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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07. 2016

Vassline

Black Silence

한국인들이 음악을 다양하게 듣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알고 꺼리는  취향이다. 그건 누가 왈가왈부   아니다. 문제는 몰라서  듣는 사람들에게서 불거진다. 그들 입장에서 기댈 곳은 역시 음악을 소개하고 들려주는 매체다. 방송과 포털의 영향력이 책과 잡지를 압도하는  땅에서 영향력 있는 몇몇 매체들의 음악적 편향은 결국 대중의 취향 편향을 부추기고, 왜곡된 취향은 끝내 장르의 다양화를 질식시킨다. 결국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한국 대중(음악) 한류라는 아편에 집단 투신해버렸고 이른바 '변방 장르' 종사자들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압박이라는 현실 앞에서 한숨 짓거나 끝내 포기해버리거나 한다. 그야말로 음악 해서 돈을 버는  아닌 "음악 한다고 돈을 내는 입장"  이들. 유력 매체들의 '장르 몰빵' 더불어 저들의  숨을  깊게 만드는  아마도 대중의 음악적 편견일 것이다. 거칠고 난해하고 그래서 시끄럽고 졸린 음악, 이라는 위험한 편견. 모르긴 해도 나중에 케이팝의 위험은 바로  편견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물론 이강토와 최현진을 뺀 멤버 모두가 자신의 생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부업(?)인 음악을 해나갈 수 있는 현실에 만족한다는 것을 안다. 혹자의 말처럼 그들에게 노동은 진짜 "자아실현의 연장"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6년이라는 시간은 지나쳐 보였다. '혹시 해체?' 잘 나가는 메이저 뮤지션들이 몇 년 공백을 가지며 새 앨범 준비하는 것쯤 수월한 일이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 밴드를, 그것도 극소수에게만 어필하는 하드/메탈코어 밴드를 굴린다는 건 조금 다른 문제이기에 '바세린은 요즘 뭐하지?'라는 자문에 이은 우울한 자답은 그래서 더 현실감을 띠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기우였고 오판이었다. 바세린은 보란 듯이 돌아왔다. 팀 사운드, 팀 스타일의 큰 축을 담당했던 박진이 빠진 자리에 이강토가 어울리는 데 걸린 시간, 먹고 사는 문제, 다른 음악을 들으며 멤버 각자가 해온 음악적 사유. 6년은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이었던 듯 이기호(베이스, 그로울링)의 작품 속 고개 숙인 까마귀와 핏빛 배경은 그래서 더 스산하고 숙연한 느낌을 준다. 검은 침묵. 무릇 침묵이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 검붉게 달아오른 그 침묵은 결국 바세린의 포효 앞에서 하얗게 금이 갈 운명인 것이다.


박진이 빠지니 확실히 사운드가 달라졌다. 묵직하고 뭉툭했던 스래쉬메탈식 훅(가령「Empty Prayers」의 리프 덩어리)이 잦아든 대신 날렵하고 뚜렷한 멜로딕데스 또는 익스트림 메탈의 파장이 느껴진다. 거기엔「Last cadence」같은 기타 솔로도 없고 「Question and answer」같은 멜로딕 보컬 라인도 없다. 말인즉슨 덩실대는「New world awaits」의 헤드뱅잉 타임 보단 나일(Nile) 같은 블래스트 비트와 더욱 처절해진 그로울링, 코드와 코드를 트레몰로 피킹으로 바르는「Blood of Immortality」식 북유럽 정서가 강조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조민영이 넣길 즐긴다는「Sanguinolentus Desperatio」나「Curtain Fall」같은 소품곡은「Lost in ruins」가 조용히 잇고 있고, "음악에는 레시피가 없다"고 강조한 멤버들의 고른 청취 습성은 무려 덥스텝을 문「Red raven conspiracy」에서 극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먹어가는 '나이'와 '듣는 것'의 확장을 얘기한 바세린은 장르 흡수에 있어 정해놓은 길은 없다며 여유만 되면 포스트록, 심지어 어쿠스틱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랜 벗인 잠비나이와의 긴 협연(「Overture to recomposition」) 역시 밴드의 그러한 열린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콜라보였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사고와 방식을 나는 무조건 지지한다.      

사실 바세린 음악에서 메탈리카(Metallica)느낌은 박진이 있을 때 얼핏설핏 드러났었지만 조민영은 차라리 이번 앨범을『...And justice for all』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그러고 보면 100%는 아니지만 최현진의 베이스 드럼 톤은 살짝 그 시절 라스(Lars Ulrich) 것을 닮아 있기도 하다.) 메탈리카가 블랙앨범(『Metallica』)을 통해 벗어나고자 했던, "난해하고 듣기 버겁지만 탄탄한 구성과 깊이 있는 음악"을 조민영은 새삼 소환한 것이다. 또 3집부터 지향해온 '스토리텔링' 방식 즉, 앨범 한 장을 영화 한 편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배치 역시 의도된 것이다. 강하고 부드럽기를 반복하는 변화의 틀 속에서 확실한 컨셉을 가진 이야기 형식. 그 고민과 고뇌에 맞게 기타 하루, 보컬 하루, 드럼 하루 해서 3일 만에 합주형 원테이크로 녹음을 끝낸 데뷔작과 대척점에 서 새 앨범은(정말 6년까진 아니더라도) 꽤 오랜 시간 작사와 작곡, 편곡에 공을 들인 앨범이라 나는 알고 있다. 가령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들이 즐겨 쓰는 엑스 에프엑스(Axe-Fx) 장비를 써서 디지털한 드라이브감을 내세운 것이나 일반 앰프를 통한 단순한 소리 내기가 아닌, 클린톤으로 먼저 녹음한 기타 소리를 여러 다른 앰프들에 넣어 보다 여러 소리들을 섞어내는 일련의 행위들이 그렇다. 물론 진공관 헤드를 통한 따뜻한 소리를 추구한 것 역시 밴드의 오랜 고민 속에 포함된 의지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할로우 잰, 나인신, 피아, 투마이라스트브레스 같은 언더그라운드 동료들의 참여가 6년 만의 바세린 신작 혹은 신우석의 면도날 같은 샤우팅에 생기를 불어넣어줬음을 인정한다. 더불어 서태지 밴드에서 심심한(?) 드러밍으로 일관했을 최현진의 제대로 된 푸닥거리와 이강토의 합류, 그리고 간접 청취에서 직접 연주로 이어진 밴드 차원에서 장르 허물기가 이번 앨범을 있게 했단 사실 역시 인정(해야)한다. 그렇게「From nothing to infinity」가 다음 앨범을 가늠해볼 수 있는 힌트라도 될 듯 바세린은 이 앨범으로 '루비콘(Rubicon)'을 건넜다. 오랜 준비 기간은 이처럼 오래 갈 '다른' 결과물을 으레 내놓는 법. 바세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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