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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13. 2021

[헌정/리메이크 앨범 3] 헤비메탈 전설의 복기

VA [Am I Metallica?]

1997년, 한국 언더그라운드 헤비메탈 밴드들이 메탈리카에게 헌정한 [Am I Metallica?] CD 모습.


1997년. 대한민국에서 흥미로운 헌정 앨범 두 장이 나왔다. 하나는 메탈리카에게 바치는 [Am I Metallica?], 다른 한 장은 1994년에 주인을 잃고 2년 뒤 한국 땅에 ‘인디 록’을 촉발시킨 너바나를 추억한 [Smells Like Nirvana]다. 두 앨범은 모두 지지 탑 스튜디오(ZZ Top Studio)에서 녹음 됐고 또 같은 음반사(서울음반)에서 발매됐다. 심지어 커버 아트워크도 한 사람(안홍섭)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같은 해에 전 세계 헤비메탈을 정복한 밴드와 그 헤비메탈을 전복한 밴드의 헌정 앨범이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사실. 이것만으로도 두 음반은 기억해둘 만 하다. 물론 메탈리카 경우엔 때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너바나 경우엔 여러모로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고 본다. ‘너바나 트리뷰트’란 결국 ‘커트 코베인 추모’의 다른 말이기도 했으니까.


[Am I Metallica?]엔 총 아홉 팀이 참여했다. 우선 크래쉬와 노이즈가든, 사하라 같은 비교적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고 게임 오버, 제노사이드, 볼트, C.O.B., 칼파, 노 웨이가 거기에 합류했다. 이들은 앨범 경력에서 다 제각각이었다. 당시 가장 유명세를 떨친 크래쉬는 3집 [Experimental State Of Fear]를 낸 직후였고, 사하라는 한국 헤비메탈 명반 중 한 장인 2집 [Self Ego]를 내고 이 앨범에 출전했다. 또 노이즈가든에게 1997년은 크래쉬의 데뷔작 만큼 선진적인 녹음 기술을 들려준 데뷔작을 낸 이듬해였다. 게임 오버는 이 헌정 앨범에 참여 하기 1년 전 셀프 타이틀 데뷔작을 냈으며, 제노사이드는 3년 전 옴니버스 앨범 [Monsters From East]에 ‘Rule Of The Power’를 실은 것이 앨범 경력으론 전부였다. 볼트는 아예 [Am I Metallica?]로 데뷔해 [A Bolt From The Blue]를 남겼고, 칼파 역시 이 앨범으로 데뷔해 5년 뒤 데뷔 앨범 [The Path of the Eternal Years]를 발매했다. 부산 출신 C.O.B.와 마지막 트랙을 배정받은 노 웨이는 아쉽게도 이 앨범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선곡은 고르게 한 편이다. 메탈리카 1집 [Kill’em All]에서 1996년 발매된 6집 [Load]까지 두루 살펴 담았다.([Load]의 반쪽인 [Reload]는 [Am I Metallica?]가 나오고 6개월 뒤 발매돼 이 앨범에는 등장하지 못했다.) 특히 이들의 황금 시대라 할 80년대 세 작품(2, 3, 4집)에선 각각 두 곡 씩이 실리며 좀 더 각별히 다뤄졌다. 다시 봐도 가장 의외의 선곡은 역시 볼트의 ‘Poor Twisted Me’다.


흔히 남의 곡을 다시 연주하거나 부를 땐 몇 가지 선택지에 부딪힌다. 대표적인 게 ‘원곡과 비슷하게 연주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다르게 가볼까’이다. 그것도 아니면 ‘다르지만 비슷하게’ 또는 ‘우리 식으로’일 것이다. 메탈리카 4집의 첫 곡이자 이 앨범의 첫 곡인 ‘Blackened’를 맡은 크래쉬는 여기서 세 번째 방법론을 택했다.


일단 크래쉬는 천천히 쏟아져 들어오는 원곡의 일렉트릭 기타 멜로디를 과감히 빼고 곧바로 맹렬한 밴드 사운드에 투신한다. 기타 리프와 솔로, 곡 진행 등 전체 맥락은 메탈리카 것을 따르지만 리듬에서 이들은 원곡과 거리를 둔다. 가령 팬들이 머리 흔들기 좋은 중반부 킬링 리프 부분을 크래쉬는 라스 울리히의 8비트 프레이즈를 짓뭉게버리는 정용욱의 드러밍을 앞세워 다른 해석을 내놓는데, 이는 아마도 듣는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렸을 지점으로 보인다. 내 경우 원곡의 느낌을 좋아해 ‘그냥 원래대로 갔더라면…’ 조금 갸우뚱 했던 대목이다.


블랙 앨범의 ‘Sad But True’를 메뉴로 쓴 게임 오버 역시 원곡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리메이크 방향을 잡았다. 특히 들어가는 메인 리프와 중반부 커크의 기타 솔로(톰 모렐로가 떠오르는)를 노병기는 97년 당시 유행한 뉴 메탈 풍으로 해석했는데 이게 은근히 어울린다. 원곡 자체가 메탈리카의 변신을 반영한 만큼 게임 오버의 재해석은 낯설었던 90년대 메탈리카를 그 시대에 가장 부합하도록 만들었다. 참고로 게임 오버는 1996년 즈음 내가 사는 곳에 공연을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연주한 곡은 판테라의 ‘Becoming’이었다.



