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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Aug 23. 2023

시월드에 대한 생각

‘시월드’가 싫어서 결혼도 싫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시댁이 싫다.’라는 말은, 어떤 시댁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결혼할 사람의 가족을 만나고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엄마가 겪은 시월드라면 나 역시도 힘들었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여자들이 요리를 하고 제사가 끝나면 식은 밥을 먹었다. 만약 내가 엄마와 같은 시월드를 겪었다면 “고소공포증보다 무서운 시월드 공포증!”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김남주가 한 대사이다)


그런데 지금 나의 시월드는 조금 다르다. 명절에 내려가면 어머님이 따뜻한 한상차림을 해주시고, 설거지를 남편과 내가 한다고 한들 마무리는 어머님이 하신다.


시동생은 ‘자신의 오빠’인 나의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충분히 고민해 보라”며 진지한 조언을 전했다.


남편의 가족을 알아 온 지 3년이 지났는데, 나의 시월드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이다. 서로 의무감을 느끼고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전화는 하고 싶은 날 의무감 없이 한다.


연애 때부터 ‘언니!’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온 시동생과는 둘이 있을 땐 여전히 서로를 ‘언니’라 부른다. 결혼 후 호칭이 이상해져 버렸지만, 언니는 언제나 내 편이다. 오글거려하면서도 “우리 새언니가 돼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 하며 시가족이 힘들게 하면 번역해 주거나 공감해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나는 운이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만약 연락의 횟수를 정해 둔 어머님을 만났거나, 명절에 전을 부쳐오라고 하는 시누이를 만났거나,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겠는지 모르겠는 과묵한 아버님을 만났다면 나는 이 시월드를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만난 시월드는 오롯이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


물론 시댁 식구에게 귀염 받고 싶어 하게 되는 자잘한 노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적당한 불편감이 우리의 관계를 더 탄탄하고 조심하게 엮어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수한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댁과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만난 사람들이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 멋진 연을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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