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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8. 2022

백전노장 로커의 끈질긴 사자후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


'롤링 스톤'은 인후암과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텨내고 환갑에 이른 데이브 머스테인의 밴드 메가데스 16집을 두고 "이번 음반은 그들의 이정표인 'Peace Sells... But Who's Buying?'과 'Countdown To Extinction'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답습은 아니고 신작은 차라리 메가데스의 진화에 더 가깝다. 새 앨범을 들어보면 데이브는 결코 과거 스타일에 현재를 저당잡힐 생각이 없어보인다. 'Killing Time'의 후렴 하모니나 'Soldier On!'의 셔플 기타 리프에서 5집의 냄새가 묻어나곤 있지만 그건 일종의 팬서비스에 가깝다. 앨범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에 데이브의 전면적 자기복제는 없다. 그저 음악에 대한 자기확신만 있을 뿐이다. 브레이크를 걸어 드럼 솔로를 허락하거나 후반 템포 체인지를 통해 극적인 전개를 노리는 'Life In Hell'의 압도감도, 'Police Truck'으로 진격하는 헤비니스의 근엄한 육질도 그런 자기확신의 파편들이다. 명성의 덧없음을 다룬 'Célebutante'에서 시작해 작품 마지막까지 펼치는 완벽한 긴장감은 그래서 더 놀랍다. 이미 오래전 자타공인의 마스터피스들을 남겼고 6년 전에도 악착같이 마스터피스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냈음에도 또 한 번 이런 수작을 내다니. 이 글은 일단 좀 놀라면서 시작한다.


세르조 레오네의 걸작 스파게티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The Good The Bad The Ugly')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메가데스의 마스코트인 빅 래틀헤드(Vic Rattlehead)가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재킷 아트워크도 마치 그 서부 영화 속 한 장면을 떼어온 듯하다(사실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1994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유명한 영어 동요 'Ring Around The Rosie'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당 동요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중세 흑사병을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이와 관련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데이브는 동요가 가진 무해성과 전염병의 유해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가 마음에 들어 새 앨범의 주제로까지 발전시켰다. 실제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 독백 부분을 닮은 타이틀 트랙의 중반부 내레이션에서 데이브는 장미(Rosie)와 꽃(Posie), 재(Ashes)가 이끄는 동요 가사를 넌지시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 익숙한 멤버가 보이지 않는다. 팀의 원년 멤버 데이비드 엘렙슨이다. 그는 지난 2021년 5월 초 트위터에 노골적인 성 영상이 올라와 촉발된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비틀거렸다. 이후 스캔들은 미성년자 그루밍 혐의로 구체화됐고 데이비드는 결국 밴드에서 퇴출됐다. 그의 자리엔 데스(Death), 테스타먼트 등에서 활약한 베이시스트 스티브 디 조지오가 객원으로 와 녹음을 끝냈다. 머스테인은 스티브를 스카우트 한 일을 과거 메탈리카가 트라우마(Trauma)라는 밴드에서 클리프 버튼을 빼내올 때에 비유했는데, 그만큼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뜻이겠다. 스티브를 향한 데이브의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기타는 전작('Dystopia')에서 함께 한 앙그라(Angra) 출신 키코 루레이로가 계속 맡았다. 그는 리프가 가진 공격성만큼 멜로디에도 신경을 썼다는 머스테인과 멜로딕 리프, 솔로를 현란하게 주고 받으며 2020년대의 메가데스가 1990년대의 메가데스처럼 호흡을 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비록 마티 프리드먼과 데이브만의 곱고 아름답고 근엄했던 화음에는 이르지 못할지언정 굳이 그걸 따라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자신만의 릭을 솎아내는 키코의 플레이에서 되레 또 다른 오리지널리티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주목할 파트는 드럼이다. 데이브가 스튜디오로 초대한 드러머는 다름 아닌 소일워크(Soilwork) 출신의 더크 버뷰런. 그는 2016년부터 소일워크를 떠나 라이브 무대에서 메가데스와 손발을 맞춰온 인물로, 지난 앨범에선 크리스 애들러(램 오브 갓)에게 스틱을 양보했지만 이번엔 본인이 직접 스튜디오 드럼까지 접수해 '메가데스 풀 타임 드러머'로서 면모를 뽐냈다. 데이브 롬바르도(슬레이어)와 진 호글란(테스타먼트)에 영향 받은 그의 플레이는 지미 드그라소, 크리스 애들러에 버금가는 더블 베이스 드러밍의 밀도감('Mission To Mars'의 후반부를 주목하라)을 비롯해 닉 멘자의 바람 같던 콤비네이션, 쨍쨍한 드럼 톤을 모두 머금어 절(verse)과 절 사이를 메우거나 후렴을 다른 분위기로 이끄는 솔로 및 템포 체인징으로 메가데스의 새 앨범에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두 기타리스트가 번갈아 치닫는 불꽃 솔로를 매개로 일사불란하게 전개되는 연주 구성의 중심에는 그런 더크의 샤프하고 스마트한 드러밍이 있다.



