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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18. 2017

OK Computer

록의 문법을 바꾼 세기말 블록버스터


“세기말의 대표작”

“록의 구세주”

 

과찬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OK Computer]는 단순히 라디오헤드라는 밴드의 마스터피스를 넘어 록의 문법을 바꾼 작품이다. ‘음악’으로 밴드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일렉트릭 피아노와 멜로트론 등 다양한 악기를 배치, 활용하였고 톰 요크는 스스로를 고백하는 것에 머물렀던 전작의 성향에서 벗어나 한 때 자신이 좋아했던 엘비스 코스텔로에게 배운 방식 즉, 감정을 부여잡고 뱉어내는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추상과 피해망상의 교차, 그리고 한 때 미셸 푸코가 전념했던 ‘감시’라는 주제를 슬그머니 얹은 모양새가 바로 이 앨범의 모양새이다. CCTV라는 비인간적 테크놀로지가 공공연하게 사회를 불안과 불편으로 몰고 가기 시작하는 90년대 중반 “문명의 그림자”를 이 앨범은 일단 자신의 얼굴로 삼았다. 감시 카메라 앵글을 표현했다는 재킷에서 어떤 우울한 정서가 감지되었던 건 바로 그래서였다.


작업은 곡 단위로 이루어졌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서두르지 않는 여유의 미덕을 되찾은 탓에 멤버들의 창작력엔 불이 붙었다. 피제이 하비에서 비틀즈, 다시 비치 보이스에서 마일즈 데이비스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런스는 이 앨범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널찍할지를 가늠케 해준다. 혹자는 이 작품을 “기타가 곁들여진 DIY 일렉트로니카 앨범”이라고 평했는데 실제로 70년대 덥(Dub)이 침투한 첫 곡 ‘Airbag’은 그 평가에 딱 맞는 음악을 들려준다. 디제이 쉐도우를 차용한 이 트랙은 당시만 해도 고가 장비였을 매킨토시로 편집한 디지털 샘플러를 활용, 드러머 필 셀웨이의 스틱킹에 예리한 쇠 비린내를 입혀내며 라디오헤드라는 밴드가 단순한 록 밴드가 아니라는 걸 [The Bends]보다 더 강렬하게 증명해냈다.



증명은 이 앨범의 두 번째 곡이자 첫 번째 싱글인 ‘Paranoid Android’에서 더 극적으로 전개된다. 영국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의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캐릭터 마빈 더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Marvin the Paranoid Android)에서 제목을 가져온 이 곡은 톰 요크의 말처럼 전혀 다른 세 곡을 합한 느낌의 곡으로 비틀즈의 ‘Happiness Is A Warm Gun’과 퀸의 ‘Bohemian Rhapsody’, 그리고 픽시즈의 성향을 창의적으로 덧대어 꿰맨 것이다. '버스-코러스-버스'라는 팝록의 정통 형식을 거부하고 변박과 폴리리듬을 주로 쓰며 뽑아낸 톰 요크(그리고 멤버들)의 아름다운 히스테릭은 롤링스톤이 뽑은 베스트 500’ 리스트에까지 박제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밥 딜런의 ‘Subterranean Homesick Blues’에서 제목을 따온 ‘Subterranean Homesick Alien’은 “마음을 닫은 채 비밀을 지키려 드릴로 자신에게 구멍을 뚫고 어찌할 바 모르는 인간들”을 주제 삼은 곡으로, 꿈결 같은 딜레이 기타와 안개 같은 일렉트릭 키보드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를 따라잡기 위한 시도였다고 한다. 톰 요크는 이 곡과 관련해 “자신이 다른 혹성에서 온 에일리언이라 가정하고 지구를 바라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라는 학창 시절 작문 숙제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실은 톰이 한 시골에서 운전을 하다 새를 치었던 순간 “지금 내 앞에 에일리언이 나타난다면?”이라는 동심 어린 발상에서 이 곡은 출발했다는 게 정설이다.



