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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20. 2016

위플래쉬(Whiplash)

데이미언 셔젤(2015)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걸즈>는 일본 시골을 무대로 그야말로 잔잔하게 아마추어리즘으로 '스윙'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데이미언 셔젤의 <위플래쉬>는 다르다.  


암흑 속에서 짧은 파라디들로 인트로를 달군 뒤 주인공 앤드류의 드럼 솔로 신에 카메라 트래킹이 가해질 때 이 영화의 지향점은 분명해진다. 버디 리치를 숭배하는 재즈 드러머 지망생은 그렇게 시작부터 열정의 광기를 드럼킷 위에 쏟아붓고 있었다. 


광기와 열정은 사실 이 영화의 핵심 정서다. 그리고 두 정서는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의지 아래서 비로소 솟아난다. 자신만의 찰리 파커를 찾아 헤매던 교사 테렌스 플레처의 난무하는 육두문자가 그랬다. 폭군 같은 성향 때문에 자신의 제자들이 정말로 심리적 압박을 받았는지, 그래서 그 중 한 명이 자살에까지 이르렀는지 영화에선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지만 그건 어쨌든 선생의 광기 어린 욕심에서 비롯된 비극임엔 틀림없다. 거기에 처음엔 짓눌리는 듯 싶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더 미쳐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드럼에 피를 쏟아내며 연주를 하는 앤드류 네이먼이 있다. 그는 최고 드러머가 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이 먼저 대시한 여자친구까지 서슴없이 차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세속의 일반적 관점, 누구나 아는 도덕적 잣대를 이 영화에 갖다 대려 하진 말자. 후안 티졸과 듀크 엘링튼의 스탠다드 ‘Caravan’에 취하기도 바쁜 이 영화에서 그런 고리타분한 시선은 ‘채찍질’이라는 화끈한 영화 제목과도 어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 영화는 광기와 열정이 노력으로 수렴되면 어떤 기적이 펼쳐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성룡의 <취권>처럼, 마른 모래에 주먹이 까지고 화롯불에 손이 데어도 노력 또 노력하면 결국 사부의 복수를 해내는 무림고수가 된다는 바로 그 뻔한 결말. 뻔하지만 여전히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오래된 플롯. 북피를 찢으면서 자신의 느려터진 스틱킹에 저주를 퍼붓던 앤드류가 비로소 진 크루파가 되는 결말은 그래서 익숙하다. 상영 내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 버디 리치의 숨가쁜 타임키핑은 아마도 그 결말을 향한 질주였으리라.  


살면서 나도 저렇게 피터지게 노력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직은 없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다시 물어봐도 피투성이 손을 얼음물에 담가가며 빠르기 400 스윙 리듬을 연습한 정도로 무엇에 미쳤던 적은 여태까진 없었다.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이다. 질문과 숙제를 던지지 않는 영화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플래쉬>는 그래서 좋았다. ‘스윙’이라는 공통분모만 빼면 전혀 다른 느낌의 <스윙걸즈>와 닮은 부분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나갈 그 무엇. 이 영화는 그것을 어서 찾아내라고 다그쳤다. 더블 타임 스윙을 쳐내라는 테렌스 플레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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