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Mar 03. 2023

봄(春)을 부르는 러브홀릭의 스완송

*지난해 내놓은 졸저 <지금 내게 필요한 멜로디>에 있는 글들 중 시기에 맞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을까 합니다. 비즈니스적 '홍보'보단 음악과 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공유' 차원에서 받아들여주면 좋겠습니다:)



from 'PART 5 이 계절의 플레이리스트 - CHAPTER 01 봄'



앨범에서 첫 곡과 타이틀 곡의 기싸움(?)을 보고 있으면 가끔 흥미로울 때가 있다. 때로 첫 곡이 타이틀 곡일 때도 있지만 보통 두 곡은 나뉘어 앨범에 실린다. 그렇게 실린 두 곡은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듣는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첫 곡은 곧 시작이니 에누리 없이 거기에 전시되어야 하고, 타이틀 곡은 작품의 초중반이든 꼬리에서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첫 곡은 첫머리여서 집중하게 되고 타이틀 곡은 미는 곡이어서 집중해 듣게 된다.


2006년. 러브홀릭의 세 번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곡과 타이틀 트랙은 분리돼 있었고 두 곡은 모두 듣는 사람을 빨아들였다. 일단 두 노래는 만든 사람이 달랐다. 첫 트랙 '일요일 맑음'은 베이시스트 이재학이, 타이틀 곡 '차라의 숲'은 기타를 멘 강현민이 쓴 작품이었다. 특이점은 첫 곡 바로 다음 곡이 타이틀 곡이었다는 것. 러브홀릭 3집에서 첫 곡과 타이틀 곡은 떨어져 있지 않고 딱 붙어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뭐, 승부라기엔 뭣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차라의 숲'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봄에 어울리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봄의 밝음, 경쾌함이란 점에선 '일요일 맑음'도 만만치 않지만 굳이 '차라의 숲'을 택한 이유는 조금 있다 설명하겠다. 그보다 이 노래를 살피기 전 먼저 살펴야 할 사람이 둘 있다. 바로 '차라의 숲'을 부른 지선과 이 노래를 만든 강현민이다. 물론 94년부터 2000년까지 퍼즈(Puz), 뉴푸른하늘, 코끼리, 리버풀 네 밴드를 거치며 실력을 쌓은 이재학 역시 강현민과 장군 멍군 식으로 좋은 곡들을 써 러브홀릭에 남겼으나(지선이 ‘싱어게인’에서 부른 러브홀릭의 'Loveholic'도 이재학의 곡이다) 이 챕터에선 챕터에 든 곡을 쓴 강현민에 좀 더 초점을 맞추려 한다.



강현민은 1989년 5인조 보컬그룹 '아침'의 멤버로 강변가요제에 나가 입상, 대중음악계에 첫 발을 딛었다. 3년 뒤엔 3회째 열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받아 구체적인 음악 방향을 가늠한 그는 이듬해 아침의 멤버였던 정구련, 나들(박영열)과 함께 일기예보를 결성해 활동한다. 나중에 지선이 다시 부르는 '그대만 있다면', '인형의 꿈'을 비롯해 'Beautiful Girl', '좋아 좋아' 같은 히트곡들을 가진 일기예보는 1999년 5집까지 발매하며 잔잔하지만 구체적인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단, 정구련은 2집까지만 참여했고 3집부턴 강현민과 나들의 듀오 체제로 갔다. 이후 솔로 앨범도 발표한 강현민은 일기예보와 러브홀릭을 거쳐 브릭(Brick)이라는 록 밴드를 만들기도 했는데 결성 때 비전과 달리 압도적인 결과물을 들려주진 못했다. 스스로 "가수나 연주자라기 보단 작곡가에 가깝다"고 못을 박은 강현민의 음악 행보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상은 역시 러브홀릭 시절에 내놓은 앨범 3장, 그리고 박혜경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에게 준 노래들에서 빛났다.


비범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렇듯 강현민도 가수와 음악을 대할 때 자기 기준이 확고한 편이다. 가령 그는 "유려하고 매끈하게 노래를 너무 잘하는 사람은 조금 꺼려"하는 편인데, 이소라에게 'Tears'를, 신효범에게 '너의 의미'를 준 그가 더더밴드 출신의 박혜경에게 유난히 많은 곡들('고백', '후회',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등)을 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혜경에겐 노래를 잘 하면서도 "약간 거칠고 매끈하지 않은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강현민은 무려 15년 동안 비틀스의 폴 맥카트니와 미국 하드록 밴드 에어로스미스만 들으며 영감을 얻은 적도 있는데 이는 "우울한 로맨틱"쯤으로 자체 진단하는 그의 음악 색깔이 얕고 넓은 헤비리스닝이 아닌 선택과 집중형 음악 감상에서 나온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강현민이 작곡한 '차라의 ' 노랫말은 지선이 직접 썼다. 차라의 . 알려진 대로라면 이곳은 지선이 유년기부터 반복해  꿈에 등장한 낙원이며, 이루지 못할 사랑도 완성할  있는 환상의 숲이다. 뮤지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력이라고 말한 지선은 과거 인터뷰에서 "음악은 스스로의 얘기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슬픔이건 기쁨이건 그러면서 자연스레 관객의 마음과 소통하는 "이라고 했다. '차라의 ' 저러한 지선의 음악 철학에 정확히 어울리는 것으로, 특히 "기적을 시작하는 " "세상 너머에서 우릴 기다릴 영원함"이라는 가사는 우리에게 '시작과 영원' 느끼게 하는 봄을 그대로 닮아 있다.


지선은 박혜경을 이상적인 보컬리스트로 생각하는 작곡가 강현민에겐 딱 맞는 옷같은 존재였다(러브홀릭 데뷔작에 실린 '슬픈 영화'를 들어보자). 하지만 오래 갈 것 같던 지선과 러브홀릭은 생각보다 롱런 하지 못했다. 이유는 지선에게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두 송라이터(이재학과 강현민)의 음악을 스스로 잘 표현해내고 있는가에 자신이 없다는 얘기였다. 3집까지 일관된 인기를 얻으며 자우림, 롤러코스터와 함께 메이저급 반향을 일으킨 러브홀릭의 인기 뒤엔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긴 지선의 남모를 좌절이 있었던 것이다. 강현민과 이재학은 아쉽지만 지선의 뜻을 받아들였고 그의 앞날을 응원해주며 팀은 평화적으로 와해되었다. 이는 마치 그들의 곡 '너의 앞길에 햇살만 가득하길'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강현민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하다가도 노래가 흘러나오면 손을 놓게 되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말한 적이 있다. "10년 후에도 젊음의 숨소리가 들리는 음악, 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던 그였다. 그리고 이재학은 러브홀릭을 "처음 시작한 멜로디를 비껴가 또 다른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밴드라고 자평했다. '차라의 숲'은 강현민이 하고자 했던 음악, 이재학이 생각한 러브홀릭을 가장 적절히 대변해준 밴드의 스완송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이라는 구체적인 아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