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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25. 2021

찰리 와츠

The Rolling Stones


드러머 중엔  피어트나 마이크 포트노이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기교로 듣는 사람을 압도하는 테크니션 계열이 있는가 하면, 슬레이어 출신의 데이브 롬바르도나 테스타먼트의  호글런처럼 산사태 같은 리듬을 게워내는 부류도 있다.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교나 무시무시한 리듬 폭풍을 일으키지 않고도 위대한 드러머들은 종종 있다. 비틀스의 링고 스타, AC/DC  루드, 롤링 스톤스의 찰리 와츠가 그렇다. 이들은 평소엔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사라지면 대번에 눈에 띄는  음악의 핵심 멤버들로  드럼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이들 중 현지 시각으로 지난밤(2021년 8월 24일), 찰리 와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그는 1964년 롤링 스톤스 드러머로 데뷔해 지금까지 롤링 스톤스 드러머로 명성을 이어왔다. 보통사람의 한 평생을 그는 한 밴드에서 보낸 것이다.


롤링 스톤스 하면 사람들은 으레 믹 재거의 두꺼운 입술이나 '혓바닥 로고', 그리고 키스 리처즈의 건들건들한 카리스마를 떠올린다. 하지만 롤링 스톤스 음악은 찰리 와츠의 드러밍으로 지탱됐다. 'Stray Cat Blues' 같은 곡이 들려주듯 찰리의 리듬이 없는 롤링 스톤스는 상상할 수 없으며, 때문에 그의 부재는 롤링 스톤스의 마지막이 임박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에 가깝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공룡 밴드가 사지를 잃었으니, 남은 몸통은 그저 서러울 따름이다.


찰리는 록 드러머이면서 록 드러머가 아니었다. 한 장르에 틀 지우기엔 찰리의 그루브는 너무 자유로웠다. 까다로운 트래디셔널 그립(Traditional Grip)으로 블루스, 솔(Soul), 펑크(Funk)를 내키는 대로 넘나들었던 이 희대의 드러머를 후(The Who)의 피트 타운젠드는 그래서 아예 재즈 드러머로 못 박아버리기도 했다.


실제 1960년대 드러머들이 대개 그랬듯 찰리 역시 재즈의 자장에서 예외일 순 없었다. 아니, 그는 자타가 공인한 재즈 키드였다. 그의 재즈적 관심사는 엘빈 존스나 맥스 로치, 필리 조 존스 같은 드러머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악기 파트를 넘어 듀크 엘링턴이나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장르의 아이콘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여기며 기본기를 다졌다. 찰리의 드러밍이 라이브에서 더 빛이 나고 상황에 강한 이유는 바로 그의 비트가 재즈의 즉흥 철학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찰리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풍부했다. 그는 곡을 지배하지도 짓누르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연주는 다른 멤버들이 마음 놓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을 뿐이다. 명곡 'Sympathy For The Devil'에서 찰리가 스내피(Snappy)를 떼어낸 스네어 드럼을 림샷(Rim Shot)으로 쪼개 삼바 그루브를 일으킬 때 그런 길은 열렸다. 찰리의 탁월한 림샷은 스왐프 블루스(Swamp Blues)의 대가 슬림 하포의 'Shake Your Hips'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 이처럼 찰리는 스네어의 북피에서만 리듬을 썰어내지 않았다. 스네어의 테두리도 그에겐 좋은 비트 재료였다.


찰리의 드러밍은 '검었'다. 히트곡 'Miss You'에서 들려준 포 온 더 플로어(Four-On-The-Floor, 한 마디에 4개 박이 있을 때 정박마다 킥 드럼을 치는 리듬. 펑크, 디스코 느낌을 낸다.)나 'Beast Of Burden'이 풀어내는 모타운식 솔 그루브는 그의 또 다른 장기였다. 무엇보다 'Start Me Up'이나 'Honky Tonk Women'에서 키스 리처즈의 기타 리프를 듣는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선 찰리의 드러밍이 있어야 했다. 그 당위는 'Brown Sugar'에서 믹 재거가 춤추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와츠의 플레이는 롤링 스톤스 음악의 바탕이요 척추였다.


MBC 라디오 장수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 버금가는 공격적인 비트를 자랑하는 곡 제목처럼, 찰리는 그렇게 백인들의 장르라 일컫는 록의 리듬을 검게 칠해버렸다.(Paint It, Black.) 그리고 그 검은 리듬은 위대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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