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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09. 2023

300년만에 파워팝으로 부활한 '사계'

Weezer [SZNZ]


"위저는 2021년 상반기에만 정규작 두 장을 내게 됐다. 1년마다 작품을 낸 일은 수 차례 있었지만 한해에 앨범 두 장은 2019년 이후 두 번째다. 그나마도 2년 전에 나온 두 장 중 한 장은 커버 앨범이었던 만큼 위저의 올해 ‘열일’은 이들 역사에서 전무한 기록이다. 더 놀라운 건 위저의 다음 콘셉트가 ‘춘하추동’이라는 것. 무슨 말이냐면 봄여름가을겨울 각 절기마다 그 계절에 맞는 음악적, 시적 테마를 녹여 앨범을 발매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1년 동안 앨범 4장을 내놓겠다는 건데, 가령 봄의 음악엔 낙천적이고 달달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바르고 가을엔 댄스록으로 작품을 채우겠다는 심산이다. 이미 관련 아이디어가 폴더별로 리버스의 PC에 쌓이고 있다 하니 기대해도 좋겠다. 근래 보여준 팀 추진력과 ’OK Human’의 완성도를 봤을 때 더 그렇다."


2년 전 오케스트라 팝 앨범 'Ok Human'을 듣고 쓴 글의 마지막 문단이다. 그리고 리버스 쿼모(위저의 리더)는 2021년에 이미 90퍼센트 이상 밑그림을 그려두었던 'SZNZ(Seasons)'로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지난해 3월 16일부터 시작해 3개월 단위로 그는 봄여름가을겨울에 관한 미니 앨범 네 장을 모두 내놓은 것이다. 한 가지 첨부할 만한 사실은 리버스가 이번 기획을 위한 폴더들 외 훨씬 많은 아이디어를 PC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7년도까지 거슬러 가야 하는 그 역사는 1500개 MP3 데모 소스에 가지런히 저장돼 있다. 물론 그 탓에 음원은 변주 뒤 중복 발표 되기도 했으니, 'White Album'(2016)의 일본반 보너스 트랙 'Prom Night'가 몽크(Thelonious Monk)의 즉흥 연주를 언급한 'Winter' 앨범의 'Iambic Pentameter'가 된 건 그 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위저는 2년 전 천명한 자신들의 도전이자 약속을 지켰다. 리버스는 평소처럼 매일 아침 스튜디오로 출근하듯 갔고, (알비노니를 인용한 'Sheraton Commander'를 비롯)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파워팝과 파워록의 에너지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위저의 '사계'는 300년 전 이 세계를 먼저 음표에 담은 비발디의 영향을 받았다. 실제 앨범 네 장의 적어도 한 곡 이상에 비발디를 이식한 기타 리프가 있다고 리버스는 얘기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떼로 등장하는 오프닝 곡 'Opening Night'의 행복한 무드는 그 사실을 노골적으로 누설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시작하는 이 지적인 문학의 향기는 또한 제목부터 유명 소설과 같은 지난 작품의 곡 'Grapes of Wrath(분노의 포도)'에서 다룬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 멜빌의 '모비딕', 오웰의 '1984', 헬러의 '캐치-22',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건너와 리버스의 독서 취향까지 유감없이 드러낸다.




위저의 사계절은 음악적으로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녔다. 가령 봄은 어쿠스틱하고 오래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주로 이끄는데 여기엔 리코더, 12현 기타, 만돌린 등이 포함된다. 그것은 봄의 전형적인 소재들, 이를테면 아름답고 마법 같은 숲 속 요정과 생물, 다시 살아나고 태어나거나 춥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일을 다룬다. 한마디로 자기부정을 멀리 하고 순간 속에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봄 파트의 주제다. 상상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Angels on Vacation', "중세를 배경으로 한 어린이 만화 주제가"처럼 들리는 'The Sound of Drums' 같은 곡들이 그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또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도, 밖에 나가 사교적이 되고 싶어도,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도 마음 놓고 하지 못했던 팬데믹 시절 억눌렸던 에너지와 바람(wish)은 'All This Love'라는 곡을 통해 부분으로나마 해소된다.



