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거대한 진혼가
2014년 4월16일, 진도군 관매도 부근 맹골 수도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할 수 있는 안전 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부실하고 또 무책임한 것이었는지를 낱낱이 보여준 사고였다. 무려 295명이 바다에 묻혔음에도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에다 정부와 국민 사이 고장난 소통은 버젓한 일상이 되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 아직 잠들지 못하고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을 아홉 영혼. 2년이 지났지만 기억은 망각을 이겨내고 기어이 그들, 그리고 우리 앞에 선다.
어이없이 누락된 청춘들의 억울함을 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만 지금, 그들을 위한 진혼가를 CD 두 장에 담아 온 팀이 있어 여기 소개하려 한다. 음악의 힘은 언제나, 또 그렇게 떠난 자와 남은 자들 사이에서 발휘되던 것이기에 나는 이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잊지 말자’는 다짐이 모두의 다짐으로 번지길 기대해본다. 팀 이름은 줄리아 드림(Julia Dream), 앨범 제목은 ‘불안의 세계’이다.
아주 오랜 옛날, 바다를 가진 여왕의 섬 ‘끝’이 있었다. 모든 걸 가지고 누리던 여왕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을 누르고 부수었다. 만선을 꿈꾸며 여왕에게 올린 아비의 기도는 “정신 나간 형제”와 “목을 맨 누이”에겐 사치요 기만이었고, 예정된 패배였다. 또한 습관처럼 고개를 드는 감시와 처벌이 모든 섬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억누를 때, ‘불안’은 엄습했고 슬픔은 그야말로 ‘세계’가 되었다. 떨쳐내지 못해 무서운, 이 냉혹한 가치에 던지는 의문. 줄리아 드림의 첫 정규 앨범은 바로 거기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은 세월호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여왕의 손아귀에 있는 ‘바다’는 ‘맹골 수도’요, 여왕이 통치하는 ‘끝’은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곳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본작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고 또한 아주 느긋하게 선동적이다. 박준형의 기타는 여전히 데이빗 길모어를(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떠올리게 하고, 손병규의 베이스와 염상훈의 드럼은 때론 육중하게 때론 봄바람처럼 감미롭게 박준형의 기타와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한다. ‘반복과 차용’에 휩싸인 멜로디와 리프,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그 아래를 힘 있게 받쳐주는 고전의 지혜와도 같다.
CD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더블 앨범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 장은 사고로 으깨진 섬사람(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사연을, 나머지 한 장은 그 피눈물이 분노로 달궈진 뒤 따뜻한 구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다루었다. 그래서 첫 장은 다소 느리고 웅장한 반면(‘만선’), 둘째 장은 거칠고 헤비하다(‘Casus Belli’). 로로스나 아이러닉 휴의 쓸쓸한 포스트록 정서가 때때로 비치는가 하면, 핑크 플로이드의 광활한 절망도 행여나 비었을 공간들에 기름처럼 스며있다.(‘망각의 정오’) 특히 ‘망자의 바다’는 줄리아 드림이 해석한 ‘Exit music(라디오헤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월호가 바다에 잠겼던 그 해, 데뷔 싱글 ‘Lay It Down On Me’로 세상에 나왔던 줄리아 드림. ‘불안의 세계’는 역설적이게도 줄리아 드림의 ‘불안하지 않은 미래’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가령 대곡들과 소품곡들의 똑똑한 안배,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이야기 구조는 작품성에 대중성(‘꿈 속에 있네’)까지 잡은 이 앨범의 척추와 같고, 멀리 시애틀까지 가서 행한 믹싱과 공들인 마스터링 수준은 이 음반의 심장과 같다. 물론 격정과 안정 속에서 듣는 이들을 흥분케 하는 이들(그리고 몇몇 지인 뮤지션들) 연주의 파상공세는 본작의 두뇌일 것이다. 모든 것이 이 무모한 더블 앨범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이유들이다.
얼마 전 한국대중음악상 ‘록’ 분과장인 동료 평론가와 나는 같은 고민에 빠졌었다. 올해는 국내에 유난히 좋은 록 앨범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4월인데 방백과 텔레플라이, 전범선과 양반들에 못(Mot), 그리고 줄리아 드림의 ‘불안의 세계’까지, 수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할 판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줄리아 드림의 정규 데뷔작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고, 그 예감이 틀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좋은 음악들과 함께 행복한 201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