90년대부터 영상에 공을 들여온 머스테인은 신작에서도 예외없이 뮤직비디오를 첨부했다. 이번엔 아예 3부작으로 만들었는데 세 영상은 흥미롭게도 팀의 마스코트인 빅 래틀헤드의 기원을 보여준다. 얼마전까지 겪었고 지금도 부분적으로 겪고 있는 팬데믹의 공포를 "완벽한 역병의 길"로서 노래하는 타이틀 트랙('She Wolf'를 닮은 트윈 기타의 장엄한 추신에 귀 기울여보자)을 최종편으로 두고 곡 말미에 굉장한 헤드뱅잉 리프를 숨겨놓은 'We'll Be Back'을 1부로, 래퍼 아이스-티가 함께 한 'Night Stalkers'를 2부로 설정한 이 트릴로지 영상은 전작의 'Conquer Or Die'에서도 손발을 맞춘 라파엘 펜사도(Rafael Pensado, 제작)와 감독 레오 리버티(Leo Liberti)가 머스테인과 머리를 맞대 완성해냈다(라파엘은 극에서 빅을 직접 연기하기도 했다). 곡의 브릿지 격으로 더해진 아이스-티의 랩은 그가 이끄는 헤비메탈 밴드 바디 카운트(Body Count)의 'Civil War'라는 곡에 과거 머스테인이 피처링한 것에 대한 답례성 우정 출연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한 명. 밴 헤일런의 프론트맨으로 유명한 새미 헤이거다. 물론 데이브는 밴 헤일런의 보컬리스트였을 때보다 70년대 하드록 밴드 몬트로스(Montrose)에서 노래하던 새미 또는 솔로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치던 새미를 더 좋아했다. 실제 몬트로스의 'I Got The Fire'를 자신의 애청곡이라고 말한 머스테인은 이번 앨범에선 새미의 과거 솔로 앨범에 있는 'This Planet's On Fire (Burn In Hell)'을 커버했다. 그는 이 녹음을 위해 새미에게 보컬과 기타 일부를 부탁(머스테인은 새미 헤이거를 훌륭한 기타리스트로도 생각한다)했지만, 이미 밴드에 있는 두 명의 슈레더(Shredder)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세미는 결국 마이크만 잡고 데이브를 도왔다. 메가데스식 'Breadfan'이랄까. 예리하고 빠르고 헤비한 커버 버전은 거의 완벽하게 메가데스 16집의 문을 닫아준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근래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가사를 쓰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총격 사건과 인류를 지배하려는 인류에게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이 멈추지 않는  자신 역시 (음악을)멈추지 않으리라 그는 덧붙였다. 악명 높은 원자력 참사 영화를 보고  'Dogs Of Chernobyl' "병보다 나쁜 치료" 마약 중독을 다룬 'Junkie' 그런 정의파 거장 로커의 구체적인 사자후다. 또한  사자후는 '아재록' 운운하며 과거  나가던 밴드들을 구닥다리로 조롱하는 치들을 부끄럽게 만들 예술적 일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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