이어지는 제노사이드의 ‘Welcome Home (Sanitarium)’은 객원 키보디스트 김정민의 인트로 연주와 서준희의 보컬 톤 정도만 빼면 기타 솔로를 포함, 비교적 원곡에 충실하다. C.O.B가 해석한 ‘One’도 비슷하긴 한데 제노사이드보단 좀 더 손을 댄 편이다. 이들은 우선(이 곡에서 가장 유명한 파트인)6연음으로 몰아치는 곡의 변곡점을 지우고 느긋한 미드 템포로 장면을 전환했다. 또 원곡과 다른 기타 솔로를 넣거나 메가데스 식 ‘기브 앤 테이크’ 트윈 기타 솔로를 더하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한다. 대신 질주하는 곡의 마지막은 거의 그대로 재연하며 메탈리카를 향한 ‘존경’을 전했다.


국내 1세대 블랙 메탈 밴드 칼파도 원작의 느낌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지켰다. 일단 제목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장르(‘Fade To Black’)를 표현했고, 원곡의 발라드풍 슬로우 템포 대신 벌스(Verse)에서 치고 나가는 나마의 드럼과 블랙 캔들의 사악한 노래로 헌정과 리메이크의 본질을 건드린다. 이어 마지막 나마의 무자비한 블래스트 비트까지 더해지면서 메탈리카의 원곡은 기존보다 더 스산하고 기존에는 없던 오싹한 부침을 겪는다.


사실 이 앨범에서 원곡에 가장 충실한 건 인천의 사하라가 연주한 ‘Master Of Puppets’다. 인재홍(기타)과 멤버들은 1986년의 메탈리카 숨소리까지 훔칠 기세로 기타 리프와 솔로, 베이스 프레이즈, 드럼 라인을 거의 그대로 따르며 메탈리카에 가장 날것의 경의를 던진다. 적어도 중반부 템포 체인지를 알리는 황창식의 키보드와 객원 보컬리스트 이시영의 거친 발성, 찌르는 기타 톤과 줄어든 러닝 타임(원곡보다 15초가 짧다)만 빼면 그렇다.


이제 남은 밴드는 세 팀. 이들은 앞서 말했듯 ‘완전히 다르게’ 원곡을 해석한 팀들이다. 안흥찬(크래쉬)을 닮은 하지용(보컬, 기타)의 목소리를 앞세운 밴드 볼트는 [Load]라는 앨범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 ’Poor Twisted Me’를 말 그대로 헤비하게 비틀어(Twist) 창작에 가까운 리메이크를 선보였다. 시대 흐름에 맞게 얼터너티브 록을 선택, 기존 강성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1996년 메탈리카의 입장을 이들은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조롱한 것일까. 만족인지 비꼼인지 모를 엽기적 해석은 그럼에도 썩 괜찮았다.


2집의 타이틀 트랙 ‘Ride The Lightning’을 고른 노이즈가든은 한 술 더 떠 원곡의 형체마저 지우며 시작한다. 아직 무명에 가까웠던 메탈리카가 야성적 박력에 흠뻑 젖었던 시절을 윤병주(기타)와 박건(보컬), 염재민(베이스)과 박경원(드럼)은 자신들이 준비한 사이키델릭 의자에 앉혀 완전히 불태워 버린다. 중반부 빠르기 변화는 그나마 원곡을 기리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후반부 딕 데일(Dick Dale) 풍 서핑 기타는 그마저도 부인해버리며 원곡을 더 멀리 밀어보낸다.


참신한 해석인지 과도한 해석인지는 노 웨이의 ‘Seek And Destroy’에도 들이대야 할 잣대다. 노이즈가든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원곡의 단단한 직조감을 모두 풀어헤쳐 느리고 처지게 원곡을 욕보인다. 예상된 템포 체인지에서마저 이들은 질주감보단 펑키함을 선택해 메탈리카의 오랜 대표곡에 왜곡된 그루브를 덧입혔다. 자신들의 해석이 지나쳤다 싶었을까, 그래도 곡의 끄트머리만은 원곡 리프를 살려주었다. 노이즈가든과 노 웨이의 과잉된 해석 안에서 메탈리카는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했다.


제노사이드는 앨범 속지 인사말에서 “메탈리카 멤버들이 이 음반을 들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고 썼다. 그리고 볼트는 “이 앨범에 미처 참여하지 못한 밴드들에게 아쉬움을 표”한다고 했다. 나는 볼트의 말에 상상을 보탰다. 다시 한 번 우리네 밴드들이 “참여”한 [Am I Metallica?]가 나올 순 없을까? 24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하고 있을 세월. 그 사이 우리 헤비니스계도 꽤 풍요로워졌다. 바세린, 해리빅버튼, 할로우 잰, 잠비나이, 메써드, 어비스,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램넌츠 오브 더 폴른, 멤낙. 이들이 해석한 메탈리카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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