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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10. 2023

한글 '사투리 랩'의 쾌거

'무까끼하이' 엠씨 메타와 디제이 렉스


국립국어원 한국어 어문 규범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다. 그리고 우리네 어문 규정에서 사투리란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이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다. 여기엔 은근한 계급의식이 깔려 있다. 바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표준말은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뉘앙스다. 실제 표준어인 서울말은 지방 사람들이 학원 가서 돈 주면서도 배우는데 사투리를 배우려 굳이 지갑을 여는 (서울) 사람은 없다. 흔히 사투리는 "교양 있는 서울말을 쓰는" 사람들이 남을 웃기려고 할 때나 남들이 자신을 웃길 때 쓰는 것쯤으로 치부된다. 영화에서 말보다 주먹을 먼저 내세우는 건달이 사투리를 쓰게끔 설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친구들과 있을 땐 사투리를 쓰다가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식은땀 흘려가며 '표준어'를 쓰려는 지역 출신 사람들의 쓸데없는 위축감은 이 이상한 말의 위계에 따른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지금 한국에서 서울말은 잘 나가는 메인스트림이고 사투리는 고전하는 언어의 언더그라운드다.


"고마 됐으요 / 뭐가 문젠교 / 고마 그냥 놔 두이소 / 모하며 열지 말고 그마 꾹 닫아 두이소 / 엄한 다리 잡지 말고 혼자 말아 무이소 / 그래도 할라마 차라리 날 잡아 무이소 / 내가 캤지요 되도 안한기 뭣도 안하이 / 말아무이마이 말이 마이 나오이 / 고마 가 옆에 가가 뭐 가갈 기 있나 / 디비 바바도 없단 거 알아 무이소"


'무까끼하이'의 도입부다. '무까끼하이'란 경북 지역 방언으로 '무식하게(융통성 없이) 밀어붙이다'라는 뜻이다. 제목에서 '무식'이 나오는 곡이 '사투리 쓰면 무식해 보인다'는 사회의 암묵적 편견을 으깨버리는 것이 묘하게 통쾌하다. 곡의 랩 가사를 쓴 사람은 엠씨 메타. 가리온의 멤버로 유명한 국힙(한국 힙합) 1세대 아이콘이다. 그는 실제 서울 생활을 하며 "언어 탄압"을 받은 적이 있는데 사연은 대략 이렇다.


엠씨 메타가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였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는데 경상도(대구) 사투리로 말을 하니 듣고 있던 교수가 "네가 그렇게 하면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는 거다. 그러니까 말투를 바꿔라, 고쳐라"라고 했단다. 무안을 당한 그는 그러나 "랩은 자기 게임이고, 자기 것을 드러내고, 자기 고백이고, 모든 게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게 시작점인데" 왜 사투리를 감추고 말투를 바꾸고 살아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나는 왜 사투리로 랩을 안 했을까?’ 가리온의 '거짓'에서 그는 처음 대구 사투리로 씨를 뿌렸고 '무까끼하이'에서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나 세상은  곡에 '최초의 제대로  사투리 '이라는 평가를 하면서도 "하지만 우습지 않은"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저들은 애초에 사투리 랩은 우스울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곡을 틀었다는 얘기다. 엠씨 메타가 사투리 랩을 진지하게 고찰할 그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사투리란 여전히 "웃긴" 무엇이었다.


2011년. 엠씨 메타는 디제이 렉스(DJ WRECKX)와 프로젝트 힙합 듀오 메타와 렉스(META X WRECKX)를 결성했다. 둘은 그해 5월부터 디지털 싱글을 꾸준히 냈고 같은 해 9월 몇 곡을 더해 정규작 'DJ AND MC'를 발표했다. 엠씨 메타가 스튜디오에서 한 번에 써 내려간 '무까끼하이'는 거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곡은 "음악을 미끼로 사기 치는 이 바닥 기생충들"에게 보내는 서슬 퍼런 경고장이 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뭐어? 니가 나를 가르쳐? / 새우젓같이 쩔데 니 아는 척? (...) 콩알 반쪽도 모르매 니는 뭐? / 이름값 올리고 회사 키운 거? / 바닥 치던 시절 싹 다 잊은 거? / 다 쳐무라 니 혼자 잘 키운 거!"


말투에서부터 현실감과 현장감으로 무장한 '무까끼하이'는 사투리만 들으면 웃기부터 하려는 자들에게 '그 입 다물라'는 한글 랩의 쾌거였다. 어느 책에서 엠씨 메타는 자신을 "힙합의 길을 걷는 구도자"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가 힙합에서 얻은 구원과 깨달음이 바로 이 곡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제 발표하며 사투리 쓴다고 면박 주던 그 '교수님'은 과연 이 곡을 들었을까. 그의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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