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2008)
이 영화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나보내는 영화다. 개봉 당시 80세가 된 그는 더이상 '노쇠한 복서'로서 링 위에 머물기가 민망하고 버거웠다. 그의 자린 이제 카메라 앞이 아니라 카메라 뒤다. 여든 살 노배우를 위한 각본은 더는 없다. 영화에서 죽은 이스트우드는 배우 이스트우드, 그 자신이다.
시대와 세대, 인종과 화해라는 주제는 <퍼펙트 월드>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한국전쟁에서 13명의 피를 맛본 그는 동시에 '용서받지 못한 자'다. 이토록 고요하고 유머스런, 그러면서 감동적인 전쟁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절제된 전쟁 비판, 나아가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사과를 우리가 언제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여담이지만,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미스터 코왈스키의 갈등은 분명 <용서받지 못한 자>와 <미스틱 리버>의 연장선에 있다.
각본을 보고 그대로 꽂힌 이스트우드는 배우로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그랜 토리노>로 정했다. 시작과 끝이 같은 인간의 삶은 의미가 없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며 정신적으로 변화해가는 사람 이야기를 이스트우드는 좋아한다. 늙음으로써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유니크한 부분이다. 그가 부른 마지막 재즈는 슬프지만 그래서 미소지을 수 있다. 그랜 토리노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타오는 한 없이 자유롭다. 그렇게, 이 영화로 우린 비로소 삶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살아 있음을 즐길 수 없을 때가 오면, 그 때 단념하면 된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