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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1. 2021

위저, 오케스트라를 만나다

Weezer [OK Human]


때는 2017년으로 거슬러 간다. 프로듀서 제이크 싱클레어는 위저의 리더 리버스 쿼모에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음반 하나 만들어보는 거 어때? 너와 피아노, 그리고 오케스트라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제이크는 위저의 2009년작 ‘Raditude’의 싱글 ‘(If You're Wondering If I Want You To) I Want You To’에 참여하며 리버스와 처음 만난 인물. 해당 곡에선 녹음만 담당했던 그는 2016년작 ‘Weezer (White Album)’에선 앨범 전체를 주물렀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리버스에게 제이크는 오래된 앨범 한 장을 건네며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가리켰다. 그 앨범은 바로 배드핑거의 ‘Without You’를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대중에게 이끌어준 해리 닐슨의 1970년작 ‘Nilsson Sings Newman’이었다. 이 작품은 해리가 자신의 69년작 ‘Harry’에서 랜디 뉴먼의 ‘Simon Smith and the Amazing Dancing Bear’를 커버 하며 마주한 감탄을 앨범 단위로 이어간 작품으로, 당연히 작품 전체가 랜디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제이크는 바로 이 작품의 느낌, 예컨대 ‘Love Story (You And Me)’나 ‘So Long Dad’의 분위기를 리버스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석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리버스는 고민했을 것이고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았고, 바흐와 베토벤을 떠올리며 38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로크 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첫 곡 'All My Favorite Songs'가 암시하듯 이 음반은 결국 ‘Pinkerton’ 이후 싱어송라이터 리버스의 가장 어둡고 사적인 앨범이 될 터였다.


그런데 잠깐. 미국을 대표하는 파워팝/펑크 밴드 위저 음악에서 일렉트릭 기타가 사라진다고? 거기다 38인조 오케스트라라니. 위저 역사에서 오케스트라 비슷한 것이라면 'The Damage in Your Heart'에 바이올린을 심거나 ‘The Prince Who Wanted Everything’을 혼(Horns)에 적신 것 정도가 전부였지 않은가. 그나마 본격 오케스트레이션이 삽입된 ‘Trainwrecks’에서도 그것은 그저 장식용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리버스에게 이 숙제는 오케스트라를 주변이 아닌 근본으로 이해해야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록’ 앨범이 아닌 엄연한 ‘팝’ 앨범이고, 먼 옛날 브라이언 윌슨이 ‘Pet Sounds’를 지휘하며 입증한 음악적 천재성을 리버스 쿼모가 똑같이 재현해야 하는 일이다.



앨범 제목은 ‘OK Human’. 어디서 많이 들어본 라임이다. 맞다. 이젠 지구를 넘어 우주 밴드가 된 라디오헤드가 24년 전 남긴 불멸의 명반 타이틀(‘OK Computer’)을 비튼 것이다. 리버스는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기술, 유전체 편집, 생명 공학 등 너무 빠르고 무분별한 작금의 기술 발전에 대한 우려를 이번 앨범의 태도로 삼았다. 위저와 비슷한 토양에서 태어난 라디오헤드가 테크놀로지 시대의 도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음악 미래를 포착해 루프와 각종 효과들로 밴드 최고작을 설치해 나간 모습이 리버스에겐 금속 현을 뜯고 북피(Drums)를 때리는 ‘아날로그’ 연주자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눈만 뜨면 모바일을 켜고 밤에는 모바일과 함께 잠드는 지금이야말로 ‘컴퓨터’ 대신 ‘사람’을 바라볼 때다. 리버스의 성찰은 물질의 풍요와 인정의 상실에 직면한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진지한 화두였다.  



물론 위저가 오케스트라와 작업했다고 해서 메탈리카의 ’S&M’ 같은 걸 떠올리면 곤란하다. 리버스는 기존 히트곡들에 오케스트라를 입히는 선배들의 안이한(?) 시도를 경계했다. 그는 처음부터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뒀고 밴드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새로운 곡을 썼다. 때문에 여기에 담긴 리프, 가사, 편곡, 정서는 오롯이 오케스트라라는 조건에 일관되게 조응한다. 특히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는 곡들의 멜로디는 이들의 전성기 ‘색깔 앨범’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훈훈한데 과연 록 이전에 팝이, 주다스 프리스트 이전에 조지 거슈인이 위저와 리버스 쿼모 안에 있었다는 걸 환기시켜 주는 대목이다. 표면적으론 방대했지만 질적으론 무언가 아쉬웠던 2010년대의 부진을 미련없이 떨쳐내는 자신감이 이번 작품에선 느껴진다. 마치 클래식 팝으로 팝 클래식이 될 운명을 부여받은 듯, 위저는 그렇게 자신들만의 ‘OK Computer’를 조용히 그리고 멋스럽게 빚어냈다.


사실 ‘OK Human’은 그린 데이, 폴 아웃 보이와 예정 됐던 위저의 아레나 투어(The Hella Mega Tour)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산되면서 발매가 연기된 앨범 대신 나온 작품이다. 해당 앨범 제목은 팬들이 이미 싱글 ‘Hero’로 간을 본 ‘Van Weezer’다. 키스와 블랙 사바스, 메탈리카와 밴 헤일런을 메뉴 삼아 펼칠 이 자체 헤비메탈 파티는 위저 멤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에디 밴 헤일런을 추모하는 작품이 될 것이었다. ‘Van Weezer’는 오는 5월에 나온다.


이로써 위저는 2021년 상반기에만 정규작 두 장을 내게 됐다. 1년마다 작품을 낸 일은 수 차례 있었지만 한해에 앨범 두 장은 2019년 이후 두 번째다. 그나마도 2년 전에 나온 두 장 중 한 장은 커버 앨범이었던 만큼 위저의 올해 ‘열일’은 이들 역사에서 전무한 기록이다. 더 놀라운 건 위저의 다음 콘셉트가 ‘춘하추동’이라는 것. 무슨 말이냐면 봄여름가을겨울 각 절기마다 그 계절에 맞는 음악적, 시적 테마를 녹여 앨범을 발매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1년 동안 앨범 4장을 내놓겠다는 건데, 가령 봄의 음악엔 낙천적이고 달달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바르고 가을엔 댄스록으로 작품을 채우겠다는 심산이다. 이미 관련 아이디어가 폴더별로 리버스의 PC에 쌓이고 있다 하니 기대해도 좋겠다. 근래 보여준 팀 추진력과 ’OK Human’의 완성도를 봤을 때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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