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rpenters
카렌 카펜터라는 사람이 있다. 친오빠인 리차드 카펜터와 카펜터스라는 팝 보컬 듀오로 활동해 전설이 된 인물이다. 카펜터스는 ‘Yesterday Once More’ ‘Top Of The World’ ‘The End Of The World’ 같은 곡으로 한국인들에게도 꽤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3옥타브에 육박하는 카렌의 노래 실력이나 리차드 카펜터의 작곡 솜씨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이것은 ‘드러머’ 카렌 카펜터를 조명하기 위한 글이다. 사실 버디 리치와 조 모렐로(데이브 브루벡 쿼텟), 링고 스타를 좋아했던 카렌은 3만5천 여 세션을 소화한 명 드러머 할 블레인도 인정한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카펜터스 멤버로서 카렌은 잘 알지만 ‘드러머 카렌 카펜터’에 관해선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이건 부당한 일이다. 트래디셔널과 오버핸드 그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노래만큼이나 환상적인 리듬을 디자인할 줄 알았던 그는 드럼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카렌이 드럼을 쳤다고 하니 혹시 ’Close To You’ 정도에서 노래와 병행한 간단한 퍼포먼스(슬로우록 리듬으로 하이햇과 탐 정도만 훑어내는)만 떠올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카렌은 그리 단순한 드러머가 아니다. 그의 진짜 드럼 실력은 그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 고개 든다. 가령 1976년 카펜터스의 영국 투어에서 카렌이 보여준 연주는 그 좋은 예다.
여기서 스네어 드럼(작은북)과 베이스 드럼(큰북)만 앞에 두고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40초 가량 펼친 마칭 드러밍은 카렌의 드럼 기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대번에 알게 해준다. 그것은 비틀즈의 ‘Ticket To Ride’나 ‘Help!’를 부르며 연주하던 ‘정박’ 리듬 패턴과는 차원이 다른, 3/4박과 7/4박 또는 5/4박이나 9/8박에 특화된 완전한 재즈 필인(Fill-In)이다.
카렌은 이후 3분 여 동안 옹색한 드럼 킷과 너른 타악기 세트를 오가며 자신이 팝 보컬리스트 이전에 드러머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각인시킨다. 뒤에 앉은 또 한 명의 드러머를 그저 배경으로만 머물게 한 그의 범상치 않은 연주는 “긴장을 푼 자연스러운 몸 동작”을 자신의 드럼 테크닉 비결이라고 말한 조 모렐로의 훌륭한 유산이었고, 영화 ‘위플래쉬’에서 서사의 구심점이 됐던 버디 리치의 묵직한 반영이었다.
다시 강조컨대 카렌 카펜터는 재능있는 보컬리스트이면서 위대한 드러머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렌은 여전히 ‘카펜터스의 따뜻한 목소리’로만 많은 대중에게 기억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는 아직 덜 평가됐다. 카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카렌의 드럼 세계부터 열어야 한다. 노래는 이후에 들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