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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Aug 15. 2023

남편이 출장을 떠났다

"나 자카르타로 출장 다녀올게"

갑작스럽게 남편은 나에게 5일간의 출장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연애할 때에도 이렇게 오래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5일씩이나 떨어진다고 하니 며칠 전부터 우울했다. 남편이 떠나는 당일엔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이토록 의존적인 인간인가 싶었다.


이런 나를 바라보며 남편은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내가 규리를 아는데, 규리는 바로 약속을 잡고 신날 거야."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남편이 떠나니 나는 '주인에게 양말을 선물 받은 도비' 마냥 이 자유를 어떻게 만끽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고민이랄 것도 없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몸부터 움직였다.


첫째 날,

당일치기로 예정되었던 (여자) 친구들 모임에 '나도 자고 오겠노라' 카톡을 보냈다. 결혼 이후 첫 외박이라 친구들도 나도 들떠했다. 1박 2일 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다음 날,

친정을 들렀다. 결혼 후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니, 이렇게 혼자일 때 엄마아빠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와야 했다.


밤 늦게 혼자 아이스크림을 퍼먹기도 했다. 드라마를 몰아보다 다음날 겨우겨우 눈을 떠 출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즐거움은 너무나 사소한 거였다. 가장 좋았던 건, 업무적으로 가장 바쁘던 때에 남편이 출장을 갔다는 사실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연장 업무를 해야 할 때가 많았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이거 하나만 하고 얼른 끝낼게"하며 미안해했을 테지만 야근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이렇게 바쁘고 힘들 때 남편이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 것만 같았던 남편의 부재는 생각보다 쏜살같이 지나갔다. 남편이 돌아온 뒤 그간의 4박 5일을 돌아보며 각자가 혼자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야기했다. 서로가 보고 싶었지만 그도 나만큼 색다르고 즐거웠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돌이 유닛이나 솔로 활동을 하는 데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 나로서의 시간과 사색도 가끔 누려야 하는 거야. 그래야 나 혼자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거지.


우리는 뭔가 민망하게 통한 데가 있는 듯하여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가끔은 서로의 출장이 반가울 것만 같다고 이번 계기로 생각.. 아마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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