여름은 'Thank You and Good Night' 마냥 비교적 공격적일 것이라고 리버스는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여름은 'Surf Wax America', 'Island in the Sun', 'Summer Elaine and Drunk Dori', 'Feels Like Summer'를 가진 위저에겐 감당하기 수월한 계절일 듯 보였지만 정작 첫 곡 'Lawn Chair'에서 바이올린을 중심에 둔 비발디 '사계'의 '겨울 2악장'을 가져오며 리버스는 세간의 확신에 찬 예상 앞에서 살짝 꼬리를 내린다. 전체적으로 헤비하고 거친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추구한 여름 앨범엔 리아나와 라나 델 레이, 너바나를 언급한 'Records'와 오래된 벗처럼 편안한 멜로디의 버스(verse)를 자랑하는 'Cuomoville' 등이 수록됐는데, 여기서 전자는 리버스가 다른 작품들에서도 간간이 즐겨온 음악 취향 고백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다.



여름의 열기를 꺾는 가을의 키워드는 밴드가 예고했고 오프닝 트랙 'Can't Dance, Don't Ask Me'도 들려주듯 '댄스록'이다. 정확히는 댄서블 얼트 록으로, '춤추는 록'이라는 분명한 주제가 있으니 레퍼런스는 멀리 갈 것 없이 프란츠 퍼디난드와 스트록스에서 찾으면 된다. 따라서 건조한 톤을 기저에 깔고 신시사이저와 기타를 치받게 하는 몇 차례 상황은 어쩌면 예견된, 당연한 장르적 결론으로 봐야겠다. 'Get Off on the Pain'처럼 힘찬 위저식 기타 사운드에 스민 따뜻한 음향적 위로는 비발디 '사계'의 '겨울 1악장'을 가져온 'Tastes Like Pain'과 제법 긴 여운을 안기는 'Run, Raven, Run'과 함께 불안한 균형을 이루며 앨범이 전제한 계절 속 스산함을 불러낸다. 참고로 제목 'Autumn'은 미국인들이 주로 쓰는 가을(Fall) 대신 글로벌을 염두에 두고 리버스가 내세운 언어적 배려다.



헤비 왈츠 트랙 'I Want a Dog'으로 문을 여는 겨울은 리버스의 말대로 "슬픈 크리스마스 앨범" 같다. 얼터너티브 록에 이어 리버스는 자신이 성장한 90년대 기운을 계속 가져갈 심산처럼 보이는데 이번엔 싱어송라이터다. 그러니까 'Dark Enough to See the Stars'에서 엿보이는 "실존주의적 산문"은 분명 엘리엇 스미스의 그늘 아래 있다는 얘기다. 손가락으로 뜯는(Fingerpicking)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서 계절의 무한 순환을 이끌어내려 한 리버스는 끝 곡 'The Deep and Dreamless Sleep'의 마지막 코드를 봄의 'Opening Night' 첫 코드로 보내며 형식 면에서도 같은 시도를 했다. 그건 마치 'In the Garden of Eden'의 마지막 가사("The end takes you back to the start") 같았고, 그렇게 봄으로 간 겨울 서리는 'A Little Bit of Love'의 노랫말("Now the winter frost is gone") 안에서 그야말로 눈 녹듯 사라진다.


1년 달력을 캔버스 삼아 그려나간 'SZNZ'에는 결국 위저 음악의 정서적 특징(낙관주의, 분노, 불안, 그리고 슬픔)이 모두 담겨 있다. 스트링과 오페라, 클래식과 클래식 록, 두툼하고 파괴적인 위저식 크런치 기타를 곁들인 하드록과 파워팝의 혼합이라는 장르의 거래는 결국 그것의 음악적 배경이다. 그리고 그 안엔 하루 두 시간씩 20년간 해온 리버스의 명상 습관이 알게 모르게 숨 쉬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발전한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보컬 테이크 때마다 테이프를 되감을 필요도, 바이닐 제작을 공장에 주문하고 6개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는 요즘 시대의 환경(버튼을 누르고 녹음하고 업로드하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환경) 말이다.


리버스는 앨범을 낼 때마다 늘 한 곡 정도의 히트곡을 노린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에겐 'The Sound of Drums', 'The Opposite of Me', 'What Happens After You?', 'The One That Got Away'가 그런 곡들이었다. 이 네 곡만으로도 팬들은 쿼모의 마을('Cuomoville')에서 행복한 사계절을 지낼 수 있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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