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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18. 2024

비꼼과 조롱으로 얼룩진 조현아의 변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콘셉트였을까. 무얼 노린 걸까. 소속사와 아티스트는 혹 이 사태를 예상하고 기획한 것일까. 그렇다면 ‘줄게’는 기획된 노이즈/네거티브 마케팅의 일환인가. 부정적인 피드백이 표면화된 이후 곡과 관련한 가수의 활동이 없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의도한 콘셉트는 아닌 것 같다. 당사자의 입장 표명이 없어 오로지 추측으로만 그려볼 수 있을 ‘줄게’의 제작 배경은 지금 자욱한 혼돈 속에 있다.     


모든 건 13일 전 KBS 뮤직뱅크 방송에서 비롯됐다. 같은 날 발매된 조현아의 신곡 ‘줄게’의 무대였고, 무대가 끝난 뒤 팬들과 대중의 반응은 공격적으로 싸늘했다. 가사와 가창은 평소 가수와 노래를 평가할 때 자주 언급하는 사항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번에 대중은 안무와 의상에까지 칼을 들었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의 조현아는 그런 옷을 입지 않았던 사람이고, 춤은 더더욱 추지 않았던 실력파 발라디어였다. 그것도 조스 스톤의 ‘Spoiled’와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너끈히 커버할 만큼 걸출한 실력을 가진 발라디어. 보통 대중은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가장 민감해하는 법이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인은 그래서 되도록 상식이라는 선을 지키는 게 좋다. 하지만 조현아는 그 상식을 무너뜨렸고 변신을 시도했다. 붕괴와 변화는 평소라면 실드를 쳐주었을 팬들조차 난감해하는 지경에 이른 상태다.     


화살은 기획사와 아티스트를 뚫고 ‘줄게’라는 곡을 조현아에게 준 쿠시(KUSH)에게까지 향했다. 쿠시의 커리어엔 투애니원의 ‘I Don’t care’도 있고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도 있지만 지금 대중이 관심을 갖는 쿠시의 카탈로그는 지수의 ‘꽃’과 헤이즈의 ‘빙글빙글’에 멈춰 있다. 두 곡 모두 ‘줄게’에 참여한 비비엔(VVN)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수와 헤이즈의 상식선을 넘어선 데 이어 조현아의 상식선까지 건드린 쿠시와 비비엔의 작업물에 “상습적”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줄게’가 그토록 못 들어줄 곡이냐면 그건 또 아니다. 편안한 비트와 무드로 감싼 트렌디 알앤비 팝, 좋게 보면 힘을 뺀 디자인이고 달리 보면 안이하고 평범한 접근이다. 여하튼 딱 그 정도에서 ‘줄게’는 충분히 대중에게 좋은 쪽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을 KBS 뮤직뱅크, MBC 음악집중, 원더케이 야외녹음실 같은 라이브 무대가 잠재우고 만 것이다. 쿠시와 비비엔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을 부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많은 언론은 이미 한 방향으로 쏠린 여론(댓글)을 받아쓰며 조현아를 궁지로 몰아가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당사자들을 만난 취재 기사도 아니고, 전문가들을 인용한 분석 기사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론은 언론의 저 자극적인 기사들을 방향타로 삼아 ‘조현아 망신주기’라는 목표물을 향해 돌진 중이다. 이 뒤틀린 콤비플레이의 맹공 속에서 조현아의 ‘줄게’는 어느새 만신창이가 됐다. 흔히 대중은 망각의 집단으로 곧잘 불리지만 이런 상황에선 또 남다른 기억력을 뽐내곤 한다. 바로 15년 전 조현아와 같은 KBS 뮤직뱅크에 출연해 ‘눈이 내려와’를 불렀다가 불안한 음정, 연습 부족, 어설픈 콘셉트 등을 이유로 대중의 뭇매를 맞은 오리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평소 과거의 실력으로 증명해 오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아티스트가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중들이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생각한다.”     



이번 ‘조현아 사태’에 대해 오리가 밝힌 생각이다. 듣자 하니 잔인한 일부 누리꾼들이 저런 오리에게 ‘줄게’ 커버를 요청한 모양인데, 본인들은 재미로 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명백한 ‘2차 가해’가 아닌가. 익명을 무기로 하는 비꼼과 조롱은 건강하지 못한 인터넷 문화의 대표적인 병폐다. 물론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건전한 비판은 최소한의 논리와 예의가 따라줄 때 성립한다. 적어도 조현아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방송 무대에 함께 선 댄서들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주인공인 조현아는 차치하고서라도(나는 그의 준비부족이었다고 본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한 저들의 노력과 수고까지 한 줌의 조롱 앞에 희생되는 건 지나치다. 논점이 흐트러지면 애먼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잘 만든 음악의 기준을 ‘밸런스’에 두었던 조현아. 오리의 말처럼 평소 실력으로 증명해 온 만큼, 자신이 하고 싶었거나 원하는 걸 잠시 내려두는 건 어떨까. 잘할 수 있는 걸 더 깊이 파고드는 것도 능력이고 용기다. 조현아의 무너진 밸런스는 지금의 궤도 이탈이 차후 정상 궤도로 돌아올 때에야 비로소 잡힐 것으로 보인다. 열쇠는 본인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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