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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Dec 24. 2022

조지 마이클이 남긴 팝 캐럴의 고전

Wham! 'Last Christmas'


왬!, 정확히는 조지 마이클의 'Last Christmas'는 명실상부 팝 캐럴의 고전이다. 이 노래를 모르는 현대인은 드물며, 설령 몰랐다 해도 한 번 듣게 되면 빠져들지 않는 경우 또한 드물다. 'Last Christmas'는 그만큼 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비트, 멜로디로 무장한 그 자체 이지리스닝 팝의 전형이다.


하지만 노랫말로 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Last Christmas'는 스위스 사스페에 있는 농가 두 채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그리 밝은 노래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 크리스마스에 난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었죠 / 하지만 당신은 바로 다음날 그걸 버렸어요"라는 도입부 겸 후렴 가사가 암시하듯 이 곡은 관계가 무너진 두 사람이 1년 뒤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나는 어색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 다른 특별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줄 거예요." 동요처럼 맑고 순수한 멜로디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울한 코러스 가사는 그럼에도 음악의 압도적인 낙천성에 밀려 이 곡이 세월을 넘어 '행복한 크리스마스 노래'로 끊임없이 울리게 했다.


'Last Christmas'는 조지 마이클의 친가에서 태어났다. 1984년 어느날, 왬!의 나머지 한 명인 앤드루 리즐리와 부모님 댁을 찾은 조지는 식사를 마치고 1층 거실에서 TV를 보던 중 갑자기 자신이 어릴 때 쓰던 2층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거기서 1시간 동안 조지는 'Last Christmas'의 얼개를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매력적인 코러스를 앤드루에게 들려주었다. 앤드루는 조지가 숨겨놓은 금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던 당시를 "경이로운 순간"으로 기억했다. 비록 사랑의 배신을 소재로 할 노래였지만 그 탁월한 멜로디 만큼은 조지 스스로가 표현했듯 "음악적인 연금술" 또는 "크리스마스의 본질"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스케치를 끝냈으니 이제 남은 건 편곡과 녹음. 'Last Christmas' 녹음은 1984년 8월 영국 런던에 있는 애드 비전 스튜디오(Advision Studios)에서 진행됐다. 애드 비전은 플리트우드 맥, 데이비드 보위, 펫 숍 보이스 같은 거물들이 거쳐간 유서깊은 곳이었다. 편곡에는 세 가지 장비, 악기가 필요했다. 몽글몽글 꿈결같은 인트로를 적셔줄 롤랜드 주노-식스티 신시사이저(Roland Juno-60 Synth)와 곡에 활기를 불어넣을 드럼 머신 린드럼(LinnDrum), 그리고 이 곡이 크리스마스 노래라는 걸 요란하게 환기시켜줄 슬레이벨(Sleigh Bell)까지. 하지만 정작 조지 마이클은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손가락 두 세 개로 겨우 연주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함께 작업했던 레코딩 엔지니어 크리스 포터는 회고한다(혹자는 이를 "DIY 프로덕션"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결과물은 훌륭했고 조지 마이클의 천국 같은 솔 보컬은 청량한 신스 코드와 드럼 머신이 펼쳐놓은 음악적 창공을 함박눈처럼 뒤덮었다.



하지만 천하의 조지 마이클에게도 표절 시비가 있었다. 'Last Christmas'는 쿨 앤 더 갱의 'Joanna'와 배리 매닐로우, 카펜터스 등이 부른 'Can’t Smile Without You'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문제는 후자에서 불거졌는데 곡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딕 제임스 뮤직(Dick James Music) 측이 조지 마이클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배리 매닐로우가 직접 걸었다는 얘기도 있다). 결과는 조지 마이클의 승소. 크리스 포터에 따르면 한 음악학자가 'Can’t Smile Without You'와 비슷한 코드 진행, 멜로디를 가진 곡 60개 이상을 제시해준 덕에 소송이 기각됐다고 한다. 또 당시 한 언론에선 'Last Christmas'의 로열티가 모두 아프리카 기근 구제금으로 쓰일 거라는 이유로 소송이 취하됐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팝 역사 한켠에 박제된 포스트-디스코/뉴웨이브 스타일에 불과하겠지만 조지오 모로더의 '손에 손 잡고'가 시대를 매듭 짓던 때 들은 왬!은 꽤 첨단을 달리는 음악이었다. 아직 덜 여문 귀를 가지고 있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팝의 기준이었고 팝을 들어야 할 이유였다. 이젠 세상에 없지만 조지 마이클은 그렇게 나를 팝의 세계로 안내한 거의 첫 번째 사람이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렇게 오랜만에 들어도 그 감동이 여전한 걸 보면 그의 음악도 내 선택도 모두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조지 마이클은 팝이었고 팝은 곧 조지 마이클이었다. 그것은 마이클 조던이 농구였고 펠레가 축구였던 것과 같은 의미였다. 많은 거장들이 세상을 등진 2016년. 그것도 빅 히트곡 ‘Last Christmas’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진 그날에 조지 마이클은 거짓말처럼 자신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과거 왬!, 조지 마이클과 관련해 내가 썼던 글의 일부들이다. 인용문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나에게 팝 음악을 들려준 첫 번째 사람이 조지 마이클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조지 마이클은 2016년 크리스마스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병적으로 달콤하고 냉소적인 차트 상품"이었던 'Last Christmas'는 그런 조지 마이클이 남긴 '1984년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고, 국내에선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와 더불어 범접하기 힘든 성탄절 팝 클래식으로 남았다.



* 글은 졸저 <지금 내게 필요한 멜로디>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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