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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Aug 27. 2023

저마다의 식탁 기억

어렸을 적 엄마·아빠는 맞벌이로 인해 집에 느지막이 들어오셨다.


세 살배기 여동생을 어린 나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가야 했던 엄마는, 우리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먹을 수 있도록 식탁 위에 간식과 저녁을 함께 만들어 두시곤 했다. 케첩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는 오므라이스가 주메뉴였던 게 기억이 난다. 언제나 엄마는 포스트잇 위에 '사랑한다. 우리 딸'이라는 메모를 남기셨다. 그러면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 식탁에 대한 내 기억은 엄마·아빠를 기다리던 나의 어린 시절을 가장 함축적으로, 그리고 선명하게 수놓은 그림이었다. 맞벌이 엄마가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던 방식은 성인이 된 나에게도 여전히 따스하게 남아있다.

남편의 어렸을 적 식탁은 어떠했을까? 그의 식탁 기억에는 주말 아침마다 끓여 먹던 부산식 김치국밥이 있다. 김치와 소면 그리고 찬밥을 넣고 간소하게 끓인 김치국밥이 그렇게도 맛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먹는 김치국밥의 맛이 지금도 그립다고 한다.


나는 식탁이야 말로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매개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식탁에 대한 기억은 자녀의 기억에 유산처럼 남아 어릴 적 기억을 더욱 선명케 한다.


결혼한 이후 나와 남편에게도 식탁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덧입혀지고 있다. 여유로운 주말이면 계란을 휘핑하고 버터를 녹여 휘낭시에를 만든다. 잘 구워진 휘낭시에는 식힘망에 올려 열을 충분히 빼 줘야 겉면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진다. 하지만 남편은 조금도 참지 못하고 갓 나온 휘낭시에를 한입 크게 문다. "좀 나중에 먹지"하면서도, 그렇게 오두방정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면, 그건 그것대로 너무나 사랑스럽고. 나는 짜릿한 기분으로 휘낭시에를 식힘망에 올려둔다. 우리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벌써 대단한 기억을 만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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