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Mar 15. 2023

최소로 최고를 노리는 장기하식 미니멀리즘

이 글은 오운문화재단 <살맛나는세상> 141호(2023년 3-4월)에도 실렸습니다.


많이 가져야 부자인 시대는 지났다. 가진 것 덜해도 마음이 편해야 부자다. 그런 내면의 평화는 물질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온다. 바로 법정 스님이 생전에 강조한 '무소유'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무소유라고 하니 당장 모든 걸 버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니다. 키우던 난을 통해 집착이 괴로움이란 걸 깨달은 스님이 말하고자 한 바는 사물이란 본래 공허한 것(本來無一物)이므로 그저 조금 덜 가지려 노력하고 조금씩 덜 가지며 살라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취하자는 것. 그것이 무소유의 참뜻이다.


요즘 시대에 무소유란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로 통용된다.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없어도 되는 건 버리면서 되도록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 유행하며 쓰이기 시작한 표현이다. 미니멀 라이프에서 미니멀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줄인말로 원래는 미술 용어였다. 기교나 장식보단 의미와 공간에 무게를 두는 이 개념은 음악을 비롯한 타 예술 분야와 일상 문화에까지 스며들어 조용히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화두로서 자리매김 했다.


지난해 2월 22일. 장기하라는 뮤지션이 재미있는 미니앨범 한 장을 냈다. 납작한 종이 재질로 발매된 이 앨범은 줄곧 밴드 형태로 음악을 해온 그가 가장 단순한 편성으로 만든 소리를 담고 있었다. 본인에 따르면 "바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멍하게 만든 뒤 떠오른 문장과 생각들"에서 그 느슨한 음악은 시작됐다. 그러고 보면 반주 없이 녹음한 목소리에 최소한의 소리만 붙여 빚어낸 그것은 형식과 표현 방식의 정도만 다를 뿐, 15년 전 장기하의 데뷔작 '싸구려 커피'의 미니멀 스타일을 방불케 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장기하의 음악이 화성, 선율, 리듬이라는 음악 요소를 최소로 사용한다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고유한 정의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음악'으로' 생각한다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가 "단, 거기에 언어는 끼어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반대로 장기하의 음악은 그 언어를 전제한 미니멀리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대음악의 미니멀리즘과 대중음악의 미니멀리즘은 '더 적게, 더 좋게(less but better)'라는 같은 모토를 지향하는 만큼 양측이 품으려는 가치는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무소유로서 비슷하다 볼 수 있다.


2022년에 낸 장기하의 앨범 제목은 다름아닌 '공중부양'. 무엇과도 접촉 없이 중력에 대항해 허공에 떠오른다는 개념이다. 물질을 줄이고 내면의 풍성함을 지향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이만큼 어울리는 선언이 또 있을까. 장기하는 이 선언과 함께 2023년 현재 대중음악 미니멀리스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추천곡


'느리게 걷자' (2008, 주식회사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물질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데서만 성취되는 건 아닐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걷는 속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느리게 걸으며 시간에도 풍요로움을 주는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인 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TV를 봤네' (2011, 주식회사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장기하 음악의 미니멀리즘은 김창완(산울림)식 일상 속 생각 뭉치를 배철수식 헐렁한 창법으로 아무렇지 않게 풀어낼 때 종종 형성된다. 듣는 순간만큼은 "도대체 만사 걱정이 없"어지는 이 노래도 그렇다. 이 노래에서 중요한 건 TV를 본 행위가 아니다. 중요한 건 TV 앞에서 멍한 상태로 화자가 맛본 작은 평화다.



'아무도 필요 없다' (2018, 주식회사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선 집착에서 멀어져야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계의 정리는 때로 삶의 군살을 빼는데 결정적 자극이 되어줄 수 있다. 마치 보컬, 일렉트릭 피아노, 멜로트론만으로 엮어낸 이 곡의 단순한 편성처럼.



'부럽지가 않어' (2022,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최소한의 삶에서 가장 거리를 두어야 할 상황은 '남과의 비교'다. 나를 남과 비교하면 자연스레 우열이 생기고 그 뜻하지 않은 계급 의식은 결국 시기, 질투의 감정을 낳는다. 물리적인 미니멀리즘만으론 만족스러운 내면의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중요한 건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1. 한국형 시티팝의 시작이자 완성, 김현철

매거진의 이전글 팬심으로 만든 RM 'Closer' 뮤직비디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