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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2. 2016

이아립

망명(亡明)

이아립은 두 얼굴의 목소리를 가졌다. 한 쪽은 예쁘고 한 쪽은 쓸쓸하다. 예쁨과 쓸쓸함을 오가면서 이아립은 비로소 ‘가수’가 된다. 스웨터(Sweater) 보컬 시절, ‘분실을 위한 향연’ 같은 펑키(funky) 곡을 부를 때도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차분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밴드 사운드와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영역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고, 싱어송라이터는 그래서 이아립에겐 거의 필연과 같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아립의 음악은 늘 자연과 사색, 그리고 허무에 방점을 찍었다. 책과 엽서를 동원해 만든 두 번째 솔로 앨범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은 흐르는 물을 주제로 했고, 바람을 주제로 한 3집은 소음도 소리로 받아들이려 앨범 이름을 ‘공기로 만든 노래’라 지었었다. 리버 피닉스가 나오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가 이아립에게 음악을 하도록 만든 건 그래서 참으로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망명(亡明)’은 그런 이아립의 다섯 번째 앨범이다. 한자에 주목하자. 정치 ‘망명(亡命)’이 아니다. 빛이 꺼지고 있거나, 아니면 지혜(明)가 꺾이고(亡) 있다는 뜻에서 ‘망명’이다. 첫 곡 ‘1984’ 와 우리의 조각난 미래를 노래한 ‘원더랜드’ 때문에 나는 망명을 그렇게 읽었다.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이아립은 SNS의 병폐 즉, “세 치 혀”에서 뱉어내는 “말의 악취”를 끌어내 현대판 ‘1984’를 다시 썼다. 적당히 다들 잊고 사는데 달빛과 산과 잎사귀를 흔드는 그 수 많은 손가락(말)은 무슨 일로 그리들 바삐 떨어대는가. 은근 까칠한 것을 좋아한다던 그가 세상을 향해 조용히 호통치는 이 모습은 이번 앨범을 넘어 앞으로도 이아립 음악에서 언급될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자판'으로 소통하기보다 '전화'로 대화하길 더 좋아하는 아날로그 인간이다. 

그 좋아했던 바람마저 떠나라고 말하는 왈츠 곡 ‘계절이 두 번’에서 프로듀서 홍갑을 한 번 칭찬한 이아립은 ‘그 사람’에서 “익살스러운 기타” 솔로를 넣어준 홍갑을 두 번 칭찬하였다. 이어 왈츠 리듬과 “그 사람”을 함께 챙긴 다음 곡 ‘조언’에서 일렉트릭 기타 한 대로 반주를 끝낸 홍갑은 사실 이번 앨범의 숨은 공신이다. 그는 이아립이 본작에서 추구한 가치(“지난 시간 만큼의 생각, 그리고 목소리”)를 주름없이 표현할 수 있게 한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정서까지 끌어안아 마치 자신의 음반처럼 깎고 다듬어 내었다. “살기 위해 떠나야 했던 망명(亡命)의 순간에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작별 인사”가 담긴 마지막 곡 ‘끝’도 그런 두 사람의 공감이 없었다면 쉬 들려줄 수 없었을 피날레였을 게다.

‘제주도의 푸른 밤’과 '색깔'이 담긴 최성원의 첫 솔로 앨범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다는 이아립의 음악은 또 다시 기쁨도 슬픔도 아닌, 딱 요즘, 입춘 뒤 포근해진 겨울 햇살을 닮아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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