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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29. 2022

종이에 녹음한 플레이리스트 두 권

<초원서점 믹스테잎> & <아무튼, 가요>


바야흐로 에세이와 플레이리스트의 시대다. 언젠가부터 쉽고 공감가는 글을 읽는 것과 몰랐던 좋은 음악을 소개받는 일이 대중 일상의 문화적 기쁨으로 자리 잡으면서 진지함과 깊이를 추구하는 비평(가들의) 글이 설 자리는 갈 수록 줄고 있다. 당연한 얘기다. 삶 자체가 버겁고 피곤한데 누가 여가에서까지 머리를 싸매고 싶겠는가. 실적이 필요한 학자가 아닌 이상 비평가들도 이젠 쉽고 가볍게 써야 할 때다. 취미가 아닌, 그걸 업으로 삼고 싶다면 응당 그래야 한다.


얼마전 앞서 말한, 요즘 유행하는 형식을 모두 포함하는 '플레이리스트 에세이' 두 권을 만났다. 한 권은 제목(<초원서점 믹스테잎>, 이하 '믹스테잎')에서도 예고하듯 "스물 일곱 노래를 종이에 녹음한 믹스테잎"을 표방하고 있고, 다른 한 권(<아무튼, 인기가요>, 이하 '인기가요')은 위고/제철소/코난북스라는 세 출판사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를 취지로 내고 있는 '아무튼'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책은 똑같이 쉽고  읽히는 "종이에 녹음한" 플레이리스트다. 차이라면 '믹스테잎' 구체적인 아티스트와 곡을 단위로 자신의 이야기를 간간이 섞어 풀어나가는 반면, '인기가요'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글에서 언급된 곡들을 챕터별 추천곡으로 엮었다는  있다.  하나 서점(초원서점) 운영하다 지금은 음악과 사람을 매개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저자가 초사장이란 필명으로  '믹스테잎'  꼬리에 참고문헌  자료 출처를 밝혀놓았듯 팩트에 기반한 비평적 해설글을 지향한 것인데 비해, '인기가요' 현직 시인인 필자의 글맛과 음악취향(특히 아이돌 걸그룹  애착 보인다) 방점을 찍고 내용을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책은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수다에 가까운 '인기가요'가 '믹스테잎'보다 더 재밌고 잘 읽히는 대신, 지식 차원에서 '책'의 가치를 논할 땐 '믹스테잎' 쪽에 더 무게감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가독성과 정보성의 차이인데 전자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인기가요'가, 후자를 추구한다면 '믹스테잎'이 만족스러울 확률이 높다. 물론 '믹스테잎'도 개인 이야기를 곁들이며 쉽게 쓴 편이고 '인기가요'에도 비평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니 판단은 각자가 읽어보고 하면 되겠다.


그나저나 글쓴이도 '플레이리스트' 책 한 권을 곧 발간할 예정인데, 80년대에서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고른 190여 곡 하나 하나를 앨범 리뷰 쓰듯 파고 든 탓에 이 두 책 만큼 쉽고 가볍게(페이지 수도 이 책들 두 배 이상이다) 읽히진 않을 듯해 걱정이 앞선다. 물론 그런 책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또 나름의 기쁨을 줄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엇이 정답인지는 쉬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얘긴 그때 가서 다시 하기로 하고.


여튼 심심할 때 음악 들으며 얘기하고 싶거나, 음악 얘기하며 현실의 시름을 떨쳐내고 싶을 때 추천할 만한 두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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