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4일.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으로 89년 길었던 생의 여정을 마감한 비비 킹. 당시 미국 유력 매체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자신들의 홈페이지 메인을 모두 고인의 기사로 도배하며 거장을 추모했고 SNS 타임라인은 약속이나 한 듯 비비 킹 추모 메시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중에는 에릭 클랩튼, 슬래쉬(Slash) 등 비비 킹으로부터 직접 영향받은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들과 윌리 넬슨, 믹 재거처럼 비비 킹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은 백전노장들도 있었다. 물론 평소 비비 킹을 귀에 달고 살았던 일반인들도 한편에서 깊은 슬픔을 삼키며 떠난 거장을 그리워했다. 모르긴 해도 비비 킹의 기타 루씰(Lucille)에게 따로 곡을 바친 신촌 블루스의 엄인호도 이날 적잖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으리라.
비비 킹은 앨버트 킹, 프레디 킹과 더불어 이른바 블루스 ‘쓰리 킹’으로 불리며 거장 중의 거장 아니, 거장들이 존경하는 거장으로서 오랜 기간 존경과 감사를 받으며 살았다. 비비가 생전에 아꼈던 후배 기타리스트 데릭 트럭스의 말처럼 적어도 미국에서 활동한 대중 뮤지션들은 그래서 모두 “비비 킹의 자식들”일지도 모른다. 호방한 보컬과 쇼맨십, 동글동글한 기타 톤, 버디 가이도 칭찬한 빠르고 깔끔한 비브라토(Vibrato)로 모던 블루스의 상징이 된 사나이. 그의 독보적인 음악 인생을 40 여장이 넘는 그의 앨범들 중 대표작들만 추려 정리해보았다.
Singin' The Blues (1956)
31살 비비 킹이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앨범. 빌보드 블랙 싱글 차트에서 1위에 오른 ‘You Upset Me, Baby’를 비롯 ‘Crying Won't Help You’, ‘Bad Luck’, ‘Ten Long Years’, ‘Sweet Little Angel’ 등 버릴 곡이 없었던 알짜배기 블루스 명반이다. 기타리스트 비비 킹에게 큰 영향을 준 티 본 워커(T-Bone Walker)의 성향 즉, 강한 피킹과 날 선 디스토션 톤이 그의 절창과 풍성한 브라스에 어울리는 모습은 이 앨범의 감상 포인트다.
Lucille (1968)
‘ES-355’라는 깁슨 모델명을 가진 비비 킹의 기타 '루씰'을 제목으로 쓴 통산 15번째 작품. 10분 16초에 이르는 타이틀 트랙 ‘Lucille’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그의 따뜻한 기타 톤과 절제된 주법은 이미 부카 화이트(Bukka White)나 티 본 워커를 저만치 따돌린 비비 킹만의 연주 세계다. 비비가 노래를 하면서도 늘 마음으로 연주했고, 부르던 노래를 그쳤을 땐 비비 대신 울어준 루씰은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와 찰리 크리스천에게도 영향받은 훈훈한 재즈 프레이즈까지 흘려내면서 이 앨범 그리고 비비 킹의 음악을 대중의 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했다.
Completely Well (1969)
이 앨범이 중요한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그것이 비비 킹 공연이라면 반드시 들을 수 있었던 ‘The Thrill Is Gone’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 코스트 블루스 뮤지션 로이 호킨스(Roy Hawkins)와 릭 다넬(Rick Darnell)이 1951년에 쓴 이 불멸의 블루스 스탠더드는 19년 뒤인 1970년, 비비 킹의 기타와 목소리를 빌어 다시 한번 세상 사람들의 감성을 훔쳤다.
Indianola Mississippi Seeds (1970)
이글스의 성공을 이끈 프로듀서 빌 심직(Bill Szymczyk)과 비비 킹이 블루스와 록의 접목을 꾀한 앨범.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26위, 재즈 앨범 차트에서 7위까지 오른 이 앨범은 지금도 록과 블루스 또는 블루스 록에 지대한 영향을 준 비비 킹의 앨범들 사이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글스의 조 월쉬와 캐롤 킹, 레온 러셀 등이 참여해 더 의미 있었던 이 앨범을 고인은 “아티스트로서 내가 남긴 앨범들 중 최고”였다고 자평한 바 있다. 타이틀에 쓰인 미시시피 주 인디애놀라는 비비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 이름이다.
Live In Cook County Jail (1971)
블루스 킹이자 라이브 킹이기도 했던 비비 킹의 라이브 앨범들 중 대중은 보통 'Live At The Regal'(1965)과 'Live In Japan'(1999)을 최고로 치지만 사실 그 두 앨범을 압도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이 앨범 'Live In Cook County Jail'이다. 당시 “최악의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쿡 앤 카운티 감옥의 교수형 무대에서 2,100여 명 죄수들과 사형수들을 앞에 두고 펼친 이 공연은 그러나 세간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떠한 사고도 없이 무사히 치러지며 조니 캐시의 'At Folsom Prison'과 더불어 세상이 등 돌린(내지는 세상에 등 돌린) 자들과 음악으로 하나 된 가장 뜨거운 순간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Riding With The King (2000)
스스로도 이미 거장인 에릭 클랩튼은 자신에게 블루스가 무엇인지 일깨워 준 델타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에게 바친 'Me and Mr. Johnson'(2004), 에릭의 음악적 멘토였던 툴사 사운드(Tulsa Sound)의 상징 제이제이 케일(JJ Cale)과 함께 한 'The Road To Escondido'(2006)에 앞서 비비 킹과도 앨범 한 장을 남겼으니 바로 'Riding With The King'이다. 1967년, 당시 22살 나이로 크림(Cream)을 이끌고 있었던 에릭 클랩튼은 뉴욕의 카페 오 고고(Cafe Au Go Go)에서 비비 킹과 첫 협연을 했는데 이후 97년까지 'Deuces Wild'(1997)에 ‘Rock Me Baby’가 실린 것 외에 두 사람의 블루스 데이트가 공식 레코딩 된 적은 없었다. 이 앨범은 그런 두 거장의 첫 공식 듀엣 음반이라는 데서 의미를 갖는데, 턱시도로 멋을 낸 두 사람이 운전기사와 회장님 콘셉트로 꾸민 재킷 사진은 그래서 미국에서만 2백만 장이 넘게 팔린 이 앨범 속 음악의 질을 에둘러 가늠케 한다. 블루스 키드와 블루스 킹의 “꿈의 대화”. 나는 이 앨범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One Kind Favor (2008)
우리도 그도 몰랐다. 이 앨범이 비비 킹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 될 것이란 사실을.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비비 킹 음악을 넘어 루씰이 뿜어낼 수 있는 최고의 톤과 멜로디로 한없이 평화롭고 따뜻하다. 로큰롤과 블루스, 알앤비와 재즈를 넘나드는 전천후 뮤지션 닥터 존(Dr. John)의 피아노, 포플레이의 베이시스트 네이선 이스트(Nathan East), 밥 딜런이 “미국 세션 드럼계의 리더”라고 칭찬한 짐 켈트너(Jim Keltner)의 리듬 문법이 비비 킹의 보컬, 기타와 어울리며 그의 마지막 음반을 명반으로 빚어냈다. 루씰을 비틀어 메고 호수 앞에 선 거장의 모습이, 블루스 팬들은 여전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