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많은 일을 겪는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여기서 후자는 겪은 사람을 한 뼘 더 자라게 한다. 의도하지 않은 잘못과 예기치 못한 실패는 그 사람의 경험이 되고 지식, 지혜가 된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나 역시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노래 가사와 관련한 저작권 문제였다.
사건은 2년여 전 내가 쓴 첫 단행본과 관련됐다. 해당 책의 콘셉트는 ‘상황과 기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였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남은 건 어떤 걸 그릇에 담을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일단 남들이 모르는 곡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런 음악들을 소개하며 느끼는 우월감에 도취되긴 싫었다. 많이 알아봤자 AI의 발끝에도 못 미칠 지식이요, 낯선 목록을 뽑아내보았자 부질없는 허영이며 허세였다.
그렇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만한 리스트를 뽑아 그 곡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 그렇게 집필을 시작했다. 앨범이 아닌 곡 단위, 그것도 국내 노래 위주로 써나간 책이어서 부득이 노랫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불거졌다. 나는 가사 원문 일부를 빈번하게 글 맥락에 맞추어 인용하고 논했다. 예컨대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글 도입부에서 나는 노래의 첫 가사를 전제한 뒤 이렇게 썼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와 함께 밴드 잔나비를 대표하는 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의 시작은 “그대”와 “그때”라는 말로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가 ‘과거의 우리’ 것임을 예고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책이 나오고 한참이 지나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저)에서 저 문장 앞에 쓴 것을 포함해 책 속 가사 인용들을 법적으로 문제 삼는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내 책을 보고 신탁관리회사인 한음저가 직접 취한 조치였거나, 한음저에 자신의 저작 권리를 양도 내지 위임한 작사가 및 아티스트 쪽에서 상황 파악을 의뢰한 결과로 보였다. 비평가가 비평을 위해 작품을 전제한 것이 문제가 된다? 법은 그게 문제가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창작자 측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노랫말들을 인용하며 나는 앨범을 비평(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킷 아트워크를 가져다 쓰는 행위를 생각했다. 즉 비평 글이 질적, 양적으로 적정 수준에 이르거나 해당 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지를 사용한 정도를 압도할 경우, 출처를 명시하면 저작권법 제28조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으로 허용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같은 맥락에서 가사도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으로 여긴 것이고 나의 소개 글이 질적, 양적으로 인용 명분에 충분히 값하리라 판단해 큰따옴표와 별도 색깔까지 입힌 가사를 글 사이사이에 곁들인 거였다. 비평의 전제는 작품의 전제이므로, 내 행위는 작품 일부를 도용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 이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한 법 앞에서 나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뇌피셜’이었고 무지였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개념 정리부터 해야 한다. 저작권이란 무엇인가. 그건 어떤 사람이 생각이나 감정을 녹인 결과물에 대한 소유를 보장해 주는 권리다. 물론 생각,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 해서 모두 저작물로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건 아니다. 가령 일상에서 흔히 쓰는 간단한 문장이나 보도 차원에서 사실을 정리한 글, 이름순으로 정리된 전화번호부 같은 것들은 저작물로 보지 않는다. 반대로 일기처럼,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낸 창작물이라면 저작물로서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여기선 음악과 관련한 저작권 이슈를 다루고 있으므로 작곡/작사가 및 가수들의 경우를 살펴야겠다. 이들의 창작물과 관련한 저작권법은 보통 재산권과 결부된 승인 또는 인격권과 관련한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나처럼 비평을 전제로 가사 한두 소절을 가져다 쓴다손 쳐도 출처명시와 함께 재사용 허락을 저작권자에게 받지 않으면 법에 저촉된다. 곡이든 가사든 원곡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면 재산권을, 원래 창작물에 변형을 가하고 싶다면 인격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가사의 경우를 보자. 가사의 주인은 그것을 쓴 사람(작사가)이다. 노랫말은 노래로 불리면 ‘음악’ 저작물이지만, 노랫말 자체는 시(詩)와 같은 문학작품으로 여겨져 ‘어문’ 저작물이 된다. 그러니 저작 재산권의 제한 규정에 해당하는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정도를 제외하고선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작사가의 허락 없이는 그 작사가가 쓴 노랫말을 마음대로 복제, 전송할 수가 없다는 게 국내 저작권법의 내용이다. 내 경우 책에서 노랫말을 인용하려 했다면 신탁관리기관인 한음저에 작사가의 재산권과 관련한 문의를 먼저 했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의 인용은 결국 절차 상 하자를 뜻했다.
지난 몇 년 새 나왔던, 국내 대중가요 가사를 인용하고 분석한 책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얘길 나중에 들었다. 아마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가사 역시 앨범 재킷 같은 ‘공표된 저작물’이리라 생각했거나, 거쳐야 했을 승인 절차를 간과했을 것이다. 나는 저 사건 이후론 글을 쓰면서 창작자 측에서 다뤄달라 않는 한 국내 가사는 일절 건드리지 않고 있다. 위축된 탓도 있겠지만 그 전에 적법하지 않은 행위이므로, 지금은 그저 경험으로 체득한 좋은 비평 습관이라 여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