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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13. 2022

아미를 위한 BTS의 '증명'


BTS의 새 앨범은 신곡들로만 채운 작품이 아니다. 새로운 곡은 단 세 트랙 뿐이다. 나머지는 기존에 만들어두었지만 공식적으론 처음 선보이는 곡들과 이런저런 시도들이 있었던 데모(Demo) 버전, 그리고 지금까지 이들이 남긴 대표곡들로 채웠다. 요컨대 앨범 'Proof'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6월 12일)로 정확히 데뷔 9주년을 맞은 BTS가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베스트 앨범이면서 동시에 현재 자신들을 만들어준 팬들(ARMY)에게 전하는 스페셜 앨범이다. 소속사 측은 그것에 오래 활약한 거장들의 모음집에나 붙곤 하는 '작품 선집(Anthology)'이라는 꽤 묵직한 전제를 달았다.


'Proof'는 시디 3장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시디는 학교와 청춘과 자기애를 다룬 기존 대표곡들을 연대기로 망라한 것이고, 두 번째 시디는 멤버 각자의 솔로곡과 멤버들간 유닛곡들 중 엄선한 것들을 실었다. 마지막 세 번째 시디엔 피지컬 음반으로만 들을 수 있는 미발표곡 및 기발표곡들의 데모가 들어 있다. 신곡 하나를 뺀 나머지 트랙들을 디지털 음원으론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모음집을 '아미들을 위한 앨범'이라 말할 수 있는 결정적 명분은 결국 이 세 번째 시디에 있는 셈이다.


시디 세 장에는 새 노래 하나씩이 포함돼 있다. 첫 번째 시디의 신곡은 '바다'라는 노래와 정서를 공유하는 'Yet To Come'이다. 정국, 지민, 뷔, 진으로 이어지는 인트로 보컬 라인. 여기에 슈가, RM, 제이홉의 느슨한 듯 치밀한 랩이 빈틈없이 맞물리는 모습은 이들이 지난 10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Butterfly'가 문을 열고 '봄날'로 날개를 편 BTS의 서정적 팝 성향이 느긋한 비트를 타고 흐르는 이 곡의 주제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계속 꿈꾸고 희망을 가져" 정도로 보이는데, "변화는 많았지만 변함은 없었다"고 말하는 RM의 랩은 특히 "아직 나는 여전히 똑같은 나"라고 노래했던 'Lie'의 가사에 겹치기도 한다.


한 가지 재밌는 건 'Yet To Come'으로 문을 닫는 첫 번째 시디가 이들이 데뷔 한 달 뒤(2013년 7월)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비공식 발표한 곡('Born Singer')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RM이 첫 번째 믹스테이프에서 인용한 미국의 스타 래퍼 제이 콜의 'Born Sinner'라는 곡 위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얹은 이 트랙은 "언제나 멀기만 했던 신기루가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래한 것으로, 그들은 'Yet To Come'을 통해 9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신기루(꿈)를 계속 쫓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빌보드 정상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팀이 '아직 멀었다'고 하니 참, 욕심이 많은 친구들이다.



앞서 말한대로 두 번째 시디는 엄선한 BTS 멤버 솔로곡과 유닛곡들의 집합이다. 중요한 건 엄선의 주체가 BTS 당사자라는 것. 그러니 'BTS가 좋아하는 BTS 곡들'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시디는 팬들에게 그 자체 만족스러울 일이다. 여기서 신곡은 꼬리에 있던 첫 번째 시디와 달리 머리에 두었는데 제목은 '달려라 방탄'이다. '달려라 방탄'은 2015년 여름부터 포털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방영된 이들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타이틀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BTS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박차(拍車)라는 측면에서 반사적으로 '진격의 방탄'과 '흥탄소년단'을 떠올리게도 한다. 과거 '호르몬 전쟁'에서 알차게 썼던 록 기타를 전면에 깔고 슈가의 다른 이름인 어거스트 디(Agust D)의 속사포 랩이 듣는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이 곡은 긴 시간 아이돌과 래퍼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했던 BTS가 여전히 힙합을 놓지 않았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이어 세 번째 시디는 BTS가 과거 신작(싱글과 앨범)들을 준비하면서 작업은 했지만 끝내 수록하지는 않은 곡들('따옴표'와 '애매한 사이')을 비롯해 최종 버전을 내기 전 시도한 유명 곡들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데모 트랙들을 담았다. '롤링 스톤'은 이를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은 일기장의 찢어진 페이지"라고 표현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마지막 시디는 실물로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해둔 만큼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니아적 챕터이기도 하다.


이 특별한 선물 속에 숨은 신곡은 'For Youth'다. 이젠 BTS와 떼려야 뗄 수 없는 'ARMY(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의 마지막 단어(Youth)를 제목에 쓴 것에서 직관할 수 있듯 곡은 당연히 '둘! 셋!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을 잇는 팬송이다. 단, '둘! 셋!'이 "슬픈 기억 지우고 서로 손을 잡고 웃"으라고 말한 위로인 반면, 'For Youth'는 "남은 생애 영원히 당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 약속한 고백이란 점에서 뉘앙스를 달리 한다. '달려라 방탄'에도 등장한 논현동이라는 공간, 인트로에 넣은(실제 공연장에서 녹음한) 팬들의 'EPILOGUE : Young Forever' 떼창, 느린 비트와 회상적인 현악, 뜨거운 팔세토 보컬 아래를 지나는 피아노의 저류가 그런 고백의 감성적 배경을 이룬다.


'Proof'. 당연히 방탄소년단의 '방탄(Bulletproof)'에서 따온 것일 테고, 단어 자체는 '증명'이라는 독립된 뜻도 갖는다. 여기서 증명이란 세계 최고 팝 아이콘이라는 브랜드 차원의 일차원적 증명일 수도 있고,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병역법 개정안과 관련한 존재적 가치 증명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증명은 혹자의 평가처럼 "서양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침투한 케이팝의 맥락"인 동시에 "BTS의 독주에 관한 추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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