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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6. 2022

우리 시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국민가수' 박창근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엄마'를 열창 중인 박창근. 그는 이 노래로 최종 우승했다.


엄마, 엄마만 하다 끝나는 노랜데 진짜 잘하더라


어느 날 어머니가 영문 모를 말을 하셨다. 노랫말을 '엄마'로만 쓸 수가 있나. 어머니 말은 반은 맞았다.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국민가수'(이하 국민가수)에서 박창근이라는 가수가 결승곡으로 꺼내 든 '엄마'의 후렴은 정말 엄마, 엄마만 애절하게 반복하다 끝나기 때문이다. 모친 생일 선물 차원에서 '국민가수'에 출연한 박창근은 '엄마'를 불러 엄마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그 무심한 듯 벅찬 기교와 해맑은 슬픔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TV 앞에 있던 사람들 마음까지 모조리 접수하며 박창근을 '국민가수'로 만들었다.


박창근을 몰랐던 사람은 그의 앳된 외모만 보고 재야에 묻혀 있던 신인으로 잘못 알 수도 있다. 하지만 1999년에 데뷔 앨범을 낸 그는 올해로 23년 차 가수다. 나이는 지천명이다. 박창근은 자신의 정규 앨범만 4장을 가지고 있고 듀엣, 밴드로도 활동했다. 김광석의 노래로 꾸민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3년간 주인공 이풍세 역을 맡은 일은 이제 먼 얘기다.


'국민가수'에서 부른 노래들과 이미지로만 보면 박창근은 그저 노래 잘하고 조용한 포크 가수 정도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뚜렷한 자기 세계를 가진 싱어송라이터로 늘 사람과 사회, 그 사이의 공존과 소통을 고민해온 가수였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그를 민중가수로 여기기도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민중을 대중으로 이해해 선동적 민중가요와 자신의 음악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박학기의 아득한 낭만, 루시드폴의 고요한 냉소, 정태춘의 적나라한 분노, 김광석의 애달픈 체념.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를 지향하는 박창근의 노래와 음악은 저것들을 모두 품어 지난 23년 동안 천천히 무르익었다.



그렇게 박창근의 음악은 허무와 상실, 영혼과 실체 사이에서 끊임없이 뒤척였다. 그는 이쪽이냐 저쪽이냐 분명한 경계보단 이쪽저쪽을 오가며 보다 나은 방향을 찾는 쪽을 지향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구분은 지양하는 것이다. 음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과 그 앨범에 수록된 곡 '이런 생각 한 번 어때요?'는 그래서 박창근 예술 세계의 전제다. 그리고 팬데믹을 다룬 '2020 이야기'와 세월호를 담은 '별이 되어 내리네'는 그런 박창근의 예술관에 그대로 부합하는 결과물들이다. 데뷔작 제목을 반反신화(또는 반가치관, Anti Mythos)로 쓴 것도, '우린 어디로 가는 걸까요?'라는 노래를 통해 나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고 얘기한 것도 다 마음을 건드려 마음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자신의 노래를 역할 지으려는 박창근의 의지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창작자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창작자다.


사회파 가수 박창근의 기질이 김광석의 측은지심에서 왔다면 낭만파 가수 박창근의 감성은 타고난 것에 가깝다. 그는 불의 앞에선 핏발을 세우다가도 맑은 하늘을 보면 금세 눈물을 떨구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박창근은 '국민가수'에 나와 "이런 모습으로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래하는 4~5분 안에서 인생을 경험한다며 그 경험을 타인에의 치유로 탈바꿈시킨다. 이해와 소통 대신 뻔뻔함과 불통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박창근의 노래는 그래서 귀하다.


그 시절 때 묻은 책 한 권에 / 인생을 말하고 철학을 논하고 / 사랑과 정의와 고독과 외로운 술 한 잔에 취해버리던 / 그때 우리 안에 불어오던 그 바람은 이젠 어디에


미성이면서 진성으로 솟구치는 박창근의 절창을 새긴 '바람의 기억' 노랫말의 한 토막이다. 짧은 가사 한 줄로 그의 음악이 무엇을 바라고 또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사회와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또는 정의, 그리고 사랑. 박창근은 기타 메고 하모니카 물어 마이크 앞에 선 '가객'이란 이름의 휴머니스트다.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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