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Nov 06. 2023

'글로벌 팝스타' 입지 굳히기 나선 정국의 야심작

[Golden] 정국


커버 사진을 본다. 진녹색 바탕 위 검은 자켓을 입은 채 입술 오른쪽 끝에 피어싱을 한 정국이 카메라를 향해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태권도, 축구, 배드민턴까지 소화한 초등학생 시절이 스치는 시스루 뒤 복근 정중앙에 이 앨범의 주인 이름과 문양이 금색으로 찍혀 있고, 머리 위로는 앨범 제목 'Golden'이 마찬가지 색깔로 떠 있다. 잡지 표지 같은 이 작품의 제목은 과거 RM이 랩과 춤, 노래를 다 잘한다는 이유로 정국에게 붙여준 별명(황금 막내=Golden Maknae)을 반영한 것이다. 중학생 때 '슈퍼스타K'에 나가 2AM의 '이 노래'를 부르다 목이 갈라져 2차 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그에게 일곱 개 기획사가 관심을 보인 건 이젠 전설이 된 일. 정국은 자신에게 별명을 준 RM이 랩 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 여섯 개 기획사들의 제안을 고사, 빅히트를 최종 둥지로 선택했다.  


흔히 사람들이 80년대와 2000년대는 멀게 느끼면서 2000년대와 2020년대는 가깝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두 시대는 똑같은 20년 차이다. 즉, 이제 2000년대는 아주 먼 옛날이란 얘기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팝 차트를 지배했던 2000년대 스타일을 인용한 정국의 최근 싱글 '3D'는 그래서 복고 감성을 재연한 곡이었다. 정국은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발음, 가사 내용과 느낌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그는 이 싱글을 두고 "혼자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 지를 시험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정국이 홀로 내는 첫 번째 앨범 'Golden'의 타이틀 곡 'Standing Next to You'는 그 시험을 잇는 두 번째 복고 감성이다. 증거는 도처에 넘친다. 직관적인 모타운 그루브, 10년 전 다프트 펑크가 감행해 그래미 어워드를 초토화 시킨 끈적하고 풍부한 베이스 볼륨, 심지어 정국의 노래와 춤은 그 화려했던 마이클 잭슨의 창법과 안무를 가감없이 차용했다. 사랑받던 팀의 '막내'가 어른으로서 '독립'을 선언하는 듯 한껏 성숙해진 뮤직비디오 속 그를 보고 있으면 연습생 시절 "춤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방시혁의 지적은 마치 먼 옛날 이야기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정국은 오래 전부터 저스틴 비버의 'Boyfriend', 'Nothing Like Us' 등을 애창 했다. 물론 비버가 BTS 팬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흠모하는 정국과 저스틴 비버. 디제이 트리오 메이저 레이저가 피처링 한 'Closer to You'와 어쿠스틱 기타 팝 'Too Sad to Dance'를 통해 정국은 그 훈훈한 관계를 음악으로 남겼다. <가디언>지가 썼듯 전자는 비버의 트로피컬 하우스 곡 'Sorry'를 닮은 한편, 후자는 뮤직비디오만 17억 회 이상 조회된 비버의 'Love Yourself'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Love Yourself' 송라이팅에 참여한 에드 시런은 버스(verse)의 스타카토 창법에서 마룬 파이브가 생각나는 정국의 'Yes or No'에 피처링 하고 있다(정국은 애덤 르빈의 'Lost Stars'도 커버 한 적이 있다). 단 두 곡에서 글로벌 팝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아이콘들이 따로 또 같이 어울리고 있는 셈이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영리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지난 7월 발매해 스포티파이 최단기간 10억 스트리밍을 달성한 싱글 'Seven'과 두 달 뒤 발표해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은 '3D'를 앞세워 앨범 'Golden'은 괜찮은 팝 앨범으로 간주될 당대의 조건들을 조목조목 머금어 뻗어나간다. 역시 정국이 커버 했던 박원의 'All of My Life'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들리는 'Hate You'나 세렝게티 같은 대자연의 압도감에 견줄 만한 'Shot Glass of Tears'의 웅장한 공간감 역시 그 조건들의 중요한 부분이다. 다짐, 바람(wish), 질문, 호소하는 사랑과 변심, 그리움, 두려움에 젖은 이별의 메시지를 영어로 얽은 작품 성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Golden'은 결국 'Dynamite'의 앨범 버전으로 나에겐 들린다.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보편적인 완성도를 지닌 국경을 초월한 팝 음악이라는 얘기다.




'3D'를 발표 전 미리 들은 슈가와 RM은 정국에게 "진정한 팝 스타"라고 했다. 둘의 평가가 입바른 칭찬이 아닌 건 그들의 말이 객관적 지표를 근거로 성립하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NME>가 지적했듯 2000년대부터 세계 팝계에 10년마다 두드러진 스타가 등장했다 말할 수 있을 때 앞서 언급한 두 저스틴을 이을 2020년대의 팝스타는 그래서 정국이 될 확률이 높다. 데뷔 전 최초 물망에 오른 그의 예명인 씨걸(Seagull, 갈매기)처럼, 이제 정국은 본인이 원하면 어떤 장르든 선택할 수도 어떠한 음악가에게든 제안할 수도 있는 위치에 올랐다. 하고 싶으면 그저 하늘에서 잠시 내려와 원하는 곳에 앉으면 되는 것이다.


UK개러지, 레게톤, 알앤비, 발라드, 하우스를 '팝'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모조리 쓸어 담은 'Golden'은 주류 팝의 장점과 핵심을 적극 쫓은 작품이다. 정국은 여기에서 창작과 프로듀싱 대신 큐레이션을 통해 자기 표현을 해냈다. 주어진 곡들에 대한 보컬리스트로서 소화력 역시 'Hate You'에서 정점을 찍으며 증명했다. 나에게 이번 작품은 때문에 정국의 음악적 도전이기 보단 그의 글로벌 팝 스타로서 입지 굳히기에 더 가까운 전략처럼 보였다. 음악적 도전은, "예술이란 늘 모습을 바꾸는 구름처럼 익숙한 무언가가 낯선 무언가로 변해 오는 것"이라는 프로듀서 릭 루빈의 말마따나 다음 앨범에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정국에겐 아직 시간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한복판에 선 희대의 록 발라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