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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08. 2022

델리 스파이스, 스위트 피 떠나 온전한 '김민규'로


김민규의 데뷔작이다. 그의 앨범에 '데뷔'를 전제하는 건 분명 궤변이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이 김민규의 데뷔작인 건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델리 스파이스와 스위트 피라는 오랜 사유 끝에 그가 이런 음악적 결론을 내렸을 거라는 단정은 위험하다. 모르긴 해도 20년을 넘긴 그 커리어는 '김민규 음악'을 위한 희생적 과정이었기 보단 그 역시 당시로선 자신의 모든 걸 바친 생명의 여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프로젝트의 감성과 향후 추구할 음악적 방향이 달라 접었다는 스위트 피의 마지막을 "끝이 아닌 시작"이라 김민규가 말한 것도 결국엔 같은 맥락이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 앨범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참여했지만 내 눈은 자신들의 파트를 굳게 지키고 있는 두 이름에 가 멎는다. 바로 신석철(드럼)과 이원술(베이스)이다. 언제부턴가 인디 음악인들과 잦게 소통하고 있는 신석철이야 그렇다 쳐도 이원술의 이름은 좀 흥미롭다. 심지어 그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로도 활약하고 있기에 더 그렇다. 이것은, 그러니까 재즈 베이시스트 이원술이 프로듀서라는 건 김민규가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에서 뭔가 기존과는 다른 걸 시도할 것이라는 표면적 힌트로 읽힌다. 이는 실제 '우주대청소'의 펑키 재즈 록에서 한 번, 이원술이 콘트라 베이스를 뜯고 있는 탱고 넘버 '천년의 순간'에서 두 번 증명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김민규는 자신의 데뷔 아닌 데뷔를 그동안 해보고 싶었을 또는 지금 해보고 싶은 음악으로 채우려는 의지를 저 이원술이라는 이름에 넌지시 새겨 넣은 것이다. 역시 영리한 사람이다.


세차장에서 영감을 얻어 쓴 첫 곡 '우주대청소'로 들뜬 인사를 건넨 앨범은 신경질적인 톤을 먹인 '잘 모르겠어'의 기타 솔로 앞에 우리를 세운다. 자본주의 속 디지털 고령화 시대에 대한 소소한듯 날선 반론("그저 돈돈하며 몇 조 가치 등신 가치 너무 지겨워")이 숨어있는 이 곡을 들으며 나는 저 옛날 '가면'에서처럼 아직 죽지 않은 김민규의 냉소를 보았다. 그렇게 날을 세우는가 싶더니 잔잔한 다음곡 '태양을 맞으러'에서 그는 낭만의 영겁을 맴도는 피아노에 스트링을 얹어 대뜸 "대체 언제쯤이면 삶을 돌아보며 인생을 후회해도 되는 걸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김민규의 나이 올해로 지천명. 그래서일까. 알 수 없는 제목을 단 앨범 '언제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은 회상과 체념에 기댄 중년의 지친 사색으로 그득하다. 완전히 다른 온도로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의 눈높이가 비슷해진 지금, 그는 다음 곡 '조금만 더'에서도 예의 투명한 바리톤 목소리로 "영원히 만나지 못 할 평행선들"을 노래한다. 김민규를 김민규로서 다시 서게 만든 건 결국 세월이었다.



내리 두 곡을 조용한 사색에 바친 트랙은 이번엔 지글거리는 90년대 록에 브라스를 곁들인 '여름은 모른다'의 가슴 벅찬 사운드에 자리를 내준다. "템포는 상관없"다는 곡의 슬로우 록 비트가 더욱 힘찬 느낌을 전하는 이 노래는 김민규의 시작은 록이었고 그는 여전히 록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음악적 메타포다. 저기 건너건너 "슬퍼도 눈물을 감추고 아파도 인내하는 것이 어른이 된 거라 믿"었다 말하는 '초월의 밤'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 마침표는 록과 브라스를 향한 김민규의 애착을 연주만으로 엮은 엔딩 곡 '북회귀선'이 찍는다.


일상의 무료함, 사차원적 발상과 묘사, 풍요  빈곤, 충만의 허무, 발랄한 권태, 그리고 깨끗한 냉소. 알이엠과 스미스(The Smiths) 산울림을 만난  같은 음악(이번 앨범  '은파'라는 곡은 김민규식 'Everybody Hurts' 아닐까) 들려준 델리 스파이스와 관련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가지 인상들이다. 언젠가 김민규는 그런 델리 스파이스 앨범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2011 9월에 나온 7 'Open Your Eyes' 꼽은 적이 있다. 곡과  사이의 연결이 좋았고 음반으로서 응집력이 있다는  이유였다. 재밌는   이유가 내가 김민규의 솔로 앨범을 칭찬하기 위한 구실이기도 하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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