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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19. 2021

'밴드'가 된 페퍼톤스

페퍼톤스 [Beginner's Luck]


배경은 페퍼톤스 음악을 분만해온 제주도 푸른 바다다. 무언가를 갈구하듯(또는 맹세하듯) 차렷 자세로 선 신재평과 이장원 둘은 증명사진 찍듯 네 번째 앨범의 재킷을 장식했다. 이 조금은 딱딱하고 어색한 느낌의 이미지는 이 앨범의 진보 내지는 변화를 드러낸다. 그들은 갈구해온 5인조 밴드를 결성했고 철저한 밴드 음악을 하기로 맹세한 것이다. 세련되고 희망적인 국적 불명, 장르 불명의 음악을 해온 제주 소년들이 디지털보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며 돌아왔다. 밴드를 결성한 이래 처음으로 합주 녹음한 앨범. 이것이 그들 4집의 명제다.


사실 'For All Dancers' 페퍼톤스식 펑크(Funk) 트랙인 '러브앤피스' 'Bikini' 같은 곡을 제하면  앨범은 마치 델리 스파이스 같다. 애시드한 '검은 ' 빼고  곡을 2~3일씩 녹음해가며 기어코 담아낸 자신들의 목소리는 그런 록밴드가 되기 위한 작지만 절박한 행위였을 것이다.(어쩌면 초기 델리 팬들과 페퍼톤스 팬들은(2011~2 무렵) 서로의 신보를 바꿔치기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단정하고 살가운 'Robot' '바이킹' 그렇고 가열차고 오밀조밀한 '21세기의 어떤날' 'Wish-list' 그렇다. 그리고 페퍼톤스는 진짜 록밴드가 됐다.



하지만 이 앨범의 혁명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아시안게임'. 이 뜬금없는 제목의 곡은 21세기 현재라는 시간을 정확히 40년 전으로 돌려놓으며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운드를 내뿜는다.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정도가 소환했던 정통 개러지 록 사운드를 표방한 만큼 가사도 저항과 냉소의 편에 세워 아시안게임을 한 편의 거대한 사기극으로 분류하는 도발을 이들은 저지르고 만다. 여기서 이상향을 꿈꾸는 소년들이었던 페퍼톤스는 순식간에 이상향을 부정하는 청년들이 된다.


21세기의 어떤 날, 페퍼톤스는 진짜 밴드가 됐다. 과거 디지털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그들의 어쿠스틱한 감성은 음악적 중용이었고 아날로그로 일상을 풀어온 한국 인디 음악계에서 그들의 디지털한 세련미는 음악적 발견이었다. 중용이었고 발견이었던 페퍼톤스의 2012년은 밴드다. 어느 미학자의 말처럼 예술가는 작품의 생성을 위해 자신을 죽인다. 페퍼톤스는 죽음으로써 살아난 것이다. 정말 그들의 말처럼 이 앨범은 여러 면에서 데뷔 음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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