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사막별
‘낙타사막별’이라는 이름은 팀의 리더인 신세빈(건반, 작곡)이 어릴 적 가졌던,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나가 별을 보고 싶었던 소망을 담아 지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한 뒷이야기이지만 음악만은 그렇지 않다. 음악의 바탕이 된다 하여 ‘사막’으로 불리는 드러머 박예영과 그 사막 위 드넓은 하늘로 멜로디를 쏘아 올린다 하여 스스로를 ‘낙타’로 부르는 신세빈은 똑같이 네덜란드 유학파 재즈 뮤지션들이다. 물론 난해한 것으로 정평 난 장르인 재즈를 한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성을 주목하자는 게 아니다. 밴드가 자평한 ‘엉뚱모던팝재즈’라는 전대미문의 장르 이름을 주목하자는 뜻에서 나는 이들의 음악성을 말한 것이다. 하나씩 풀어보자.
일단 ‘엉뚱’이다. 엉뚱함은 보컬 박신영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너와 내가'와 '꼭짓점을 이어 별 선을 긋는다' 같은 곡들에서 귀찮은 듯 재즈 화성을 자유롭게 거니는 보컬을 구사하는데 그것은 노래라기 보단 차라리 혼잣말에 가깝다. 듣다보면 너무 평범해서 마치 데모(demo) 음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뒤에 깔린 신세빈의 키보드 조작은 ‘모던’이라는 개념으로 왜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했는지 분명히 들려준다. 그는 음을 건축하듯 쌓거나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어떤 질서를 자신의 음악 안에 세워냈다. 그게 매우 깔끔하고 정갈해서 낙타사막별의 음악은 ‘모던’할 수 있었다. ‘너도 그런 적 있니’ 같은 곡이 그렇다.
언뜻 동요 같기도 한 이들의 음악은 그러나 어쨌든 ‘재즈’다. 신세빈이 자신의 음악 안에 담긴 ‘팝’ 성향을 강조하며 아무리 대중성과 음악성을 다 잡으려 한들 두성과 가성을 오가는 ‘가창력’에 반하고 편한 멜로디 끝 ‘후크’에 가슴 설레는 한국의 대중 앞에서 그것은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포수의 욕심에 불과해 보인다. 가령 ‘한동안’ 같은 곡은 정말 끝내주는 곡이지만 대중은 키보드와 일렉트릭 기타가 주고받는 중반부의 그 섹시한 솔로 다툼을 황홀하게 느끼는 대신 되레 혼란스럽게 여길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살짝 닮은 가을방학과 담을 쌓는 지점도, 이 음반에서 자꾸 고찬용이 들리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음악성이 대중 취향과 결부되려면 만드는 이의 음악 욕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진리가 이 앨범에서도 어려운 진리일 수밖에 없다는 게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아닌 이상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희망을 이 앨범에서 보았다. 대중이 이 음악을 재즈가 아닌 팝으로 받아들일 때, 그 때 대중의 듣는 귀는 더 열리고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리듬과 멜로디 라인을 뜯어보면 장난 아닌 음악이 통으로 들었을 땐 만만한 동요, 친근한 가요 같은 느낌을 준다.(‘웃고 싶어’) 재즈를 어렵다고 말하며 재즈를 멀리 하려는 이들에게 신세빈과 그의 친구들은 이처럼 재즈를 ‘쉬운 음악’으로 소개했다. 엉뚱한 보컬과 모던한 사운드로 팝과 재즈를 기분좋게 엮었다. 낙타사막별의 가치는, 그 음악 속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