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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31. 2022

유일무이한 걸그룹 소속 프로듀서 소연


나는 전소연(이하 '소연')이 재능과 능력이 있는 아티스트라는 건 인정해도 그가 천재라고는 '아직은'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 천재란 세네 살 때 작곡을 시작한 캐럴 킹이나 빌리 아일리시, 아니면 두 살 때 엄마가 불러준 모든 노래에 대위 선율을 만들어냈다는 클래식 작곡가 에이미 비치 정도가 기준이기에 그렇다. 한마디로 선천형이냐 노력형이냐인데, 이미 주위에서 '노력파'라는 일관된 평가를 받아온 소연은 나에겐 후자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이 글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가. 먼저 소연이 데뷔 전 작곡 공부를 하던 때 겪은 이야기(또는 상황) 하나를 들여다보자. 지금도 그렇지만 소연이 곡 만들기를 배울 때 '여자 아이돌'이 작곡과 프로듀싱에 관심을 갖는 건 드문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대뜸 "왜?"라고 물었고 소연은 아무렇지 않게 GD와 지코라는 성공 사례를 들어 자신도 그들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정작 돌아온 말은 "그 사람들은 남자 아니냐"라는 반문이었다. 전소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맞다. 그건 전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연은 그 말같지도 않은 반문을 뒤로 하고 5년 동안 자신이 이끌어온 (여자)아이들(이하 '아이들')을 보란 듯이 글로벌 시장에까지 안착시켰다. 만약 소연이 대한민국에서 걸그룹 또는 걸그룹을 바라보는 시선들의 맹점인 수동성과 소극성을 업계의 생리로만 받아들였다면 절대 이룰 수 없었을 일이다.


알고 있다.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과 표절 등 소연을 둘러싼 어두운 논쟁이 그의 재능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좋다. 비판할 건 하자. 그리고 당사자도 반성할 게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한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프로그램 불법 복제와 표절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없는 사안인 만큼 소연은 자신의 실수를 깊이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와 관련한 법적 도덕적 문제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하기로 하고, 이제 이 글을 시작한 이유인 '소연의 팀내 역할'에 관해 정리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정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왜냐하면 소연은 자타공인 아이들의 리더(세간에선 'Z세대의 리더'라고까지 일컫는다)이자 메인 래퍼, 작사/작곡/편곡가,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꽤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외 뮤직비디오와 의상 콘셉트를 정할 때도 적극 발언하는 그는 사실상 아이들의 음악적, 예술적 축을 세우는 아이들의 주춧돌이기도 하다. '프로듀스 101'과 '언프리티 랩스타', '퀸덤'을 거치며 이른바 '서낳괴(서바이벌이 낳은 괴물)'로만 머물기엔 소연은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았다.



소연이 맡은 저 많은 역할들 중 여기선 프로듀서에 집중해보려 한다. 왜냐하면 랩을 하거나 곡 창작에 참여한 걸그룹 멤버는 소연 이전에도 있었지만 프로듀싱 만큼은 같은 계열에서 거의 전무한 성취 영역이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프로듀서란 크게 총괄(Executive Producer)과 레코드 분야로 나뉘는데 소연은 여기서 레코드 프로듀서 쪽에 가깝다. 즉, 음반 제작의 전반적인 상황을 책임지는 총괄 프로듀서 대신 소연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아티스트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하는 등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편곡 등)에 깊숙이 개입해 그 과정을 주도하고, 녹음이 끝난 뒤에도 믹싱과 마스터링 같은 후반 작업까지 직접 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따지면 음악 프로듀서는 언뜻 영화에서 감독과 비슷해보이지만 영화감독이 작품의 주인으로 간주되는데 비해 음반 프로듀서는 해당 음반의 조력자 정도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다. 그러니까 적어도 앨범의 주인은 프로듀서가 아닌 실제 작곡과 작사, 노래와 안무, 랩을 한 사람들로 본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연의 경우 그것들(작사, 작곡, 노래, 랩, 안무)까지 모두 소화하므로 그는 영화감독과 동급의 음반 프로듀서로 인정받을 만한데, 바로 이것이 그가 천재 소리를 듣고 인재(人才)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연은 한 인터뷰에서 그룹 리더와 음반 프로듀서의 역할 차이를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리더란 그룹의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사람이고 프로듀서는 그룹이 발표하는 양질의 음악적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이다. 언뜻 모두가 함께 해나가는 분위기를 만들거나 함께 해나가도록 설득을 하기 때문에 리더와 프로듀서는 비슷한 역할인 듯 보이지만 리더가 멤버들의 내면에 호소하는 반면, 프로듀서는 멤버들의 음악적 외양을 다듬는 사람이란 데서 두 역할은 엄연히 갈린다. 그리고 여기서 소연에게 더 중요한 역할은 당연히 프로듀서 쪽이다. 그는 심지어 무대 위 자신이 프로듀서인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듀서 일의 중요도를 리더보다 좀더 높은 차원에서 가늠한다.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한달 이상 그 생각만 할 때도 있다는 '완벽주의자' 소연은 누구보다 자기 음악에 확신이 강한 편이다. 또한 누가 구울 지 눈치보는 게 싫어 고깃집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에게 직접 배운 고기 굽는 실력은 그가 가진 적극성의 흥미로운 단면이다. 어떤 제약도 없다는 면에서 일본 만화가 긴다이치 렌주로의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을, 솔직하고 직진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또! 오해영'의 오해영을 좋아하는 그런 소연의 창작자 겸 프로듀서로서 무기는 자극과 진심이다. 가령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엔터테이너"임을 직시하며 추구한 자극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와 칸예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에서 빨아들이고, 진심은 권진아의 '끝'을 쓴 유희열의 가사 속 "진짜 같은 언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부르는 아리아나 그란데를 닮고 싶은 마음에서 가져오는 식이다. 완벽주의, 적극성, 자유, 솔직함. 이것들에 기반해 대중에게 전하는 자극과 진심. 프로듀서 소연은 계속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속세를 등진 시인이나 도인 정도가 고민할 법한 "바람처럼 사는 일"을 삶의 화두로 삼는 소연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날것 그대로의 팀으로 아이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는 프로듀서를 꿈꾼다. 돌이켜보니 아이들을 4세대 걸그룹 시장의 뇌관으로 이끈 'LATATA'에서 시작해 잘 만든 솔로 앨범 'Windy'를 지나, 급기야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 올라간 'TOMBOY'까지 그의 프로듀서로서 지략은 늘 거기(사람과 자연)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과연 세상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온 오랜 가치는 프로듀서 소연의 방법론 안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한 셈이다.


얼마전 어느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케이팝의 3대 파'가 있다고 들었다. 3대 파란 보컬 파, 싱어송라이터 파, 그리고 아이돌 파를 뜻했다. 당신이 눈치챘듯 나는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지금 하려던 참이다. 바로 소연 같은 '프로듀서 파', 더 정확히는 '(걸그룹)아이돌 프로듀서 파'다.



*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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