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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13. 2023

팬심으로 만든 RM 'Closer' 뮤직비디오

'보는 음악'을 유행시킨 엠티비(MTV)가 등장하고 42년이 지난 오늘날, 음악가들에게 뮤직비디오는 선택보단 필수에 가까운 무엇이 되었다. 검색마저 이미지로 통하는 시대에 대중에게 나를, 나의 곡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선 말이나 글보다 짜릿한 영상 하나가 훨씬 득이 된다. 특히 아이돌 그룹에게 그것은 퍼포먼스와 외모 등 이미지로서만 증명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릇이기에 더 중요하다. 오죽하면 데뷔 자체를 뮤직비디오로 하는 걸그룹이 나왔을까.


물론 같은 목적을 지닌 뮤직비디오들도 제작 배경에선 조금씩 다르다. 가장 흔한 건 역시 새로 나온 곡을 위한 오리지널 영상일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영화와 관련한 뮤직비디오 세계로 가면 양상은 좀 더 복잡해진다. 예컨대 해당 영화의 주제가에 영화 장면을 녹이는 뮤직비디오는 요즘도 자주 쓰는 마케팅 기법이다. 꼭 주제가가 아니더라도 개봉에 앞서 영화가 지닌 느낌, 기운을 전하기 위해 예고편 형식으로 특정 노래와 연계시킨 영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 이미 나온 지 오래된 영화를 뒤늦게 보고 영감을 얻어 지은 곡을 그 영화 장면과 교차 편집해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도 있고, 아예 따로 제작된 음악과 영화가 뒤늦게 만나 마치 처음부터 의도한 듯한 '케미'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첫 번째 경우는 지옥의 타이타닉호를 천국으로 이끈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이 해당될 것이다. 두 번째는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은 러브홀릭의 '일요일 맑음'이, 세 번째는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가 1971년 직접 메가폰까지 잡은 반전 영화 '자니, 총을 얻다'를 보고 곡을 쓴 메탈리카의 'One' 뮤직비디오가 좋은 예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경우엔 영화 '윤희에게'와 '미나리'에 더 깊은 해석의 여지를 준 새소년의 '눈'과 '자유'의 콜라보 영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얼마 전 BTS의 RM도 이 세계에 동참했다. 정확히는 새소년이 했던 것과 비슷한 시도, 즉 따로 만든 작품이 뮤직비디오로 하나 되는 순간이다. 이를 위해 RM이 택한 곡은 2022년 연말 발표한 솔로 앨범에 실은 'Closer', 이 곡이 손짓한 영상은 그보다 5개월 여 앞서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하나 더, 이 작업이 특별한 이유라면 RM의 팬심이 더해졌다는 것인데, 그는 최근까지 '헤어질 결심'을 8차례 관람한 뒤 영화에 나온 위스키를 직접 사서 마셨고 각본집까지 구입해 편집된 장면들을 음미한 뒤 산행하며 그 대사를 읊조리는 데까지 관심을 뻗었다. 그는 영화가 남긴 긴 여운에서 헤어나지 못해 스스로가 해준(박해일)이 되고 서래(탕웨이)가 되고 안개로 변해 핸드폰과 망원경을 감쌌다. 무엇보다 가수의 음색을 시각화한 듯한 영상의 색은 RM이 뮤직비디오에까지 이 영화를 데려가야 할 결정적 명분이 돼주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밀어내야 하는 사랑의 덫에 걸린 해준과 서래의 대사로 'Closer'의 뮤직비디오는 시작된다. 이 아슬아슬한 밀당의 순간들, 두 사람 사이를 지탱하는 두근거리는 시선을 축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3분 30초를 제법 숨 가쁘게 흘러간다. 흥미로운 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노래와 영상이 마치 처음부터 의도한 것처럼 맞물려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몽롱한 곡의 속성을 닮은 어항 속 도망 다니는 물고기들의 인연. 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관계의 절박함을 모티프로 한 'Closer'의 주제는 "가장 가까운 순간에도 너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슬픈 고백으로 시작해 "왜 내 인생에 나타났느냐"는 원망으로 이어지며 필름에서 가져온 극적인 전개와 위화감 없이 섞인다.



처음 RM은 무드를 강조하는 영화에 만연체 내러티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벌스(verse) 보컬 전체를 들어내려고도 했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원작 내용에 구구절절 어울린 탓에 기존 노랫말은 그대로 드러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신 고전 멜로물을 지향한 영화 속 뿌연 여운에 살짝 어슷한 느낌을 주는 트렌디 알앤비는 사운드 자체를 로파이하게 다듬으면서 담담한 균형을 이뤘다. 여담으로 RM이 이 뮤직비디오를 위해 염두에 두었던 또 다른 곡이 있었으니 같은 앨범의 'Change pt.2'였다. 해당 곡은 습한 분위기 차원에서 분명 '헤어질 결심'과 맞았지만 RM은 "거기에 머물러 줘(Stay Where You Are)"라는 'Closer'의 후렴구가 영화와 더 가깝다고 판단해 우리가 아는 최종 결과물을 내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변하는(change) 사랑 대신 머무는(stay) 사랑이란 측면에서 '헤어질 결심'엔 'Change pt.2'보단 'Closer'가 더 적합해 보였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지배하는 청록색을 "바다와 산의 색"이라고 말했다. 바다는 빛에 따라, 산은 거리에 따라 파랑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Closer'의 가사를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삼원색 속에 있는 널 보고 있어(I See You in Red, Blue, Green)". RM과 박찬욱, 'Closer'와 '헤어질 결심'의 콜라보는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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