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되기 전 집에는 무조건 돌아와야 했던 신데렐라의 슬픈 이야기.
나 또한 대학생 시절 12시면 아빠의 '집에 들어갔니?' 하는 전화를 받곤 했다. 아빠에게 버럭 화를 내고 나서야 아빠는 내 통금에 더는 말씀을 얹지 않으셨다. 아마 직장생활을 하시는 아빠에게 '아빠 꼰대야?'라고 되물었던 내 말에 충격을 받으셨으리라. 그렇게 사라진 통금으로 인해 대학 시절 자유로운 캠퍼스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 다시금 나에게 '12시 통금'이 되살아났다. 바로 남편으로부터.
2차까지 이어진 회식을 마치니 어느덧 12시가 넘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쯤.
"즐겁게 회식하고 와"라는 남편의 카톡에 안심한 후 답변이 따로 없어 남편이 먼저 잠들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가자 웬걸, 좀비 한 마리가 침대에서 충혈된 눈으로 누워있었다.
아 맞다. 남편은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잠드는 것을 싫어해 이전부터 혼자 잘 때도 스탠드 불을 기어이 켜고 자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안방의 불을 훤히 켜놓고 선잠에 들고는 했다.
게다가 잠귀가 밝은 편인 남편은 선잠을 들었다가도 내가 들어오면 잠이 깨고는 했다. 내가 온 것을 확인하면 잠결에 불을 꺼달라고 한 후 그제야 깊은 잠이 들어버리는 사람이다.
이런 그의 기이하고도 위태로운 기다림은 이후 나의 회식이나 모임마다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기이한 습관으로 인해 나는 자의적인 신데렐라가 되고야 말았다. 12시가 되면 뜬눈으로 지새우며 기다리고 있을 남편의 얼굴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생긴 나의 결혼 이후 통금은 대학 시절과는 다르게 애틋하다. 이제는 원한다면 더 늦게 들어가도 될 어른이 되었지만, 더 강력한 통금이 기다리는 셈이다.
오는 거 봤으니 이제 나 잘게. 불 꺼줘.
어렸을 적 그렇게 싫었던 통금이 이제는 나 스스로 결정한 통금이 되니 마음도 오묘하다. 마음속의 우선순위나 중요도에 따라 결정하는 모습에서 나 스스로 좀 더 어른이 되어감을 느끼기도 한다.
24년 연초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밤, 내가 돌아온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깊은 잠이 든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결혼생활은 참 묘한 희열이 병행하는 일이야.’