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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27. 2023

스웨이드 보컬이 펴낸 '실패의 기록'


1990년대 중반, 'Coming Up'으로 스웨이드를 좋아하게 됐다. 이미 그들의 1, 2집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10대 후반이던 내가 'The Big Time'의 트럼펫 연주에 엉긴 고독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패할 뻔한 스웨이드와의 인연은 동네 레코드 가게 점원 누나를 통해 재개되었고, 그렇게 소개받은 'Coming Up'은 앨범 제목처럼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첫 곡 'Trash'가 터져 나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멜로디와 비트 모두가 황홀하리만치 화창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던 "우린 모두 쓰레기"라는 가사는 분명 괴이했는데, 누군가의 표현처럼 거기엔 "낭만적이고 배덕적인 몽상"이 있었다. 스웨이드 음악은 결국 숙취와 도취의 질긴 뒤척임이자 일상과 환상의 은밀한 거래, 나아가 아름다움을 매개로 한 불안과 슬픔의 연대였다.


'칠흑 같은 아침'은 그런 스웨이드의 프런트맨 브렛 앤더슨이 쓴 회고록이다. 총 10장으로 이뤄진 책은 내가 처음 스웨이드를 듣고 느낀 정서적 모순, 감정의 역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그 기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러니까 스웨이드와 브릿팝이라는 현상이 폭발하기 직전('스웨이드'라는 이름은 7장 끝에서야 처음 나온다), 즉 인간 또는 아티스트로서 미숙하고 불안했던 저자, "틀림없는 하위계층"으로서 그가 겪은 궁핍한 환경과 상황,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음악과 그 사이 머물거나 떠나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중반에 만난 'Trash'의 황홀한 바이브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령 브렛이 지닌 작사가로서 문학성과 멜로디 메이커로서 음악성은 조니 미첼과 롤링 스톤스를 들으며 소설을 탐독한 모친과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엘가, 쇼팽을 즐긴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리란 걸 우린 작가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에 브렛의 대중음악 취향이 "육욕적이고 원초적인 비명"을 머금은 섹스 피스톨스의 펑크에서 싹을 틔워 "나약함, 실패, 고된 현실"을 역동적인 송라이팅에 얹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준 스미스(The Smiths)에서 만개했다는 것도 '칠흑 같은 아침'은 곁들여 보여준다.


또 하나 브렛의 창작론 및 스웨이드의 몇몇 곡들 제목과 가사에 얽힌 이야기는 특히 이들을 좋아해 온 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법한데 예를 들어 브렛이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발견한 사실(대부분 예술의 본질은 사랑이야기라는 것)을 자신의 송라이팅에 적용한다는 사실이나, 'She's Not Dead'라는 곡이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차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브렛의 이모를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은 그 예다.



이렇게 사물과 현상을 완벽한 자신만의 관점으로 풀 줄 아는 브렛의 수채화 같은 문체는 스스로가 평론가이자 음악 애호가, 스웨이드와 브릿팝 팬인 이경준의 번역을 만나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 적임자를 놓친 번역은 원문을 왜곡 훼손 시키게 마련인 반면, 임자를 제대로 만난 번역문은 그 자체 새로운 창작물로서 원작을 빛낸다는 걸 이 책은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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