배즈 루어먼 감독의 96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엔딩 장면, 그러니까 줄리엣(클레어 데인스)이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지은 표정 하나에 톰 요크가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 바로 ‘Exit Music (For a Film)’이다. 어린 시절 프랑코 제피렐리의 68년 작품에서 이미 폭탄을 삼킨 듯한 충격을 받은 탓에 톰 요크는 조니 캐쉬의 [At Folsom Prison] 풍으로 이 곡을 멋있게(또 맛있게)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톰은 실제로 당시까지 라디오헤드 곡들 중 이 곡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영화 사운드트랙이 아닌 자신들의 정규 앨범에 이 곡을 넣은 것이다. 한편, 곡이 고조되는 곳에서 쳐들어오는 드럼과 퍼즈로 일그러뜨린 베이스는 트립합 밴드 포티스헤드를 응용한 것인데 콜린 그린우드(베이스)는 자신의 연주를 과장되고 둔하고 기계적인소리라고 자평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탓에 자신의 감정을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인간또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자신과 멈추어 선 사람들을 비교했을 때 느끼는 갑갑함이 주제인 ‘Let Down’은 필 스펙터의 획기적인 레코딩 기술인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에 영향 받아 만든 곡이라고 밴드의 기타리스트 에드 오 브라이언은 밝혔다.사운드 곳곳에서 비틀즈 냄새가 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톰 요크는 차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이 곡에 이동은 명상의 한 수단이라는 전제를 붙였다.


라디오헤드는 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스케치해 곡으로 만들어내는 작법을 선호했는데 앨범의 대표곡 ‘Karma Police’ 역시 카르마 경찰,그 남자를 체포해!”라는 문장이 톰 요크의 뇌리에서 맴돈 끝에 나온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와 피아노 반주가 나란히 걷는 인트로는 비틀즈의 ‘Sexy Sadie’에 빚진 것이며, 엔딩에서 신경질을 부리는 기타 소리는 에드가 딜레이 페달로 만들어낸 피드백 사운드이다.



소품 같은 ‘Fitter Happier’‘OK Computer’라는 앨범 타이틀에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트랙으로 밴드는 건조한 컴퓨터 음성을 연출하기 위해 신디사이저 보이스를 활용, 중성적인 톰 요크의 가사에 입혔다.이는 우스꽝스러운 발음이라는 이 트랙의 포인트를 위한 장치였다고 한다.


찡그린 기타 톤과 통통 튀는 카우벨 소리. 누구는 ‘Electioneering’을 데뷔 앨범 [Pablo Honey]에 비교했지만 나는 2집에 수록된 ‘My Iron Lung’의 반전에 이 곡이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톰 요크는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되도록 불쾌하게 느끼게끔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곡의 전체 느낌은 펑크 거장 이기 팝에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이 펄떡이는 록 트랙이 갖는 의미는 앞으로 이런 곡을 자제하겠다는 라디오헤드의 의지와 같았다. 그것은 톰이 인용한 피터 벅(알이엠)의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새로 만든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이 곡은 알이엠 스타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곡은 앨범 수록곡 리스트에서 제외 된다.” - 피터 벅


즉, 라디오헤드는 더 이상 록 밴드라는 우리에 갇혀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귀신같은 톰 요크의 보컬이 듣는 이를 소름 돋게 하는 ‘Climbing Up the Walls’는 폴란드의 고전음악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곡으로, 으스스한 트랙 분위기에 맡게 편집광 살인마를 화자로 삼았다. “기념비적 혼돈이라는 평가를 수긍케 하는 곡 구성과 별개로 떠도는 엠비언스 느낌은 핑크 플로이드를 연상시키는 ‘Lucky’와 견줄만 한 것이다.


톰 요크는 ‘Exit Music’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지만 나는 이 앨범에서 ‘No Surprises’를 최고의 팝송으로 꼽는다. 우에노 주리가 주연한 영화 <양지의 그녀>에서 인상적으로 삽입된 비치 보이스의 명곡 ‘Wouldn't It Be Nice’에 영향 받은 기타 어레인지, 루이 암스트롱과 마빈 게이의 느낌을 바라고 만든 그 섬세한 멜로디는 모두와 무언가를 함께 지켜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한 사람의 모습을 정말 그럴 듯하게(또 예쁘게) 표현해내었다.



1997년. 대학교 신입생 때 이 앨범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The Bends]같은 음악을 기대했었고 오버 더빙을 거치지 않은 순수 라이브 합주로 녹음된 내용물은 얼추 반이 거기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반은 아마도 [Kid A]부터 시작될 그 하염없는 실험 여행을 위한 멍석이었을 것이다.('The Tourist'가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어떤 이의 말처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록 사운드였다.들을 수록, 아니 들을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찾아낼 수 있는 앨범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앨범을 우리는 좋은 앨범 내지는 명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OK Computer]는 그래서 내 리스너 인생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고 여전히 즐겨 듣는 좋은 음반,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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