프로듀스 한 것들을 비롯해 자신의 이름 또는 다른 아티스트들을 위해 공연했던 것들까지 조목조목 다루며 그의 크리에이터로서 면모를 서서히 하지만 뚜렷이 부각시킨다.


이처럼 방대한 내용을 압축해 소개하자니 자칫 내용 자체가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데, 절대 아니다. 이 책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이렇다 저렇다 소문에만 기댈 게 아니라 반드시 책을 손에 넣어 겉싸개를 뜯고 직접 책장들을 넘겨봐야 한다. 그리고 읽어봐야 안다. 니콜라스 페그의 글에는 보위에 관한 단순 정보만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글은 보위 작품들의 판매고와 순위 등 소소한 팩트들은 물론 저자 스스로와 각종 매체들의 보위 비평, 보위 본인과 보위 주위 언급들의 인용에 기반해 때론 구체적으로 때론 추상적으로 기록되고 또 논의된다. 이 저작이 전기(傳記)가 아니면서 한편으론 전기처럼 읽히는 것도 그런 저자의 전방위적 접근에 얽힌 사유와 집필 덕에 가능했을 일이다.     


그런 이 책의 백미라면 역시 보위의 전 앨범과 곡들을 설명한 부분(리뷰)이다. 곡 ‘All The Young Dudes’에서 “오아시스가 뻔뻔하게 1997년 히트곡 ‘Stand By Me’에 이 곡의 당김음 코러스를 도용했다”는 걸 지적하거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가 “‘Hunky Dory’의 세련된 어쿠스틱 발라드와 ‘Aladdin Sane’에서 전면 공격에 나선 글램 스타일의 중간에 위치한 앨범”이라고 평한 리뷰 카테고리에선 작품의 위상에 따라 글에서 분량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앨범 ‘Heroes’의 보너스트랙 ‘Abdulmajid’처럼 예닐곱 줄로 처리한 곡 비평이 있는가 하면, ‘All The Young Dudes’나 ‘Starman’, ‘Under Pressure’나 ‘Blackstar’ 같은 곡들은 3~4페이지에 걸쳐 설명되고 있는 식이다. 또 앨범 ‘The Next Day’에선 저자가 11페이지까지 할애해 작품의 영혼까지 쓸어 담을 기세로 이 음반에 관한 유일무이한 글을 써내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페이지의 단위인데, 이 책에서 한 페이지란 일반 책에서 두 페이지(글자 크기가 비교적 큰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라면 4페이지까지에도 견줄 만한)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곡들 리뷰는 사실상 6~8페이지를, 앨범 리뷰는 무려 22페이지를 들여 쓴 것이다. 한 아티스트의 전작을 비평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전작에(양에서든 질에서든) 똑같은 정성을 들였다는 건 절대 허투루 넘길 수 없을 일이다.


비이성적 열정으로 이성적 정리를 해내야 했을(번역자들도 저자만큼이나 고생했을) 이 숨막히는 작업을 마주하며 다시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국 안다는 건 대충 아는 것, 조금 아는 것, 깊이 아는 것 중 하나다. 대충 아는 건 다른 데서 들어 알았을 확률이 높고, 조금 아는 건 그나마 본인이 찾아보았다는 흔적이다. 하지만 깊이 아는 건 웬만한 노력과 관심, 열정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경지다. '앎'에도 계급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보며 알았다.


그런 면에서 '더 컴플리트 데이비드 보위'는 그동안 ‘데이비드 보위를 잘 안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이 얼마나 보위를 대충 알았고 조금 밖에 몰랐는지를 깨닫게 할 신랄한 거울이다. 또한 어떤 분야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이어야 하는지도 이 책은 뼈아프게 상기 시킨다. 생각해보라. 한 인물의 예술 세계를 이야기하는데도 이 만큼의 고민과 정성, 지면이 필요한데 하물며 장르 하나 아니,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섭렵했다는 식의 장담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 책은 그런, 아직 덜 여문 지식과 생각으로 말과 글을 쉬 배설하는 몇몇 음악평론가들, 오만의 틀에 갇혀 본인이 쓴 것이 고매한 기준인 줄 아는 일부 전문가들에게 진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반성케 할 통렬한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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